‘나홀로 휴가’ 연출 조재현 “홍상수 영화 같다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자신의 연출 데뷔작인 영화 ‘나홀로 휴가’를 들고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배우 조재현이 부산 해운대구 바닷가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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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홀로 휴가’로 연출자 데뷔

“촬영 첫날 멋지게 ‘컷’을 외치고 싶었는데 못해서 아쉬워요.”

영화 ‘나홀로 휴가’(사진)를 통해 연출자로 데뷔한 배우 조재현이 첫 촬영 때의 일화를 소개하며 감독이 된 소감을 밝혔다. 그는 4일 부산 해운대구 수영만 한 카페에서 문화일보와 만나 “내가 위원장으로 있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트레일러를 두 번 연출했고, 예전에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경험도 있어서 여유 있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장에서 메가폰을 잡으니 긴장하게 되더라”며 “보통 조감독이 ‘레디, 액션’을 하고, 마지막 ‘컷’은 감독이 외쳐야 하는데 정신없이 촬영하며 ‘컷’하는 것을 잊었다. 조감독이 계속 나를 쳐다봐서 그제야 알고 ‘어 어 그만해’라고 어정쩡하게 말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배우로 현장에 갈 때와 감독으로 갈 때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배우로 갈 때는 가급적 늦게 가려고 하는데 감독이 되니 가장 먼저 현장에 가서 배우를 기다리게 되더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출연 배우가 5분, 10분 늦으면 나도 모르게 초조해지더라”며 “배우들이 연출을 해봐야 감독과 스태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나홀로 휴가’는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됐다. 조 감독은 이에 대해 “내 첫 주연작인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1992년) 출연할 때 설렘을 느낀 이후 이번에 부산에 와서 오랜만에 설레는 느낌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박혁권과 윤주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고교 3학년 딸을 두고, 착실하게 내조하는 아내와 함께 사는 중년의 가장이 젊은 여자에게 빠져 불륜을 저지르는 과정과 그와 헤어진 후 그의 주위를 맴돌며 훔쳐보는 모습을 담았다.

지질한 남자들이 나와 술을 마시며 여자 이야기를 하는 것과 시간을 뒤섞어 편집한 것 등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닮아있다.

“김기덕 감독님이 영화를 본 후 ‘홍상수 감독 영화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홍 감독님과 작업한 적이 없고, 홍 감독님 영화도 ‘강원도의 힘’ 이후 거의 안 봤어요.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훌륭한 감독님 작품과 유사하다고 하는 게 나쁘지 않네요.”

이 영화에는 주인공 남녀가 함께한 시간들이 뒤섞여 펼쳐진다. 이에 대해 조 감독은 남녀가 사랑하다 헤어지면 시간이 지나도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소개했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다가 이별을 해도 사랑의 감정은 잘 정리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여주기 위해 시간을 모호하게 배열했어요. 시나리오를 쓰며 이별할 때 여자는 큰 충격을 받지만 남자보다는 빨리 잊고, 남자는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다는 내용을 넣었는데 이게 나름 과학적 근거가 있더라고요.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오며 신문에서 영국의 한 교수가 그런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그래서 영화에 방송하는 김제동 씨 목소리로 그 내용을 넣었어요.”

1989년 KBS 13기 공채 탤런트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연극무대와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큰 배우로 성장했고, 연극 기획자로도 성공을 거뒀다. 또 서울 대학로에 대형 공연장을 만들었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있으며 이번에 영화 감독으로까지 자신의 영역을 넓힌 그에게 ‘욕심의 끝이 어디냐’고 물었다.

“이게 마지막이에요. 제가 전생에 하고 싶은 일은 많았는데 일찍 죽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생애 이것저것 많이 하는 거죠. 근데 이제는 좀 힘들어요. 연기는 앞으로도 꾸준히 할 거고, 영화제는 자리를 잡았고, 또 학생을 가르치며 저도 같이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앞으로도 연기와 연출은 계속 병행할 거예요. 제가 공감하고, 이해하는 그런 이야기가 쌓이면 또 감독으로 나서야죠. 그렇지만 큰돈을 투자받아 상업영화를 연출하지는 않을 거예요.”

SBS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 - 아빠를 부탁해’에 딸 조혜정과 함께 출연 중인 그는 연기자의 길로 들어선 딸이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차근차근 내공을 쌓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요즘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혜정이에게 제안이 많이 들어오지만 다 거절하고 있어요. 혜정이의 연기력 때문이 아니라 제 딸이기 때문에 온 기회라 하지 말라고 했어요. 제 딸은 매력적인 여배우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에 내공을 쌓아야 해요. 그래서 독립영화나 연극에 출연하게 하고, 스태프 일도 시키고 있어요.”

‘나홀로 휴가’는 내년 2월쯤 개봉할 예정이다. 그는 “이 영화는 중년 관객에게 맞는 영화”라며 “개봉 전에 40대 특별 시사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