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 참여한 미국 등 12개국 대표단이 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리츠칼튼 호텔에서 협상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TPP 타결 한국 영향
지난 6일 유럽연합(EU)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 단일 자유무역지대를 표방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이 타결됐다. 2008년 미국의 참여로 본격화된 TPP 협상이 7년의 진통 끝에 일단락된 것이다. 미국, 일본 주도로 멕시코, 호주 등 태평양연안 12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12개국의 국내총생산(GDP) 합계는 세계 경제의 40%에 달해 EU보다 더 크다. 총 30개 장에 이르는 협정문은 농산물·제조업 등 상품분야 관세장벽 철폐와 지식재산권·노동·환경·서비스·투자 등 광범위한 분야의 국제통상 규범을 담고 있어 매우 복잡하다. 여기에 중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 증가에 맞불을 놓는 미국·일본의 합작이라는 측면도 우리나라에는 정치·외교적 부담이 되고 있다. ‘슈퍼 경제동맹’ 등장으로 일컫는 TPP의 의미, 협정문에 따른 주요 산업별 영향력 등을 살펴본다.
1 FTA 경쟁, 日에 뒤처지나
현재 우리나라는 52개국과 15건의 FTA를 타결, FTA 시장 규모가 세계의 약 73.5%(GDP 기준)로서 세계 3위 수준의 FTA 선진국이다. 하지만 일본의 TPP 타결 시 일본의 FTA 시장규모는 42.7%로 증가하나, 여전히 우리에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TPP 타결로 인해 일본은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12개국 중 3개국과 추가로 FTA를 맺는 효과를 얻는다. 그러나 TPP 발효 시까지 상당 기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있으며, 그동안 우리가 선제적으로 구축해 온 방대한 FTA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면 일본과의 FTA 경쟁 우위 및 시장 선점도 가능할 전망이다. 특히 TPP 발효 시까지 우리나라와 기체결 FTA 국가 간의 관세인하는 먼저 진행된다.
2 韓·美 FTA 선점 이익 잃나
TPP가 발효하더라도 우리 주력 수출품인 완성차와 자동차 부품의 경우 한·미 FTA로 이미 미국시장에서 일본보다 유리한 경쟁 조건을 확보하며 FTA의 시장 선점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의 경우, 전체 품목(HS 8708, 69개 품목)에 대해 2.5%의 관세가 한·미 FTA 발효 즉시 철폐되어 이미 무관세 혜택을 누리고 있다. TPP의 경우에는 미국은 일본 부품 80% 이상에 대한 관세를 협정 발효 즉시 철폐, 나머지 품목은 10년 이내로 조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승용차의 경우, 현행 2.5%의 관세가 발효 5년차인 2016년 1월 1일부로 완전히 철폐되지만, TPP는 완성차 관세가 25년에 걸쳐 철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완성차와 자동차 부품의 경우, TPP 상에서 일본이 누리는 관세 혜택 효과보다 한·미 FTA 관세 인하 효과가 더욱 빠르고 높은 수준이다.
3 통상정책 변화와 영향력
한국은 그간 미·EU·중과 FTA를 체결해 거대경제권 간 FTA 플랫폼을 이미 구축했으며, TP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한·중·일 FTA 등의 지역경제통합 추세에도 지역경제통합의 ‘핵심축(linchpin)’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RCEP, 한·중·일 FTA의 참여국으로 적극적 역할을 하고 있다. 또 TPP 타결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통합시장이 형성될 것이며, 대만 등 가입 희망국 증가 및 향후 중국 가입 가능성 등 우리 경제와 교역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확대될 전망이다.
우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 관계 연구기관의 계량적 경제영향 분석 결과에 따르면, TPP 참여 시 신규 FTA 체결(일본, 멕시코) 및 기체결 FTA 개선(말레이시아, 칠레 등)으로 인해 1.7~1.8%의 GDP 증가가 예상된다. 불참 시엔 GDP가 0.12%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계량 모델에서 다루기 힘든 효과로서 단일·누적원산지 등 TPP 역내 통일된 무역규범이 도입됨에 따라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가치사슬(GVC) 편입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복잡 다양한 양자 FTA 상의 원산지 등 규정이 통일됨에 따라 기업의 거래비용이 감소하고, 우리 중소기업들의 FTA 활용도 제고 가능할 전망이다.
4 한국은 언제쯤 가입하나
TPP는 높은 수준의 포괄적 자유화를 지향하는 다자협정으로 우리 경제에는 득과 실이 공존하므로 신중한 검토 후 가입 결정이 필요하다. TPP 가입문제와 관련해서는 임의적인 시한을 설정하고 대응하는 것보다는 참여·불참의 득실에 대해 충분히 검토한 후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그동안 구축해 놓은 세계 3위의 방대한 FTA 네트워크를 활용하면서,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지속적인 혁신 노력을 통해 새로운 ‘메가(Mega) FTA’ 시대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일례로 한국의 자동차 부품 산업은 지난 20년 동안 수출 50배가량 증가, 최근 60억 달러 이상 대미 흑자 달성 등 글로벌 경쟁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 배경에는 최근 한·미 FTA 체결 효과도 있으나, 1990년대 이후 지속적 품질관리, 연구·개발(R&D) 역량 강화, 완성차·협력업체 동반진출 등 지속적인 혁신 노력이 경쟁력의 원천이 됐다.
5 한국에 불리한 조항 많다던데…
TPP 협정문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TPP 규범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현재 명확히 확인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 다만 정부에서는 그간 TPP 회원국과 비밀 유지 전제하에 수차례 기술협의를 통하여 TPP 규범의 개략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 정부는 TPP 규범 협상 자체가 한·미 FTA를 모델로 하고 있어 대부분 규범은 한·미 FTA 수준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기타 세계무역기구(WTO), 다자간서비스협정(TISA) 등에서도 글로벌 통상 규범으로 이미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세계적인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다만, 국영기업, 수산보조금, 지적재산권 등 일부 항목에 한·미 FTA 대비 다소 강화된 규범들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돼 이에 대한 국내적 영향을 자세히 분석 중이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국영기업 관련 조항에 타 회원국에서 상계관세 등 무역보복이 가능하다는 내용이나, 산업은행의 민간기업 지원 정책이 금지될 수 있다는 내용 등은 확인된 바가 없다.
6 정부 ‘참여 시점 실기’ 논란
TPP는 높은 수준의 포괄적 자유화를 지향하는 다자협정으로 우리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TPP 참여 결정은 대내외 여건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이해득실을 세밀하게 따져 국민적 공감대를 이룬 후에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TPP 참여 시 신규 FTA 체결(일본, 멕시코) 및 기체결 FTA 개선(말레이시아, 칠레 등)으로 인한 GDP 증대 효과(1.7~1.8%)와 서비스·투자 분야 시장개방 확대 등의 효과가 기대되지만, 국내 농수산물 추가 시장개방, 일부 제조업의 대일 민감성 등을 고려할 때 참여 추진에 앞서 정밀한 영향 분석 및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정부는 국익 극대화의 견지에서 대내외적인 참여 여건을 신중히 검토하며 준비해 왔다. 이제 TPP가 타결돼 그 협정문이 공개되면, 우리 경제에 미칠 득실을 철저히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정부 입장을 결정할 예정이다.
7 美·日 경제동맹… 한국 소외론
TPP는 단순히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차원을 넘어 미국과 일본이 손을 잡고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응한다는 측면에서 국제정치적·지정학적 의미도 있다. 미국이 TPP의 2대 참여국인 일본과 신 안보동맹에 더해 경제동맹까지 맺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세력 확대를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미·일 가이드라인(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함으로써 신 안보동맹을 맺었다. 이에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TPP까지 타결되면서 경제와 안보 차원에서 한국의 소외현상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미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 인민의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 열병식에 참석하는 등 중국과의 외교적 관계를 강화해왔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한층 커지고 있다.
8 G2 패권 다툼… 한국의 선택은
TPP가 미국의 대 중국 봉쇄 전략의 목적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면에서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미·중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그간 TPP 추진 과정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 21세기의 새로운 무역질서를 써야 한다”며 중국을 견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실제 TPP는 중국이 주도하는 RCEP에 대응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한국과 함께 TPP에서 빠진 중국은 TPP 출범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전반적인 경제적 영향력이 약화되고 다른 지역 및 국가와의 무역협상에서도 불리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긴장감 속에서 한국은 TPP 참여와 관련해 경제적 이득뿐 아니라 한·미, 한·중 관계까지 변수로 고려해야 하는 셈이 됐다. 한국이 애초 TPP에 소극적 입장을 보이다가 2013년 11월 뒤늦게 관심을 표명한 것도 이러한 고민 때문이다.
9 日은 정말 최대 수혜자인가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TPP가 타결된 이후 “아베 총리가 가장 큰 수혜자”라고 평가했다.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의 세 번째 화살인 산업구조 개혁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한계를 노출하는 듯했던 아베노믹스가 TPP 타결로 다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는 대규모 금융완화와 재정동원을 ‘두 개의 화살’로 해 엔저와 주가 상승을 견인하며 초반 성과를 냈지만, ‘세 번째 화살’인 성장전략 면에서는 고전을 거듭해왔다. 이 가운데 TPP 타결로 최대 규모 무역공동체가 탄생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관세가 철폐 또는 완화되면 일본 주력 산업의 활로가 한층 열릴 수 있다. 또 농산품, 낙농품 등의 수입 관세 인하는 침체한 일본의 가계 소비를 부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10 중국의 입장·전략
중국은 TPP 협상 타결과 관련,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냈지만 내심 긴장하는 모습이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지난 5일 상무부 홈페이지에서 “TPP 협정은 아·태 지역의 중요한 FTA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그러나 TPP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과 일본 주도의 경제동맹체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중국이 이를 환영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자국이 주도하는 RCEP에 속도를 내 TPP에 대응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연말 타결을 목표로 진행 중인 미국과의 양자 간 투자협정(BIT)과 이를 확대한 양자 간 투자무역협정(BIIT)도 조속히 추진함으로써 TPP로 인한 부정적 요소를 상쇄하려 할 수도 있다. 아울러 중국 역시 TPP 참여 여지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는 점에서 뒤늦게 의사를 타진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민철·인지현 기자 mindom@munhwa.com
;){kind=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