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 Story >팝페라 테너 임형주 “2019년 영화감독 데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임형주에게 ‘마마보이인 줄 알았다’는 말을 건네자 손사래를 치며 “어머니가 소속사 대표지만 내 일에 전혀 간섭 안 하신다. 어려서부터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이 든든한 지원군이지만 그래도 믿을 건 자신뿐이라고 강조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시나리오 직접 쓰고 연기도 할 것”

예원학교 성악과 수석 졸업. 미국 뉴욕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 성악과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합격. 뉴욕 카네기홀에서 남성 성악가 중 세계 최연소로 데뷔한 후 한국인 최초로 카네기홀 3개 홀에서 단독 공연. 대통령 취임식에서 역대 최연소로 애국가 선창. 한국인 최초이며 역대 최연소로 유엔 평화메달 수상. 뉴욕 링컨센터를 비롯해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볼, 파리 살 가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콘서트 헤보, 잘츠부르크 미라벨궁전 마블홀, 빈 콘체르트 하우스 등 세계 주요 공연장에서 공연. 베를린교향악단과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체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체임버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이름 앞에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고, 전 세계 큰 무대를 누비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온 한국 대표 팝페라 테너 임형주를 만나러 가며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섰다. 왠지 거만하게 사람을 대할 것 같았고, 유복한 가정에서 곱게 자라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성격의 소유자일 것 같았다. 또 어머니 손에 이끌려 자라온 ‘마마보이’일 거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와 만나 5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자 이런 추측은 일거에 씻겨졌고, 그의 예의 바른 태도와 의젓한 모습에 반해 그의 삶 속으로 빠져들었다.

올해 서른이 됐지만 아직 앳된 ‘소년’의 모습이 남아있는 임형주는 문화일보와 만나 자신이 처음 노래에 빠져들어 열두 살 때 데뷔하게 된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방과 후 특활반에서 동요를 불렀어요. 지도 선생님이 제 노래를 들으시고는 ‘목소리가 범상치 않다. 성악을 전공해도 될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고, 서울시 동요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했어요. 전국대회에서 대상도 받았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삼성영상사업단 임원이신 어머니 친구 남편분이 제 노래를 들으러 집으로 찾아오셨어요. 마이클 잭슨의 ‘벤’을 불렀는데 바로 데뷔를 권하시더라고요. 얼떨결에 음반을 냈고, 그게 한국 최초의 보이 소프라노 앨범으로 기록됐어요. 삼성영상사업단에서 그 앨범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인터뷰를 했는데 KBS 2TV ‘이소라의 프로포즈’ 담당 PD가 그 기사를 보고 ‘이 꼬마 한 번 데려오라’고 해서 PD 앞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그 PD가 제 노래를 듣고, 저를 바로 방송에 출연시켰어요. 그 프로그램에서 ‘마법의 성’과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를 부른 후 제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죠.”

방송 출연 이후 음악 ‘신동’으로 떠오른 그는 두 달 정도 활동하다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꿈을 접어야만 했다. 하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어머니를 설득해 예원학교에 입학, 본격적으로 성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제가 외교관이 되길 바라셨어요. 그래서 저를 미군 부대에 데려가 영어를 가르치셨고요. 저는 어린 마음에 방송국에서 연예인들을 보고 신기해하며 신승훈, 조성모 같은 대중가수가 되려고 했는데 어머니는 제가 연예계에 진출하는 걸 원치 않으셨죠. 당시 성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이모에게서 마리아 칼라스 앨범을 선물받고 제 진로를 성악으로 정하게 됐어요. 칼라스가 부른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의 아리아 ‘카스타 디바’를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성악가라고 하면 배가 불뚝 나온 아저씨나 뚱뚱한 아줌마가 연상됐는데 할리우드 여배우처럼 아름다운 칼라스의 노래를 듣고 ‘성악가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어머니께 ‘예원학교에 가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더니 ‘합격하면 가라’고 하셨어요. 입시 두 달 전에 아무 준비도 안 돼 있어서 못 갈 거라고 생각하신 거죠. 성악 개인 레슨을 딱 4번 받고 합격했더니 어머니가 놀라시더라고요. 지금은 회사 대표(임형주의 어머니 김민호 씨는 그의 소속사인 디지엔콤 대표다)로 저를 지원해주시며 뿌듯해하세요.”

2003년은 그의 인생에 큰 획을 그은 중요한 해다. 첫 정규 앨범을 내며 세계 무대에 데뷔했고,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애국가도 불렀다. 그는 그해를 기억해내며 다시 감격에 빠졌다.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오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앉아 있는데 흑인 스태프가 와서 ‘5분 후에 무대에 올라가야 한다’고 말해줬어요. 떨리는 발걸음으로 무대에 올라 객석을 바라보며 처음 든 생각이 ‘내가 이 자리에 서기 위해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나’였어요. 그러고는 ‘내 자신을 믿자’라고 속으로 되뇌며 노래를 불렀어요. 그해에 낸 첫 정규앨범 ‘샐리 가든’(Salley Garden)은 40만 장이 팔렸어요. 또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애국가를 부른 기억도 소중하죠. 제게 2003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뜻깊은 한 해예요.”

‘샐리 가든’에 이어 2집 ‘실버 레인’(Silver Rain·2003년), 3집 ‘미스티 문’(Misty Moon·2004년), 4집 ‘더 로터스’(The Lotus·2005년), 5집 ‘파이널리’(Finally·2013년) 등 5장의 정규앨범을 비롯해 그가 지금까지 발표한 15장의 앨범 누적 판매량이 100만 장을 돌파했다. 이는 한국 성악가 중 조수미에 이은 두 번째 기록이다. 또 지난 2월에는 자신의 첫 가요앨범 ‘사랑’(Sarang:Love)을 발표한 후 10월 5일부터 ‘2015 임형주 콘서트-L.O.V.E’ 전국 투어를 돌고 있다.

“세계적인 팝페라 테너로 찬사를 받으며 외국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한다는 보람이 크면서도 몇 해 전부터 국내 무대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어요. 보아 씨가 일본 활동을 하며 ‘한국에서도 1위를 하고 싶다’고 밝혔듯 저도 국내 팬들에게 사랑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2월 3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국 투어에서는 ‘사랑’(Love)과 ‘오페라’(Opera) ‘버라이어티’(Variety) ‘이터너티’(Eternity) 등 4가지 주제에 맞춰 다양한 레퍼토리를 들려드리고 있어요. 앞으로도 매년 국내 투어를 진행할 계획이에요.”

세계 무대를 누비며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도 고독한 순간이 있다. 그는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은 수많은 수식어가 부담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좀 애늙은이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과 함께 활동하며 일찍 성숙해졌죠. 항상 기대치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어요. 세상엔 공짜가 없잖아요. 어렸을 때 PC방에도 못 가보고, 술·담배도 멀리한 채 수도승처럼 살아왔어요. 하지만 다시 하라면 못 할 것 같아요. 전에는 매사에 완벽하려고 했어요. 공연에서 가사를 틀리면 집에 와서 그 생각만 나곤 했죠. 그러다 암에 걸릴 것 같아서 지금은 마음을 비웠어요. 조금 틀려도 ‘다음 번에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해요. 2009년에 깊은 고독감에 빠졌었어요. 중국에 공연하러 갔다가 맹장염이 걸렸는데 심한 복통을 참아가며 한국에 와서 수술을 했어요. 그해에 김수환 추기경님이 선종하셨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제 후견인이었던 일본 음악가 가토 가즈히코(加藤和彦) 할아버지도 돌아가셨어요.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음악이 저를 구원해줬어요.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이 가장 나답다는 생각을 하며 ‘이래서 업(業)이라는 말이 있구나’ 하고 느꼈어요.”

올해 한국출신 문화예술인 중 역대 최연소로 미국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CNN의 오피니언 뉴스사이트인 CNN아이리포트 선정 ‘세계 3대 팝페라 테너’와 BBC뮤직매거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팝페라 가수 톱5’에도 오른 그는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바로 영화 감독이다.

“전에는 상을 받아도 별로 기쁘지 않았는데 지금은 열심히 즐기고 있어요. ‘샴페인을 터뜨렸으니 끝까지 마셔보자’는 생각으로요(웃음). 제가 영화를 정말 좋아해요. 시나리오도 몇 편 써놨고요. 자비에 돌란처럼 연출과 연기를 병행하고 싶어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에 맞춰 2019년에 제가 쓴 시나리오로 연출을 하려고 해요. 얼마 전에 MBC ‘복면가왕’에서 불렀던 ‘사의 찬미’에 대한 영화예요. 윤심덕과 김우진의 사랑 이야기죠. 홍난파 역으로 출연도 할 계획이에요. 작년에 제 ‘파이널리’ 앨범 뮤직비디오를 직접 연출했어요. 제가 만든 영화도 많이 사랑해주시길 바랄게요.”

인터뷰 = 김구철 부장대우 (문화부)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