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3일 대구 서구 평리동의 평리중 운동장에서 정영록 교사가 창던지기를 지도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대구 평리중 정영록 교사
“선생님이 하나, 둘, 셋 하면 멧돼지를 사냥한다는 생각으로 창을 힘껏 던지는 거야.” 지난 23일 대구 서구 평리동의 평리중에서 만난 정영록(41) 교사는 서희석(가명·15) 군에게 창던지기를 지도하고 있었다. 서 군은 지적장애 3급의 장애학생으로 지난 3월부터 정 교사에게 창던지기를 배우고 있다. 정 교사는 지적능력이 낮은 서 군에게 최대한 알기 쉬운 용어를 골라 창을 던지는 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서 군과 눈을 계속해서 맞추면서 지시를 이해하고 있는지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서너 번 설명이 반복되고 나서 서 군이 지시대로 있는 힘껏 창을 던지자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지난 2002년 임용된 14년 차 교사인 그는 2011년부터 평리중에서 학생들에게 체육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2013년부터는 정규 수업시간에 일반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하고 아침과 방과 후 시간을 쪼개 장애학생들에게 단거리 달리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등의 육상 종목을 가르치고 있다. 장애학생 지도는 순전히 정 교사가 자발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정 교사가 장애학생을 지도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심판을 보면서부터다. 국제심판자격증을 보유한 그는 대회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참가하는 높이뛰기 종목의 심판을 봤다. 선수들이 높이 뛰겠다는 일념 하나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몸을 내던지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그는 “몸이 불편하지만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대회에 임하는 선수들이 멋졌다”며 “운동에 대한 의지는 있으나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기회조차 갖지 못한 학생들을 지도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밝혔다.
굳은 각오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장애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은 예상보다 녹록지 않았다. 예산 지원이 변변치 않은 것은 물론이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곳도 만만치 않았다. 정 교사는 “우리 사회는 장애학생 체육에 대해 기대도, 관심도 없다”고 지적했다.
열악한 환경 이외에도 정 교사가 참고 견뎌야 할 일은 많았다. 일반 학생들보다 이해력이 떨어지는 장애학생들을 인내심을 가지고 지도하는 것도 정 교사의 몫이었다. 그는 매번 훈련 때마다 학생들이 이해할 때까지 똑같은 설명을 수차례씩 반복했다. 장애학생들은 운동을 시작하기 전 운동화 끈을 묶고 운동복을 갈아입는 것도 정 교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는 “현재 내가 지도하는 3명의 아이들 중 혼자서 운동화 끈을 묶을 줄 아는 학생은 한 명뿐”이라며 “훈련을 하다가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화장실에 가는 것이 이제는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교사는 장애학생들에게 운동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처음 운동을 가르친 학생은 절단장애가 있는 임하나(가명·16) 양이었다. 임 양은 태어날 때부터 팔의 길이가 보통사람의 3분의 2밖에 되지 않았지만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었다. 정 교사는 임 양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2013년부터 단거리 달리기 훈련을 시켰다. 출발선에서 양손을 바닥에 짚고 있다가 출발신호와 함께 최대한 힘껏 앞으로 박차고 나가는 단거리 달리기 종목에서 임 양이 제 기량을 발휘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정 교사는 “하나는 팔이 짧은 데다 양팔의 길이마저 달라 제대로 스타트를 할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 교사는 임 양을 포기하지 않았다.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매일 방과 후 언덕길을 함께 달리고 근력 운동을 했다. 이 같은 정 교사의 노력으로 김 양은 2013년 열린 전국장애인육상선수권대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서 100m와 200m 달리기 종목에 출전해 총 4개의 금메달을 수상했다. 수상 이후 임 양은 자신감이 넘치는 학생으로 변했다. 그는 “수상으로 난생처음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관심을 받으면서 아이가 밝아졌다”며 “상을 탄 것보다 밝게 변한 아이를 보는 것이 훨씬 더 기뻤다”고 말했다.
임 양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장애학생 체육의 교육 효과를 확신한 그는 2013년부터 최근까지 3명의 학생을 추가로 발굴해 매년 전국 규모의 대회에 출전해 입상하고 있다. 정 교사가 가르치는 운동부 학생들 대부분은 몸이 불편한 데다 가정환경이 어렵다. 정 교사는 어려운 가정환경의 학생들을 잘 돌볼 수 없는 부모를 대신해 자신의 승용차로 등하교를 시켜주는 등 학생들을 자식처럼 보살피고 있다. 학생들도 정 교사를 부모처럼 따른다. 그는 지난 5월 15일 스승의 날 제자들이 준 카드를 읽고 혼자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는 “서툰 솜씨로 한 글자씩 편지지를 채워갔을 아이들의 정성이 고마웠다”며 “비록 맞춤법이 틀리고 글씨 크기도 제각각인 편지였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 값진 선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육상을 계속해서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장애학생 선수들이 진학할 수 있는 학교는 극소수여서 일부 학생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육상을 그만둬야 할 처지에 있다. 그는 “잠재력이 있는 학생들이 마음 놓고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 교사는 장애학생들을 지도하는 것 외에도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 위해 매년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그는 매달 1000원씩 모아 8년째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장애학생과 가난한 환경의 학생들이 마음 놓고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앞으로도 적은 힘이나마 보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구=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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