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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6년 01월 06일(水)
이기심이 빚어낸 ‘共有地의 비극’… 良心만이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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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김연아 기자 yuna@munhwa.com

김범준의 과학 이야기 - ⑨ 물리학과 교수 휴게실의 비극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라 불리는 상황이 있다. 목축을 주업으로 하는 마을이 있다 하자. 마을 사람들은 각자 자기 소유의 풀밭이 있어 매일 양떼를 몰고 가 풀을 뜯게 할 수 있다. 마을에는 또, 마을 사람 누구라도 양떼를 몰고 와 풀을 뜯게 할 수 있는 마을 공동의 공용 풀밭도 있다. 이 마을 공동의 풀밭이 ‘공유지의 비극’의 바로 그 ‘공유지’다. 자, 독자가 양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유리할까. 자기 소유의 풀밭에서 아까운 풀을 뜯게 하느니, 당연히 먼저 마을 공동의 풀밭에 독자의 양떼를 풀어 놓는 것이 더 이익이 될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같은 생각을 다른 마을 사람들이 안 할 리가 없다는 데에서 비극이 발생한다. 마을 사람 누구나, 마지막 풀 한 포기가 없어질 때까지 자기의 양떼를 공용 풀밭에 먼저 풀어놓는 것이 각자에게는 더 이득이 된다. 공용풀밭은 마지막 순간까지 양떼로 북적인다. 풀이 모두 없어져, 누구도 공용 풀밭의 혜택을 볼 수 없어질 때까지 말이다. 마을 사람들이 폐허로 변해 풀 한 포기 없는 공용풀밭을 보며 가슴 치며 후회할 때까지.

오래된 옛날 이야기에 등장하는 상상의 마을 이야기로만 들리는가. 위의 공유지 풀밭을 우리 모두 함께 숨 쉬며 살고 있는 지구의 대기로 바꿔 생각해보라.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줄이는 방향으로의 국제사회의 합의가 왜 어려운지와 정확히 같은 문제가 된다. 이웃들이 매일매일 공유지 풀밭(대기)에 양(이산화탄소)을 마음대로 풀어놓는 것을 보면 속이 뒤집히지 않을 사람은 없다. 누구나 다 “에이 모르겠다. 남들도 다 하는데 뭘”하고 생각하게 되면 이제 공유지의 비극이 논리적인 귀결이다. 한 나라의 건강한 경제 시스템도 마찬가지이리라.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규제 없이 허락하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모두의 공리를 증진시킨다는 것은 순진한 믿음이다. 어류의 남획을 생각해보라. 바다에서 잡는 물고기의 양과 크기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없다면, 바다의 어류 자원은 머지않아 고갈될 것으로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손은 ‘공유지의 비극’의 상황에서 마을을 망친다. 자유방임의 ‘보이지 않는 손’은 어디서나 작동하는 만병통치의 약손이 될 수 없다.

필자가 속한 과에는 교수들의 회의 공간 겸 휴게실이 있다. 이곳에는 상당히 괜찮은 커피 기계도 있다. 볶은 커피 원두가 담겨 있어, 버튼을 한번 살포시 누르기만 하면 잠시 후 맛이 꽤 좋은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다. 과에서 노력해 이렇게 커피 기계는 잘 갖추었지만, 맹물을 마실 수는 없으니 당연히 커피 원두는 계속 공급되어야 한다. 교수들에게 공짜 커피를 제공할 예산이 있을 턱이 없는 과에서 커피값을 내줄 수는 없다.(과학자는 커피에서 논문을 뽑아낸다는 말도 있는 것을 생각하면 좀 아쉽다.) 당연히 마신 사람이 커피값을 내야 한다. 휴게실의 한쪽 벽에 종이를 붙여놓고 커피를 한 잔 마실 때마다 본인의 이름 옆 빈칸에 획을 하나씩 추가하면서 바를 정(正)자를 그리는 것이 규칙이 되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각자가 마신 커피잔 수에 따라 커피값을 정산하면 된다. 자, 과연 커피 한잔의 값을 얼마로 책정해야 할까.

이익을 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니, 휴게실 커피값 계산은 참 쉽다. 커피 한 잔에 들어가는 커피 원두의 양은 정해져 있으니, 볶은 원두를 사는 순간 커피 한잔의 값은 거의 정해진다. 이렇게 계산하니 한 잔에 600원이 적정 가격이라 해보자. 한 달이 지나 종이에 표시된 ‘바를 정’자를 보고, 각자에게 잔당 600원씩 쳐서 커피값을 받으면 적자도 흑자도 아닌 정확하게 본전이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상적인 상황이 아닌 현실은 다르다. 깜박하고 표시 안 한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아무도 없을 때 슬쩍 커피만 마시고 ‘바를 정’자를 표시하지 않고 유유히 휴게실을 떠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600원만 받아서는 아마도 수지를 맞추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커피만 마시고 커피값을 내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즉, 각자의 이익을 최대로 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은 공짜 커피다(그리고 물리학자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이다). 앞에서 설명한 바로 그 ‘공유지의 비극’이 당연히 독자에게 떠오를 거다. 어떤 일이 생길지 예상할 수도 있다. 한 잔에 600원으로는 적자여서 커피값을 더 올리면, 이제 공짜 커피의 유혹은 더 커진다. 오른 커피값은 종이 위에 적히는 ‘바를 정’자의 개수를 줄이고, 그래서 또 더 오른 커피 값은 다음 달 더 적은 수의 ‘바를 정’자로 돌아온다. 이론적인 상황에서는, 이처럼 눈덩이처럼 불어난 커피 한 잔의 값이 과에서 소비된 모든 원두의 가격과 머지않아 같아지게 된다. 마지막 달, 한 잔에 몇십 만 원을 독박으로 뒤집어쓴 마지막 피해자마저 떠나면, 이제 교수 휴게실의 커피 기계는 원두를 채워 넣을 수 없어 작동을 멈추게 된다. 커피 원두 하나 남지 않아 방치된 커피 기계는 ‘공유지의 비극’의 풀 한 포기 하나 남지 않은 공유지가 된다. 이런 비극적 결말이 필자가 속한 물리학과 교수 휴게실에도 발생할까. 흥미진진.

어느 날, 온갖 일을 도맡아 깔끔하게 처리해주시는 과의 권혁선 선생님(이분이 없으면 필자가 속한 물리학과는 단 하루도 작동할 수 없다)이 수년간의 커피 관련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분을 졸라, 매달 커피 한 잔의 가격이 얼마였는지, 그리고 각자가 마신 커피가 몇 잔씩인지 정리되어 있는 파일을 전달받았다. ‘물리학과 교수 휴게실의 비극(Tragedy in the physicists’ common room)’으로 논문의 제목도 미리 정해놓고는 자료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커피 한 잔의 가격은 오래전에 600원으로 시작해 800원을 거쳐 1300원으로 올랐다. 자료를 살펴보니 600원일 때의 과 휴게실의 평균 커피 소비량은 월 239잔이었다가, 800원일 때는 185잔, 그리고 1300원일 때는 107잔이었다. 즉, 커피의 가격이 오를수록 커피의 소비가 줄어든다는 경제학 교과서의 내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파일에는 또, 실제 기계에서 내린 커피의 잔 수와 사람들이 종이에 표시한 잔 수의 차이도 적혀 있는 달이 간혹 있었다. 600원일 때는 그 차이가 월 65잔이었고, 800원이 되었을 때는 월 63잔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공유지의 비극’의 이론적인 가상 시나리오에 의하면 가격이 오르면 잔 수의 차이가 더 늘어나야 하는데, 실제로 보니 가격이 올라도 별 차이가 없었다.

더 흥미로운 일은 이후에 생겼다. 커피가 대폭 인상되어 1300원이 되자, 차이 잔 수가 오히려 월 14잔으로 확연히 줄었다. 즉, ‘물리학과 교수 휴게실의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쉽게도 논문을 쓰는 것은 이제 물 건너갔지만, 결과는 상당히 흥미롭다. 커피 가격이 오를수록 무임승차하는 교수의 숫자가 오히려 줄어, 600원, 800원일 때에 비해, 1300원으로 대폭 오른 커피에 대해 사람들이 더 성실하게 자신이 마신 커피의 잔 수를 기입했다는 뜻이다. 600원 정도면 다른 교수들에게 커피값 지불을 미뤄도 값이 크지 않아 별로 미안하지 않았다가, 1300원이 되니 도저히 양심상 공짜 커피 마시기가 미안해졌다는 뜻이리라. 막상 살펴보니 물리학과 교수들이 사람들 생각과는 달리 별로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은 좀 실망이지만, 그래도 연말연시를 맞아 훈훈한 소식인 듯.

필자가 속한 물리학과 교수 휴게실에는 필요 없어 보이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공짜 커피를 막는 흥미로운 방법이 하나 잘 알려져 있다. 커피 기계 옆에 누군가가 쳐다보고 있는 눈 모양이 담긴 그림 한 장만 붙여 놓아도 효과 만점이라는 거다.

자신과 소속 정파의 이익을 국민의 이익 앞에 놓는 정치인들이 많다. 이들에게는 유권자들의 표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들보다 먼저 깃발만 꽂으면 장악할 수 있는 ‘공유지’로 보일 거다. 점점 줄어드는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투표율을 보면, 점점 줄어드는 공유지의 풀밭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람들의 부릅뜬 눈이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유지의 비극을 멈출 수 있기를.(문화일보 2015년 12월 9일자 24면 8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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