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4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 홀트학교 제과제빵 실습실에서 임경애 교장이 학생들과 함께 빵을 만들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임경애 경기 고양 홀트학교 교장
24시간 기숙사서 함께 생활
밤엔 글·노래, 주말엔 야외로
닭·젖소 키우며 책임감도 길러
요즘엔 문화계 인사 등 초빙
재능기부받아 운동·음악 지도
“장애로 꿈 잃지 않도록 노력”
“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대부분은 위장 질환을 앓고 있어요. 특수 육 교사는 음식을 씹고 삼키지 못하는 학생들의 밥과 반찬을 잘게 다지고 숟가락으로 일일이 떠서 먹여 주느라 정작 본인의 식사는 10분 안에 끝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지요. 제가 지난 40년 동안 겪었던 고충을 후배 교사들이 다시 겪는 것을 볼 때마다 겉으로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큰소리치면서도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요.”
지난 4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 홀트학교에서 만난 임경애(62) 교장은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1976년부터 특수학교에서 장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충남 보령시 주교면 정심학교와 홀트학교에서 평교사로 재직했다. 2004년 홀트학교에서 교감으로 승진한 후 2010년부터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정심학교 부임 첫날 열악했던 학교의 모습을 잊지 못했다. 임 교장은 “20여 명의 장애 학생이 한 반에 모여 있었다”며 “교실은 제때 기저귀를 갈지 못한 아이들의 대소변 냄새로 가득했고 아이들의 얼굴은 웃음기 없이 어두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담임교사와 보조교사가 한 반에 10명 이하의 학생을 돌보는 요즘의 특수학교 환경과는 차이를 보였다.
서울 출신인 임 교장은 정심학교 근처에 따로 방을 얻지 않고 학생들이 기거하는 기숙사 방 한 칸을 관사로 삼아 학생들과 함께 생활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남는 시간에는 기숙사 목욕탕으로 학생들을 데려다 씻기고 깨끗한 옷을 갈아입히기를 반복했다. 그는 “당시에는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며 “내가 부지런히 움직일수록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면서 마냥 즐거웠다”고 말했다.
밤에는 학생들을 데리고 자면서 글과 말, 노래를 가르쳤다. 임 교장은 주말에도 학생들의 곁을 지켰다. 부모들이 찾지 않아 방 안에서만 생활하는 학생들과 학교 인근의 산과 들로 소풍을 나갔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 과일나무에서 과일도 따서 먹고 노래도 부르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동료 교사들에게 ‘왜 그렇게 유난을 떠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고 고백했다. 당시 특수학교 교사는 일반 교사 절반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열악한 근무 환경을 견뎌야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24시간 학교에서 살다시피 하는 임 교장을 동료 교사들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정심학교에서 2년간 재직하다 1978년 지금의 홀트학교로 옮겼다. 당시 홀트학교의 상황도 정심학교와 다르지 않았다. 홀트학교에는 입양되지 못한 6·25전쟁 고아들이 성장해 공부하고 있었다. 혼혈 학생들도 많았다. 이들 중 걸을 수 있는 학생들은 2층짜리 목조건물에서 수업을 받고 걷지 못하는 학생들은 학교 옆 건물 기숙사에 누워 수업을 들었다. 교사들은 교실과 기숙사를 오가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임 교장은 홀트학교에 부임한 첫날 설사를 한 학생의 옷을 빨래하는 것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그는 “낯선 학교 환경에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한 학생이 배탈이 났는지 여기저기에 대변을 실수했다”며 “1시간 가까이 아이를 씻기고 빨래까지 하다 보니 적응이 다 됐다”고 말했다. 그는 홀트학교에서 장애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야외 활동을 시도했다. 트럭을 빌려 서울 창경원(현재의 창경궁) 동물원으로 소풍도 가고 버스를 빌려 부산으로 수학여행을 가기도 했다. 장애 학생을 데리고 야외 활동을 하다 보면 조금만 방심해도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임 교장은 야외 활동을 앞두고 동선을 미리 챙기는 등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는 “장애 학생 중 일부는 밤에 교사들이 조금만 주의를 게을리하면 숙소를 일탈해 길을 잃는다”며 “낮에도 학생들이 길바닥에서 벌레를 주워 먹고 탈이 나는 등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임 교장도 수학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학교까지 왔던 학생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해 고생한 적이 있다. 그는 “3일 후 인근 파출소에서 ‘아이를 찾았다’는 전화를 받기 전까지 잠 한숨 제대로 못 자며 찾아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여행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아이들과의 야외 활동이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들이 두고두고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고생한 기억은 씻은 듯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책임감을 길러 주기 위해 학교 운동장에서 닭, 젖소, 염소 등을 기르기도 했다. 임 교장은 “아이들이 일찍 등교해 가축들의 먹이를 주고 시간 맞춰 운동을 시키면서 남을 돌보는 법을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른 가축들을 학교 인근 시장에 가서 팔기도 했다. 남은 돈으로는 학용품을 사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나눠 줬다.
평교사로 장애 학생들을 돌보는 일에 열정을 바친 임 교장은 교장으로 부임한 후에는 특수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는 활동에 제약이 많은 장애 학생이 학교 안에서라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여러 단체의 후원을 받아 학교 시설을 개선했다. 지역 사회에서 재능기부를 받는 방법으로 좋은 강사진을 학교로 초빙하는 일도 임 교장이 도맡았다. 이 같은 노력으로 홀트학교 학생들은 전직 국가대표 운동선수들과 유명 문화·예술계 인사들로부터 운동과 음악을 배운다.
그는 “장애 학생들은 저마다 장애 정도가 달라 똑같은 수업을 하더라도 일반 학생보다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며 “정해진 예산으로는 한계가 있어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 교장은 장애 학생들이 꿈과 희망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할 계획이다. 그는 “아픈 아이들도 꿈이 있지만 일반 학생들보다 꿈을 실현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힘이 닿는 한 장애 학생들을 위해 뛸 것이다”고 밝혔다.
고양=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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