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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6년 01월 15일(金)
여성의 지위 향상따라 부엌 높이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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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안의 공간과 풍경은 어떻게 달라져 왔을까 / 전남일 글·그림 / 돌베개

이 책을 읽고 있으려니 지금까지 살아온 집들이 하나둘 선명하게 떠올랐다. 변두리에서 자라 강북의 고만고만한 산동네를 거치는 동안 내가 살았던 집들은 그저 개인적인 공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지극히 사적인 집에 대한 기억은 이 책을 만나자 보편성을 획득했다. 저자가 그려 넣은, 1970년대 집장수들이 지었다는 그림 속 단독주택은 십 대에서 이십 대 초반 살았던 영락없는 ‘우리 집’이었다. 지금껏 내가 간직한 ‘우리 집’이라는 이미지는 실상은 당대 사람들이 살았던 보편적인 집들 중 하나였던 것이었다.

‘집’은 이처럼 근현대기 한국인이 살았던 그리고 지금도 살고 있는 집이라는 공간과 풍경의 역사를 들려준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가 변소, 부엌, 문간방, 구들방, 단칸방 등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작은 공간에 대한 주목 때문이다. ‘한국 주거의 미시사’ 등 ‘한국 근현대 주거의 역사’ 시리즈를 펴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부분을 통해 전체를 보여준다. 지금껏 생각해본 적 없던 작은 공간의 변천사는 이내 사회적 역사적 맥락으로 확장되고, 종내는 삶과 만난다. 집을 통한 우리네 삶의 변천사라고나 할까.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를 쓴 빌 브라이슨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책을 쓰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우리가 살았던 그리고 사는 다양한 집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공간의 변화는 결국 그 속에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 변화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변했기 때문에 공간의 변화 역시 따라온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 등은 대중이 원하는 바를 따른 결과물이다.

가장 좋은 예가 부엌의 변화다. 부엌은 가족 내에서 아내의 위치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과거 부엌은 여성만의 공간이었다. 남성은 부엌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으며, 부엌이 있는 쪽을 ‘아래’라 부르고 서쪽에 두었다. 전통가옥에서 부엌은 참으로 불편한 공간이었다. 불을 때서 음식을 만드는 곳이라 부엌에서는 조리와 난방이 한꺼번에 이뤄졌다. 난방을 위해 아궁이를 두어야 하니 부엌바닥은 다른 방보다 낮았다. 여자들은 쪼그리고 앉아 아궁이에 불을 지폈고 음식을 만들었다.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사이였다. 부엌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부엌바닥은 거실 바닥과 높이가 같아졌고 마감재도 동일해졌다.

변소의 변천사를 다룬 대목도 흥미롭다. 중장년 세대에게는 실외에 있던 변소에 얽힌 에피소드는 누구나 한두 가지씩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한데 분명 집 밖에 있었던 변소는 언제 집안으로 들어왔을까. 부엌의 변화를 생각하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도시 인프라로서 상하수도 시설이 갖춰진 후 집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전통과 절충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양변기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식 변기가 그 예다. 전통 사회에서 여자들이 쓰는 안변소와 남자들이 쓰는 바깥 변소가 따로 있었다. 남녀가 유별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 해도 며느리가 앉던 변기에 시아버지가 앉아서 용변을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재래식 변소처럼 쭈그리고 앉아 용변을 볼 수 있도록 고안된 수세식 변기가 고안되었고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책은 이 밖에도 현재 우리 삶을 구성하는 온갖 집의 형태를 두루 살핀다. 1960년대 말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고자 활발하게 지어지기 시작한 아파트가 어떤 변화를 겪어 오늘의 모습이 되었는지, 또 고시원, 오피스텔, 원룸 등 한 칸짜리 방의 역사를 토막집이나 쪽방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살피는 등 사회의 변화와 맞물린 집의 변천사를 파헤친다.

우리는 종종 과거를 떠올리며 달콤한 추억에 젖는다. 그 시절 사람들은 담장으로 이웃과 음식을 나눠 먹었고, 가난하건 잘살 건 상관없이 서로 도우며 살았다. 마을과 공동체가 살아있었다. 복고 드라마는 이런 향수를 자극한다. 하지만 과거의 집도 공동체도 결코 같은 형태로 복원될 수는 없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가 사는 집은 당대의 요구를 반영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우리가 사는 공간을 만든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핵가족을 낳았고 단출한 가족이 택한 건 개인적인 삶이 보장되는 안락한 아파트였다. 저자의 말처럼 집의 역사가 곧 우리의 역사이며, 집의 변화는 우리의 삶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한미화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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