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眞朴 마케팅’의 逆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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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 논설위원

백제의 무왕(서동)이 어릴 때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와 인연을 맺기 위해 성 안의 아이들에게 자기가 만든 노래를 불러 퍼지도록 했다. 매일 밤 선화공주가 몰래 서동의 방을 찾아간다는 내용인데 결국 선화공주는 귀양을 가고 무왕은 공주를 데리고 백제로 가 결혼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서동요’의 유래인데 1000년이 넘게 지난 2016년 2월 대구·경북(TK)지역에선 현대판 서동요인 ‘박(朴)타령’이 인기라고 한다. 민요 새타령을 개사해 ‘온갖 잡박(雜朴)이 날아든다∼’는 내용인데 인터넷에 패러디가 유행하고 있다. ‘박수고대(朴首苦待): 최경환의 지원을 몹시 기다리는 대구 진박들의 모습’ ‘구박(舊朴)이 명박(名朴): 예전부터 친박이던 사람들이 좋은 친박이다’ ‘혼박일체(魂朴一體): 혼마저도 박근혜 대통령과 일치해야 한다’는 등의 한자 성어 패러디도 유행하고 있다.

대구가 고향인 필자도 매일 전해지는 이 지역 새누리당의 선거운동 행태를 보면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선거운동인지 낯이 부끄럽다. 더욱이 이 지역이 지금 박근혜 정권을 이끌고 있는 핵심 세력의 본산지라고 자임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지난 2012년 4월 총선에서 대구 지역은 12명의 국회의원 중 7명이 초선으로 물갈이됐다. 당시 공천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주도했고 최경환 의원이 깊게 개입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4년 전 대구 유권자들은 이들의 인물 됨됨이보다는 박 대통령이 찍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표를 주었을 것이다. 연말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당선시켜야 한다는 대구시민들의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쁜 친구(유승민 의원)’와 어울려 다녔다는 이유로 물갈이 대상이 되어 버렸다. 진박(眞朴)으로 평가받는 대구 동갑 예비후보자인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TK에선 의원이 너무 쉽게 됐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 대표 역할을 하기보다 자리를 즐겼다. 국가 이익과 관련한 논쟁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국회의원 공짜로 됐으면 돌격대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현 정부에서 장·차관, 수석비서관까지 지낸 인물들이 자신의 역량과 정치비전 제시는 없이 대통령만 팔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진박 감별사를 자처하는 최경환 의원은 지난주부터 대구·경북은 물론, 부산·경남 등 소위 진박 후보자 선거 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해 감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증오가 정치의 원동력’이라는 학자도 있지만 야당도 아닌 같은 당 의원들을 이렇게 비난하고 한쪽 편을 들 수 있는지 의아하다. 그는 “박 대통령이 어려울 때 TK 의원들은 뭐 했느냐”며 “대통령이 진박을 얘기했는데 마치 코미디하듯 조롱해서야 되겠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심지어 “그분(박 대통령)이 우시면 어쩌나 싶다”며 감성에 호소하기도 했다. 또 다른 감별사인 조원진 의원은 유승민 의원이 언급한 헌법 제1조 2항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대응해 “헌법보다 대통령과의 인간관계가 먼저다”는 황당한 얘기까지 하고 있다.

호남이 수십 년간 ‘묻지 마 DJ(김대중 전 대통령)’ 투표를 해 오다 DJ가 떠난 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DJ를 이을 변변한 정치 지도자 한 명 나오지 않아 이제 주도적 집권 가능성은 앞으로 수십 년 내에는 힘들다는 얘기도 있다. 그렇다고 그 시절 지역이 특별한 발전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다른 지역 눈치 보느라 역차별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광주에 있는 삼성전자가 일부 가전 라인을 해외로 이전하는 문제를 놓고 시끄럽다.

TK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 이후 과연 지금의 진박이 그때도 진박일지 알 수 없다. 대구는 섬유 사업의 불황 등으로 주변 공업도시의 베드타운, 교육 도시가 된 지 오래다. 수십 년 동안 오직 기호 1번만 찍었는데도 도시의 생명력은 점점 꺼져가고 있다. 서울에서 내려온 장관, 수석 비서관 출신들은 본선도 아닌 당내 경선만 끝나도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자신의 정치 비전 없는 해바라기성 정치인만 키우다 보면 매번 선거 때마다 물갈이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묻지 마 투표는 지역의 정치적 자산(資産)을 다 갉아먹는다. 진박 마케팅으로 최경환 의원과 일부 친박 실세는 득을 볼지 모르지만 ‘TK 정치’는 그만큼 황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