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자본의 역습… 韓연예기업 줄줄이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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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바다·초록뱀·씨그널…
잇달아 中서 주식·경영권 인수

황금알 낳는 콘텐츠 넘기는 꼴
韓기업 프로그램 역수입 우려
연예산업 잠식 넘어 종속 위험

“고작 1600억 원에….”

최근 중국 자본에 팔리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바라보는 한 관계자의 한숨 섞인 탄식이다. 1600억 원은 작은 돈이 아니다. 하지만 이 돈을 주고 중국이 사들인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레드머니(red money)’라 불리는 중국 자본에 의한 한국 엔터테인먼트 시장 잠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값’을 인정받지 못하고 ‘헐값’에 발전 가능성이 큰 콘텐츠를 중국에 덥석 넘긴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국내 5대 음원사이트 중 한 곳인 소리바다는 중국 기업에 팔렸다. 지난 2일 소리바다 측은 보통주 200만 주와 경영권을 중국 ISPC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매각 대금은 100억 원. 소리바다의 국내 음원 시장 점유율은 3% 정도지만 보유하고 있는 음원이 360만 곡에 이른다. 이 음원을 활용해 13억 인구를 보유한 중국 시장을 겨냥한다면 엄청난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이라 예상된다.

중국은 최근 걸그룹 EXID의 인기곡 ‘위아래’를 만든 작곡가 신사동호랭이를 영입하는 등 한국의 작곡가와 음원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K-팝을 선도한 한국 작곡가들의 역량이 중국 작곡가들과 비교해 크게 앞서고 그들이 만든 노래를 자체 콘텐츠로 보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더 이상 한국에서 ‘사서 쓰지’ 않고, 인력을 수급해 ‘만들어 쓰겠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리바다가 중국 업체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은 ‘100억 원’이라는 돈으로 평가할 수 없을 만큼 상징적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드라마 ‘프로듀사’ ‘올인’ 등을 제작한 초록뱀미디어는 250억 원을 투입한 중국 DMG그룹이 주인이다. 초록뱀 소속인 김종학프로덕션과 방송인 남희석, 김신영 등이 속한 A9미디어 역시 중국 자본으로 편입된 셈이다. 이 외에도 애니메이션 ‘넛잡’ 제작사 레드로버는 중국 쑤닝그룹에 350억 원에 인수됐고 배우 이미연, 김현주 등의 소속사인 씨그널은 214억 원을 투자한 중국 화이자신이 최대주주다.

중국이 주인이라 할 수 없지만 유명 연예기획사와 영화제작사 등에 적지 않은 레드머니가 투입돼 있다. 일본과 중국 시장에서 각각 가장 영향력 있는 한류 스타로 손꼽히는 배용준과 김수현의 소속사인 키이스트의 경우 150억 원을 투자한 소후닷컴이 2대 주주다. 또한 영화 ‘변호인’과 ‘7번방의 선물’ ‘신세계’ 등을 투자 배급한 NEW 역시 중국 화책미디어그룹이 535억 원을 투자해 2대 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또 다른 연예기획사 대표는 “각기 회사 입장에서 볼 때는 큰 금액이 회사로 유입된 것이고, 본격적인 중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체로 봤을 때는 중국이 약 1600억 원가량으로 한국 주요 엔터 회사를 줄줄이 매입한 셈이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한국 시장이 레드머니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일례로 최근 홍콩계 사모펀드는 국내 1위 음원사이트 멜론을 보유한 로엔의 지분을 카카오로 넘기며 1조2000억 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레드머니가 투입된 소리바다-초록뱀-레드로버-NEW-씨그널 등은 모두 로엔과 같은 상장사다. 중국 자본이 투입됐다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부양되기 때문에 중국 측이 이를 이용해 주가를 띄운 후 지분을 파는 형식으로 시세 차익만 챙기고 빠져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16년 콘텐츠 산업 10대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레드머니의 확산, 레드콘텐츠의 역습’을 꼽았다. 한국 콘텐츠를 갖기 위한 중국 자본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동시에 중국으로 편입된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만든 콘텐츠가 한국 시장으로 역수입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결국 한국에서 설립된 회사에서 한국 연예인과 제작자들이 만든 콘텐츠로 중국 자본은 돈을 벌고, 이 돈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라며 “중국은 갖가지 규제를 바탕으로 한국 콘텐츠 수입을 제한하는 반면 레드머니를 앞세워 빠르게 한국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