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브라질, 올림픽 앞두고 사상최대 ‘反정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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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경제상황서 터진 ‘룰라 스캔들’
좌파정권 부패가 ‘중남미 봄’부른다

‘지난 주말(3월 13일)은 브라질 지우마 호세프(사진) 체제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매우 중대한 순간이었음이 입증됐다.’

13일 브라질 전역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열리자 미국의 위기관리 컨설팅회사인 유라시아그룹의 브라질 전문가 크리스토퍼 가만은 15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같이 밝혔다. 당시 시위 참가 규모에 대해 브라질 경찰은 300만 명으로 공식 집계했다. 주최 측의 주장은 600만 명이었다. AFP통신 등 외신들은 “브라질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도 브라질리아와 상파울루 등 주요 도시의 거리를 점령한 시위대는 “호세프 탄핵!” “룰라 구속!” 등을 외쳤다. 시위대의 분노는 중남미 좌파의 대부이자 브라질 노동운동의 영웅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2003∼2010년 재임)에게도 집중됐다. 브라질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그가 대규모 정치권 비리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브라질 정치권의 고질적인 부정부패 민낯 드러나=브라질 사법당국은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와 정치권 인사들의 유착 비리가 불거진 지난 2014년부터 집권 노동자당(PT)의 핵심 인사들을 정조준하는 이른바 ‘라바 자투(Lava Jato·세차용 고압 분사기)’식 고강도 수사를 시작했다. 호세프 대통령의 측근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수사망을 넓혀가다 이달 초 호세프의 정치적 스승인 룰라 전 대통령이 연루된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은 “룰라가 재임 기간 대형 건설업체 OAS 등으로부터 고급 아파트 등을 제공 받은 뒤, 이를 은닉해 세금 회피 및 불법자금 세탁 의혹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1야당인 브라질사회민주당(PSDB)은 호세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으며 “탄핵 절차에 응하거나 브라질연방선거법원(TSE)에 의한 2014년 대선 무효 심판을 받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노동자당의 연정파트너인 브라질민주운동당(PMDB)마저 13일 전당대회에서 “앞으로 30일간 연방정부 각료직을 맡지 않겠다”며 한 발 빼는 모양새를 보였다. 결국 17일 연방하원은 호세프 대통령 탄핵 절차의 첫 단계로 탄핵 문제를 심의할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날 룰라는 호세프 대통령이 제안한 수석장관직에 취임, 노동자당을 향한 사법 당국의 칼날에서 일단 벗어나게 됐다. 브라질에서 연방정부 각료는 주 검찰의 수사나 지역 연방법원 판사의 재판으로부터 면책되는 특권을 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파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 CNN 등 외신들은 “중남미 최대 강국 브라질의 정치권 비리 스캔들이 경제난과 맞물려 점점 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국 혼란 가속화하는 ‘경기침체’=불과 6년 전까지만 해도 연간 7.5%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던 브라질의 최근 경제 상황은 사상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브라질 경제성장률은 -3.8%로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를 선언한 1990년(-4.3%) 이후 25년 만에 가장 낮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브라질의 성장률을 -3.5%로 전망했다.

다른 경제지표들도 상황이 심각하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67%까지 치솟았으며, 실업률 역시 8.5%로 급상승했다. 이는 브라질 국가통계청이 공식 집계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최고치에 달한 규모라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원자재 슈퍼사이클(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한 경제 호황) 시대의 몰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 등을 브라질 경제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FT는 “과거 룰라 정부는 높은 원자재 가격만 믿고 재정상 잠금장치(fiscal taps)를 활짝 열어놨는데, 2009년 금융위기를 맞닥뜨리면서도 이를 다시 잠근다는 걸 깜빡해버린 것 같다”고 비판했다. 브라질 정부가 국영은행의 신용을 부풀리거나 가격상한제 등으로 소비를 촉진하려 한 점이 최근의 경제위기를 더욱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브라질의 GDP 대비 정부 지출 규모는 1980년대 20%에서 지난해 35%로 급증했다. FT는 “서비스와 효율성은 개발도상국 수준인데 지출 규모는 유럽 복지국가와 맞먹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브라질 시위는 ‘중남미의 봄’ 신호탄이 될까=정치·경제난 속에서 벌어진 브라질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에 대해 외신들과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현상” “브라질 사회가 진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우드로윌슨센터의 파울로 소테로 브라질연구소장은 “영웅 룰라의 비리 연루 혐의는 브라질로서는 슬픈 일”이라면서도 “대규모 시위와 사법 당국의 수사 의지는 부패한 정치인들이 무죄로 풀려나던 브라질 사회의 관행이 끝나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루이스 알베르토 모레노 미주개발은행 총재 역시 지난 4일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최근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를 휩쓸고 있는 정치권 부패 스캔들과 이로 인한 대규모 시위는 ‘아랍의 봄’을 연상케 한다”면서 “조만간 튼튼한 제도와 법에 의한 지배(법치주의) 등이 이뤄지면서 ‘중남미의 봄’이 도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