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南중국해 영유권 갈등과 미국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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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필자가 해양법 분야에서 학위논문을 쓰고 있던 1980년대에만 해도 지금 중국과 필리핀, 베트남이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다. 당시 중국은 석유수출국이었고 해양을 통한 무역 거래에 크게 의존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시작된 중국의 경제 성장으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남중국해는 세계 해상 운송의 3분의 1을 담당하며 중국은 원유 수요량의 85%를 남중국해를 통해 수입한다. 중국은 만일 이 해역에서 해상봉쇄를 당한다면 몇 달 만에 경제가 붕괴할 수 있다.

중국은 급증한 경제력으로 아시아 지역과 세계 도처에 이해관계를 가지게 됐기 때문에 지도부는 그를 지키기 위해 군사력을 꾸준히 증강, 현대화하고 있다. 중국군은 전자전에 역점을 두는 최첨단 군대이며 과하게 민족주의로 무장하고 있다. 현재 중국이 공격적 의도를 갖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힘이 커지면 힘을 쓰는 방향으로 생각하기 쉽다. 이 과정에서는 과거의 나쁜 기억들이 쉽게 재생되고 불필요한 적대감도 생성된다.

저명한 미국 군사평론가 로버트 하딕의 지적처럼 역사책을 보면 한 국가가 단기간에 강대국이 되면 거의 반드시 큰 전쟁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아테네의 부상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독일의 부상이 1차 세계대전으로, 일본의 부상이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세력 균형의 붕괴를 관계국의 외교적 역량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헨리 키신저를 포함한 국제정치학의 대가들은 아시아 상황을 1차 대전 직전 유럽의 상황과 비교하면서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결국 이 지역에서 큰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 대선을 보면 미국은 향후 상당히 다른 나라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시아 지역의 돌발 상황에 대한 통제 능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염려스럽다. 일본은 과거에 문제를 일으킨 당시의 모습으로 다시 변해 가는 것 같다. 특히, 일본은 남중국해의 긴장이 높아질수록 자위대를 적극적으로 전개할 것이다. 후쿠시마(福島) 사고 이래 6시간에 1대꼴로 유조선이 필요할 정도로, 일본의 전력 생산은 남중국해를 통해 들어오는 원유에 의존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여부와 시기 문제도 이런 큰 틀에서 봐야 하는데, 우리 정부의 일 처리는 조급하고 세련되지 못한 느낌을 준다.

중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남중국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중국과 필리핀·베트남이 큰 무력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오히려 아시아 지역의 긴장은 한반도에서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제2의 발칸반도 운운하는 말이 나오는데, 유사시 제2의 사라예보가 될 곳은 한반도다. 이런 때일수록 아시아의 지역 국제기구의 역할과 다면적 외교 채널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자주 만나고 대화하면 최소한 우발적인 사고는 막을 수 있다. 대화 채널은 많을수록, 다양할수록 좋다.

예나 지금이나 민감한 지역의 영유권 문제가 국제법으로 최종 해결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법률적 해결 노력은 분쟁의 탈정치화에 큰 도움이 되고 외교적 협상을 촉진시킬 것이다. 중국은 지난 7월 필리핀이 승소한 국제중재재판에 불참했으나, 패소의 외교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미국은 유엔해양법협약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을 상대로 남중국해 분쟁을 통제하는 데 국제법을 전면에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조속히 협약에 가입해 아시아 지역의 분쟁 해결에 법률이 차지하는 비중을 높여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