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리우올림픽>男마라토너 ‘X 세리머니’… O인가 X인가

男마라톤 에티오피아 릴레사 ‘反정부 제스처’ 논란

- 그럴 수 있다

‘릴레사 돕기’ 펀딩 개설하자
전 세계서 4000여만원 답지

1968년 ‘블랙파워 살루트’
박종우의 ‘독도 우리 땅’ 등
재평가 받거나 메달박탈 면해

- 그래선 안된다

정치 선전·인종 차별 금지
‘올림픽 헌장’ 어긋나는 행동
銀메달 반납해야 할 위기에

“귀국하면 죽거나 감옥간다”
릴레사, 美·케냐 망명 가능성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남자 마라톤 은메달리스트인 에티오피아의 페이사 릴레사(26)가 ‘X 세리머니’로 인해 메달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릴레사는 지난 21일 밤(한국시간) 브라질 리우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며 두 팔을 엇갈려 X를 표현했다. 릴레사는 시상식과 기자회견장에서도 X 세리머니를 계속했다. 릴레사는 “에티오피아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을 반대하는 의미”라며 “나는 평화적인 시위를 펼치는 반정부 시위대를 지지한다”고 설명했다. X 세리머니는 반정부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한 에티오피아 정부를 전 세계에 고발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릴레사는 에티오피아 오로미아 지역 출신. 오로미아는 에티오피아 전체 인구(약 9600만 명) 중 3분의 1이 사는 곳으로, 반정부 정서가 강한 곳이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는 에티오피아 정부가 최근 오로미아 반정부 시위대 400명 이상을 살해했다고 폭로했다.

2시간9분54초로 은메달을 획득한 릴레사는 그러나 X 세리머니로 메달을 반납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에서 일체의 정치적·종교적·상업적 선전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릴레사는 “에티오피아로 돌아간다면 그들(정부)은 나를 죽이거나 감옥에 가둘 것”이라고 말했다. 릴레사는 에티오피아가 아닌 케냐, 또는 미국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릴레사는 올림픽 헌장 제50조 3항 ‘올림픽 관련 시설과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곳에선 정치적, 종교적, 인종차별적 시위나 선전 활동을 금지한다’를 어겼다. ‘행정적’ 절차에 따른다면 메달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비슷한 사례를 살펴보면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세리머니는 추후 재평가됐고 찬사를 받았다.

1968 멕시코시티올림픽에서의 ‘블랙파워 살루트(Black Power Salute·사진)’가 대표적이다. 당시 육상 남자 200m 금메달리스트인 미국의 흑인 토미 스미스, 동메달리스트인 존 카를로스는 운동화를 신지 않은 채 검은 양말 차림으로 시상대에 올랐다. 둘은 목에 검은 스카프를 둘렀고, 미국 국가가 울리자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한쪽 손을 높게 쳐들었다. IOC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폭력적, 정치적 행위’를 펼쳤다며 스미스와 카를로스를 올림픽 선수촌에서 추방하고 메달을 박탈했다. 이들은 귀국 후에도 변변한 일자리를 얻지 못했으며 인종차별주의자들로부터 끊임없이 살해 협박을 받았다.

당시 은메달을 획득한 호주의 백인 피터 노먼도 흑인운동 배지를 상의에 부착하는 등 세리머니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1972 뮌헨올림픽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하지만 블랙파워 살루트는 기념비적인 흑인 인권 퍼포먼스로 재평가됐고 3명은 인종차별에 항거한 선구자로 추앙받고 있다. 2006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노먼에 대해 호주 의회는 “당시 호주인들의 처사가 가혹했다”며 공식사과까지 했다.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3∼4위전에서 숙적 한국과 일본이 격돌할 당시 일본을 2-0으로 꺾은 뒤 박종우(알자지라SC)가 유니폼 상의를 벗은 채 ‘독도는 우리 땅’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기쁨을 표현해 문제가 됐었다. IOC는 정치적 행위라며 박종우의 메달 박탈까지 거론했고 박종우는 시상식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2013년 2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릴레사 역시 마찬가지. 선수로서, 자연인으로서의 목숨을 걸고 에티오피아 정부의 폭력 진압을 고발한 그에게 전 세계에서 도움의 손길을 뻗고 있다. BBC는 23일 릴레사를 돕기 위한 크라우드펀딩이 개설됐으며, 순식간에 전 세계에서 4만 달러(약 4492만 원)가 모였다고 전했다. 크라우드펀딩이란 ‘대중(crowd)으로부터 자금을 모은다(funding)’는 뜻으로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매체를 활용해 자금을 모으는 방식이다.

크라우드펀딩을 주도한 미국의 솔로몬 웅가셰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애초 1만 달러를 목표로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했다”며 “하지만 불과 몇 시간 만에 2만5000달러가 걷히더니 또 몇 시간 만에 이를 훌쩍 넘어섰다”고 밝혔다.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