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에세이>자연 속 인간은 주인 아닌 손님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기숙, 머나먼 길, 150×120㎝, 캔버스에 한지, 흙과 채색, 2008

이기숙의 그림에는 주인공이 없다. 산이나 들, 꽃, 풀 등이 등장하는데 화면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다.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자연 속에 인간이 손님으로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자연의 모습이며 그곳에 스민 순리다. ‘낮은 곳을 찾아 스스로 흘러가는 물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던 노자의 향내가 깊게 풍기는 그림이다. 이기숙은 왜 이런 그림을 그릴까.

자신의 삶이기도 한 고만고만한 한국인 삶의 질곡에서 자연의 순리를 보았기 때문이다. 태어나고 자라고 학업을 마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그런 인간 삶의 패턴이, 언 땅에 물이 오르고 싹이 돋아나고 줄기와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고 수정을 하고 열매를 맺는…. 자연의 순환과 닮아 있다는 깨달음이 이기숙 회화의 핵심이다. 자신의 경험에서 길어낸 삶의 철학이 담긴 회화이기에 이기숙의 그림은 공감대가 넓다.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