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문효치 시인은… ‘월북자 아들’ 로 고초, 작품에도 허무함 담겨 詩作으로 공포 이겨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문효치 이사장은 스승인 미당 서정주(들고 있는 사진 오른쪽) 시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선생님의 사랑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말했다. 김선규 기자

‘뒤돌아보면 내 삶은 험난한 터널 속이었다. 때로는 연기가 가득 차기도 했고 때로는 큰 바윗돌이 굴러떨어져 가로막기도 했고 어떤 때는 폭우로 물이 들기도 했다. 그것들을 돌파하면서 70년을 걸어왔다. 여기 이 시들과 함께.’

문효치 시인이 시선 전집에 쓴 글이다. 194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을 연좌제의 그늘 속에 살았다.

“지주 집안이었는데, 6·25전쟁을 전후해서 토지개혁으로 몰락했다. 그 무렵에 증조부, 조부 모두 돌아가셨다. 부친도 월북했다. 재산은 없어지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어머니가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힘들게 살림을 꾸렸다. 나는 대학 시절까지 어렵게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는 군 입대를 위해 학사장교(ROTC)에 지원해 2년간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임관을 앞두고 신원 조회에 걸려서 탈락했다. 하사관으로 입대했는데, 월북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군 수사기관 요원이 밀착 감시해 상부에 일일 동향 보고를 했다.

“정신적 위압감이 매우 컸다. 제대한 후에도 경찰이 조사를 했다. 스트레스가 심해져 소화불량, 부정맥 등의 질환이 왔다. 체중이 34㎏까지 줄었다. 당시 배재중 교사였는데, 수업을 하고 나면 반드시 누워서 쉬어야 했다.”

병치레를 하느라 병원비가 많이 들어간 탓에 집안 살림은 역시 교직에 있던 아내(한춘희 여사)의 월급으로 꾸릴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회고다. 젊은 시절에 그가 썼던 시에는 어쩔 수 없이 삶에 대한 허무가 배어 있다. 스승 미당의 영향으로 향토적 정서를 담은 시를 쓰고자 했으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벗어던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사색은 그를 ‘백제’로 이끌었다.

“1970년대 초에 발굴한 무령왕릉 유물을 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거기에 갔다가 시신을 담은 목관을 보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1500년 전의 나무가 현재로 왔다는 것 아닌가. 나는 그 목관이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배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해서 쓰기 시작한 ‘백제시’들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색의 여행이었고, 그 시작(詩作)을 통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는 중·고·대학의 강단에 서는 생업 속에서도 꾸준히 시를 썼다.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위로해줄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근년에 그의 작품들은 작은 생명의 소중함에 천착하고 있다. 시집 ‘별박이자나방’은 곤충 벌레를 중심으로 탐색한 시집이고, ‘모데미풀’은 이름없는 풀들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서 관찰한 것이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피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지네／／ 한마디 말도 없이 피네 지네.’ (‘들꽃’ 전문)

“최근에는 시조에 관심이 생겼다. 시조는 고려 시대부터 생명력 있게 줄기차게 쓰이고 있다. 우리 민족과 아주 가까운 정서적 표현 도구라고 생각한다. 다음 시집은 시조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