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진 교수의 드라마 세상>끝에서 두 번째 사랑, ‘어쩌다 어른’이 된 중년의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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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은 자신의 삶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것이 서툴고 어리숙해서 힘들어하는 어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슬프고 아파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그렇지 않은 듯이, 그렇게 어른인 ‘척’하면서 살아간다. 중년 남녀의 사연을 다룬 SBS 주말특별기획 ‘끝에서 두 번째 사랑’은 바로 그런 어른들의 이야기이다.

이 드라마는 사랑보다 일이, 나보다는 자식이, 연애보다 건강이, 현재보다 노후가 우선인 어른들의 웃기면서도 슬픈 이야기를 표방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틀은 로맨스를 유지한다. 안정적인 사회적 기반과 별개로 세상사는 것이 버겁고 힘든 40대 중년의 사랑과 인생에 대한 성찰의 시선과 위로의 독백이 돋보인다. 인생의 무게를 느낄 만큼 느끼고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던 중년의 삶을 돌아보면서 오래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 책임 프로듀서이자 드라마본부 1팀의 팀장인 강민주(김희애)는 ‘제발 무슨 일이든 가슴 뛰는 일 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40대 중반의 여성이다. 수많은 로맨스 드라마를 히트시키면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신입사원 시절 드라마 촬영 중의 사고로 애인을 잃은 뒤 혼자 살고 있다. 혼자서라도 건강하고 멋있게 늙어 가리라 결심하고 이사 간 전원마을에서 새로운 이웃들을 만나면서 삶의 변화를 겪는다. 강민주의 이웃사촌 고상식(지진희)은 시청 지역관광과 과장으로 ‘오늘도 무사히, 부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평온하게 살고 있는 40대 중반의 남성이다. 15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하나뿐인 딸을 홀로 키우며 이미 결혼한 동생 부부까지 건사하느라 자신의 삶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젊은 시절, 방송사에 입사해서 드라마 연출부로 일한 적이 있지만, 촬영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동료가 죽은 뒤 방송사 일에 회의감이 들어 퇴사하고 공무원이 됐다. 드라마 촬영 장소 협조 문제로 강민주와 사사건건 부딪쳤던 것도 그때의 아픔 때문이었다.

스타감독 출신의 베테랑 강민주 팀장과 책임감으로 완전무장한 대한민국 5급 공무원 고상식 과장은 단순한 이웃사촌을 넘어 복잡한 관계로 엮어 대립하고 갈등한다. 강민주가 해결해주기로 한 다른 팀의 드라마 표절 문제 해결의 열쇠를 갖고 있는 웹툰 작가가 고상식의 여동생이고, 사고로 죽은 강민주의 애인이 고상식의 동료였던 것이다. 운명이라고 하기는 다소 작위적인 상황 설정이다. 여기에 30대 중반의 젊은 남성 박준우(곽시양)가 강민주에게 애정 공세를 펼치면서 연상연하의 상투적인 인물 구도까지 더해져 아쉬움을 남긴다.

당당하고 직설적인 박준우와 달리 강민주와 고상식은 자신들의 감정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매사 당황하면서도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간다. ‘어른이 되면서 포기해야 했던 것’을 다시 생각하고, ‘힘내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서로를 위로하면서도 ‘어른이어서 알 수 있는 것과 어른이 되어도 모르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강민주와 고상식은 ‘어쩌다 어른’이 된 동년배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인물들이다. 사랑할 수 있는 감정을 그리워하면서도 외롭다고 사랑하지는 말자고 다짐하는 중년 남녀의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사랑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가을밤을 보내는 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