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한인, 유대인, 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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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조사팀장

노예처럼 취급받던 멕시코 이민 1세들의 힘든 삶을 그린 영화 ‘애니깽’은 1997년 개봉하기 전부터 화제였다. 제34회 대종상영화제에선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뮤지컬로도 공연돼 1999년엔 한국뮤지컬대상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을사늑약 7개월 전인 1905년 4월 4일 인천항에서 1033명의 한인이 멕시코행 배에 몸을 실었다. 4년 계약으로 떠났지만 도착 직후 농장주들에게 노예로 팔려가다시피 했다. 토굴 등에 살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굶고 채찍으로 맞았다. 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도 사실상 일제 치하에 들어간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자 현지에 살면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군자금을 보냈다.

1860년대 연해주로 건너간 ‘현대판 디아스포라’ 고려인이 걸어왔던 삶도 차별과 박해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의병을 조직해 일본군에 타격을 주고 항일독립운동기지 건설에도 앞장섰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한 뒤 처절한 수난과 ‘피의 숙청’ 아래서 공포에 떨며 신음했다. 그 후 성공한 소수민족으로 일어섰다가 소련이 붕괴하면서 50만 고려인은 다시 유라시아 대륙을 떠도는 신세가 됐다(김호준 ‘유라시아 고려인-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

세계 어디를 가도 차이나타운이 없는 곳이 없다. 약 1800만 명의 화교와 화상(華商) 네트워크는 현대 중국 성장의 밑거름이자, 막강한 저들의 위상을 보여준다.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또 어떤가. 화상 네트워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민족을 꼽으라면 단연 유대인을 떠올린다. 디아스포라의 원조 격인 유대인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거의 모든 방면에 걸쳐 그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는 곳이 없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140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세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재외동포 수는 세계 176개국에 걸쳐 726만여 명. 글로벌시대에 재외동포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인적자산이자 미래다. 5대양 6대주에 한민족 네트워크를 엮어낼 첨병이자, 글로벌 코리아를 구축할 거점이 바로 그들이다. 5일은 제10회 ‘세계 한인의 날’. 재외동포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고취시키고, 한민족 공동체로서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국가가 법으로 정한 공식기념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