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회고록과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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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논설위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가 장안의 화제다. 2007년 노무현정부의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기권 과정을 둘러싼 ‘진실 게임’ 때문이다. 송 전 장관은 이 책 머리말에서 “이 작업을 하면서 ‘절반의 진실은 완전한 거짓보다 못하다’라는 말을 되뇌었다. 진실의 일부만 말하는 것은 오히려 진실과 거짓의 구분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고 서술하고 있다. 흔히 회고록(memoirs)과 자서전(autobiography)이 자주 혼동된다. 자서전은 ‘자기가 쓴 자기의 전기(傳記)’로서 인생에 초점을 맞춘 것인 반면, 회고록은 자신이 수행한 업무에 더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다르다. 또 자서전은 일생 전체를, 회고록은 특정 시기를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구별이 힘든 경우도 많다.

대표적 회고록으로 윈스턴 처칠의 ‘제2차 세계대전’이 꼽힌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술된 이 책은 1948년부터 1953년까지 매년 1권씩 총 6권으로 발간됐다. 나중에 1권으로 묶어 낸 요약본만 하더라도 10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이다. 처칠은 회고록을 쓰기 위해 자료와 메모를 미리 챙겨 놓았으며, 회고록 작성 당시 여러 증인을 다시 취재하고 기록물들을 꼼꼼히 재검토해서 작성했다. 이에 주요 역사 사료로 인정되고 있으며, 1953년에 노벨 문학상도 받았다.

세계사를 바꾼 회고록으론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회고록이 있다. 구술 녹음자료로 남겨진 이 회고록이 서방세계에 유출돼 폭로되자, 소련 측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위작이라고 대응했으며, 심지어 흐루쇼프 본인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자신의 것임을 부인하기도 했다. 소련 붕괴 이후, 일부 오역은 발견됐으나 진본이었음이 확인됐다. 흐루쇼프 회고록은 스탈린 체제 비판의 주요 무기였으며, 훗날 고르바초프 개혁의 밑거름이 됐다.

회고록 출판과 관련, 국가기밀 유출 논란도 적지 않다. 특히 국가 주요기관이나 정보기관 출신자의 저술은 검열을 받게 하는 것이 많은 국가의 관례다. 2007년 CIA 요원 출신인 발레리 윌슨은 ‘페어게임(Fair Game)’이란 자신의 회고록이 검열당하자, 검게 지워진 부분을 그대로 출판하는 방식으로 항의하기도 했다. 책 제목 자체가 표면적으론 ‘공정한 게임’이란 뜻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론 ‘만만한 대상(호구)’이란 중의(重義)적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