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徐遊記>(987) 48장 남북연방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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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의 한정식당 ‘아정’은 서울에서 몇 개 남지 않은 고급 요정이다. 오후 8시 반, 아정의 방 안에는 둘이 마주 앉아 있었는데 바로 서동수와 고정규다. 서동수가 비행기 안에서 하선옥으로부터도 만나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지만 오늘 밤 고정규를 만나고 있다. 그러나 옆방에는 비서실장 유병선, 특보 안종관, 국개위 국무위원장 진기섭까지 대기하고 있는 데다 고정규 또한 측근들을 대동했다. 비밀회동이지만 내일 아침이면 전(全) 언론사는 뉴스로 보도할 것이었다. 상 위에는 한정식 요리가 가득 차려졌고 소주병까지 널려 있었는데 둘은 아직 밥그릇 뚜껑도 열지 않았다. 인사를 한 후 날씨와 건강 이야기가 막 끝난 참이다.

주위는 조용하다. 아정은 방이 5개였는데 오늘 밤은 방 4개가 서동수와 고정규 일행으로 가득 찼고 다른 손님은 받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 안방 쪽을 주시하며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만남은 어제 오후 서동수가 직접 고정규에게 제의함으로써 이루어졌다. 단 둘만의 회동 제의였지만 측근들을 대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윽고 서동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민족당과 북한 민생당과의 연대를 깨뜨리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긴장한 고정규가 어깨를 치켜세웠고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새 바람, 참기 운동이 궤도에 오른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제가 고 대표께 제의를 하려고 합니다.”

고정규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빙그레 웃었다.

“같이 운동하십시다. 누가 일으켰건 상관없이 민족당이 참여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붙을 겁니다. 그야말로 거국적인 기운이 일어나겠지요.”

“…….”

“선거 운동을 떠나서 한민족의 기운을 일으키는 데 동참하시라는 말씀입니다.”

고정규가 심호흡을 했다. 그러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여기 오기 전에 회의를 했을 것이다. 수십 가지의 예상 의제를 내놓고 수백 가지의 해답 중에서 최상의 것을 고른 후에 출전(出戰)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아마 이런 제의는 예상 의제에 들어가지 않은 것 같다. 그때 고정규가 물었다.

“결국 서 후보님 선거를 도우라는 말씀이나 같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면 할 수 없지요.”

쓴웃음을 지은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 일어나는 새 바람, 참기 운동에 아군, 적군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북한에도 참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 지난번 최만철이 평양에서 ‘석 달 참기’ 운동을 주장한 후로 북한에서도 새 기운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 기관에서는 그 새 기운이 서동수의 지지율로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오직 한민족과 대한연방의 새 기운인 것이다. 소주병을 들어 고정규의 잔에 술을 따랐다.

“새 바람, 참기 운동을 민족당의 구호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그것을 우리 공생당(共生黨)만의 전유물로 하지 않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상의를 해봐야겠지만…….”

술잔을 받은 고정규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공생당 선거를 도와주는 것이 되는 것 같아서요.”

그러더니 고정규가 얼른 덧붙였다.

“새 바람, 참기 운동에 저희들도 공감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예상은 했다. 그러나 함께 가자는 제의를 한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모를 사람들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