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결정하는 건 사랑 아닌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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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시장 / 준 카르본·나오미 칸 지음, 김하현 옮김 / 시대의창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결혼은 더 이상 모두의 당연한 경험이 아니다. 노년 세대들은 종교나 질병과 같이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는 소수만이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장년 세대에서는 그 비중이 조금 낮아졌으며, 청년 세대에서는 연애, 결혼, 출산 등 사회적 관계 형태가 인생의 필수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중이다.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모두 포기하거나, 결혼 또는 출산 중 하나를 관계의 전제로 고려하지 않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경제적 독립성을 얻어낸 여성의 움직임, 임신을 여성 스스로 결정하도록 돕는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 가족의 구축에서 생물학적 요소만이 아니라 사회적 요소를 존중하는 법적·제도적·관습적 변화 등이 청년세대의 움직임을 촉진한다. 그 결과, 한국은 성인 남녀 두 사람이 아이 하나만을 출산하는 기록적인 저출산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이며, 인구의 절대적 숫자가 감소하는 ‘인구절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인구절벽 이후에는 사회와 경제를 움직이는 활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작은 침체가 더 큰 침체를 낳는 악순환이 찾아올 것이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정부는 각종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청년세대의 체감과는 동떨어져 빈축과 풍자의 대상으로 조롱당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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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피부로 느끼는 것을 논리로 이해할 수 있을 때 머릿속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좋은 책의 필수조건이기도 한다. ‘결혼시장’이 바로 그런 책이다. 책을 읽고 나면 ‘머릿속에 불이 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족법 전문가로 오랫동안 이 문제를 연구해 온 준 카르본과 나오미 칸 교수는 연애, 결혼, 출산을 둘러싼 가족제도의 심각한 변동과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만드는 데 새로운 통찰력을 부여한다. 저출산이나 비결혼 같은 결혼 제도의 급진적 변동을 낳은 것은 ‘경제적 불평등’이며,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하고 사회적으로 대물림하도록 만드는 것들을 직접 손대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미 알지 않았는가. 문제는 오로지 돈이라는 것을. 사랑으로 결혼해서 돈 걱정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세상이라면, 결혼이나 출산을 망설이겠는가.

책은 연애와 결혼과 출산에 대한 생각이 돈의 유무에 따라, 즉 사회경제적 계급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사회 전반에 깊숙이 파고들고, 여러 법적 장치가 이를 뒷받침하면서 결혼시장에 심각한 구조적 변화가 나타난다. “결혼연령은 갈수록 높아지고, 결혼율은 갈수록 낮아지며, 결혼한 부부의 절반은 이혼한다. 동성결혼은 합법화되고, 혼외관계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의 비율이 높아진다.” 이러한 현상은 신자유주의에 편입된 200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에서도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균값은 아무것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일하는 남성 가장과 여성 가정주부로 이뤄진 전통적 가족모델은 완벽하게 시대착오적이다. 지식정보 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주로 남성들이 담당하던 육체노동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여성이 대거 사회에 진출하면서, 여성이 경제적 자립성을 획득해 결혼을 둘러싼 조건을 놓고 남성과 각종 협상을 벌이는 ‘맞벌이 모델’이 사회적 표준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사회계급의 상층에 속한 이들은 결혼에 전혀 부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이들은 계급에 맞는 결혼이야말로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가려는 자신의 기대치를 충족해 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고 있다. 둘이서 벌면 전망 좋은 집에 살고 아이도 사교육을 시키면서 사회적 계급을 대물림할 만큼 훌륭하게 키울 확률이 높지만, 혼자 벌면 별 볼 일 없는 학군에 있는 서민 주거지에서 살기 쉬운 것이다. 이 계층에 속한 이들은 좋은 직업을 얻을 때까지 결혼과 출산을 최대한 미룸으로써 적합한 조건의 배우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좀처럼 이혼하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면, 이 계층에 속한 여성의 숫자(이른바 골드미스)는 늘고, 불평등의 심화에 따라 남성 숫자는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사회계급의 하층에 속한 이들(특히 여성)은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을 택한다. 만성 실업에 시달리는 데다 질 나쁜 일자리를 전전하면서 살아가는 불안정한 하층 남성들과 결혼하는 것은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보다 오히려 나쁜 선택이 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이들은 거의 연애 자체도 포기한다. 중간층의 경우 학력이나 경력이 같은 조건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소득이 높은 경우가 많다. 이들은 남성과 연애는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당연히 높다.

이러한 결혼시장의 불균형은 갈수록 경제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것이 문제다. 결혼 시장의 최상층에 있는 이들은 가족을 유지하고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사회적 조건을 까다롭게 만듦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하려 하고, 중하층은 초기에는 이들을 좇으려 하지만 점차 포기하면서 그들의 자녀 역시 같은 계층상승의 사다리를 잃어버린다. ‘결혼시장’은 결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와 ‘자녀의 사회적 양육’을 가져오는 실질적 제도의 도입이라고 말한다. 대선을 앞둔 한국사회가 반드시 귀담아들을 만한 교훈이다.

장은수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