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국 기술력, 4차 산업혁명서도 뒤처지고 있다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내린 세계 최대의 가전박람회(CES)는 세상을 바꾸는 첨단기술의 각축장이었다. 지난 50년 간 숱한 신기술을 주도했던 CES의 혁신 전파자로서 역할은 올해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졌다. 관람객들은 머릿속에만 있던 제품과 서비스를 직접 경험하면서 4차 산업혁명이 이미 시작됐음을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인공지능(AI)은 글로벌 산업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됐다. 지난해 ‘알파고 쇼크’로 존재감을 드러낸 AI는 CES에서 다양한 활용 제품을 앞세워 현실 영역에 진출했다. 산업 간 경계는 완전히 허물어졌다. 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로봇 등 첨단기술은 긴밀히 연결된 형태로 구현됐다. IT·가전을 제치고 CES의 주역으로 떠오른 자율주행차는 신기술의 거의 모든 요소를 결집한 4차 산업혁명의 진수(眞髓)였다. 특히 중국의 급부상은 인상적이었다. 전체 참여 업체 3800여 곳 중 3분의 1 이상이 중국 기업일 만큼 분위기를 휘어잡았고, 드론과 가상현실(VR) 분야에서는 기술력으로도 ‘퍼스트 무버’의 위세를 과시했다. 중국 기업이 CES의 핵심 가치인 혁신에 가장 부합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한국 기술력은 상대적으로 존재감을 잃어가는 분위기다. IT와 가전 최강자인 삼성전자·LG전자는 예년과 달리 기조연설자에서도 빠졌다. 스마트홈 등 신기술을 선보이긴 했으나, 4차 산업혁명이란 큰 틀에서 볼 때 주전장(主戰場)으로 보긴 힘들다. CES 참여 기업의 20%는 3년 전에는 없었을 정도로 스타트업들이 무서운 기세로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국내에는 유망한 젊은 피도 보이지 않는다.

글로벌 산업의 대전환기를 맞아 모든 나라가 승기를 잡기 위해 사활을 건 전쟁에 나섰다. 하지만 국내 대표기업들은 여전한 신산업 규제와 경제 민주화 등 정치 변수에다 끝없이 이어지는 청문회, 검찰 수사, 특검 수사에 발목이 잡혀 있다. 기업의 기를 살리지 않고선 대한민국의 미래를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