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재판권 침해하는 시위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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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동국대 교수 헌법학

한겨울 눈발이 날리는 영하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촛불집회와 맞불집회가 지난 21일 도심에서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탄핵을 촉구하는 주말 광화문 촛불집회에서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조의연 부장판사를 파면하라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이에 맞서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단체들도 이날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대규모 맞불집회를 열었다. 탄핵 사태 이후 사법권을 압박하는 집회시위가 위험 수준으로 치닫고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후반에 터진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국민의 분노를 유발하면서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에서 박 대통령은 연루 혐의를 받았고 급기야 국회에 의한 탄핵소추로 이어졌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경우 처음 언론에 몇몇 의혹이 보도될 때만 해도 그 누구도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사건에 대통령의 연루 의혹이 불거지고, 이를 해명하기 위한 대통령의 기자회견 등이 오히려 사건의 의혹을 키우면서 국민의 분노를 촉발했다.

현재 대통령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에 의한 탄핵심판, 최순실 등에 대해서는 검찰의 기소에 의한 법원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또, 국회의 국정조사와 특검에 의한 수사 등 헌법을 비롯한 실정법에 따라 국가가 할 수 있는 수단은 총동원돼 사건의 진실 여부를 밝히고 이에 따른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 헌법을 지배하는 기본원리는 법치국가 원리이다. 법치국가 원리는 모든 국가작용이 법에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 국가권력이 법에 의해 통제될 때 국민의 기본권은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다. 최순실 사건도 법치국가 원리에 따라 정당하게 사법절차를 적용해야 한다.

법치국가에서는 그 누구도 법으로부터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미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법원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고, 의혹을 남김없이 파헤치기 위한 특검 수사도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한 시민의 집회나 시위가 계속되면서, 헌법재판이나 법원의 재판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문제가 있다. 물론 헌법재판소나 법원이 국민의 여론이나 외부의 압력 때문에 정치적 재판이나 여론재판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헌법재판관이나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법적 양심으로 재판할 것을 헌법에 의해 보장받는다. 그런데 그들도 인간이고 국민이기 때문에, 집회와 시위가 계속된다면 전적으로 법리(法理)에 따라 재판하는 일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집회와 시위는 헌법에 의해 보장되고 있으며, 국민은 누구나 집회나 시위를 할 수 있다. 집회나 시위는 집단의 의사표시 방법으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국민의 기본권이다. 집회와 시위에서 표출된 국민의 의사는 국가정책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 대통령의 탄핵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집회나 시위가 계속된다고 해도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국민의 의사표현 수단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다.

그런데 최순실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특검수사와 재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재판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지나친 찬반집회와 시위는 오히려 재판청구권의 침해나 헌법재판권 및 사법권 행사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제는 정의의 실현과 법치의 확립을 위해 냉정하게 사법적 절차를 지켜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