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트존>사인 사냥꾼, ‘판매’ 목적으로 수집… 스피스 ‘마스터스 깃발 사인’ 4000달러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조던 스피스는 특히 불우한 어린이를 돕는 공헌활동을 펼치면서 미국인들 사이에서 사랑과 존경을 함께 받고 있다. 지난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캐딜락 챔피언십 도중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스피스. AP연합뉴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조던 스피스가 사인한 마스터스 깃발들이 22일(한국시간) 이베이에서 거래되고 있다.

최근 스포츠의 천국 미국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잇따라 발생했다. 골프 스타 조던 스피스(24)는 이른바 ‘사인 사냥꾼’들과 승강이를 벌였고, 제51회 미국프로풋볼(NFL) 결승전 슈퍼볼에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짜릿한 역전승을 이끈 쿼터백 톰 브래디(40)는 우승 직후 유니폼을 도난당했다. 또 미국프로농구(NBA)에서 은퇴한 LA 레이커스의 살아있는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39·이상 미국)의 모교에 전시된 그의 고교 시절 유니폼과 농구화, 우승 트로피가 도난당했다. 스타의 친필 사인, 그리고 용품은 미국, 유럽 등지에선 기념물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현금’, 그것도 거액이 된다. 온라인 거래사이트인 이베이 등에선 스포츠 스타의 사인, 용품 등이 거래되고 있다. 사인을 받아 내다 파는 사인 사냥꾼이 스포츠 이벤트를 쫓아다니고, 스타의 용품이 ‘실종’되는 이유다.

브래디는 지난 6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NRG스타디움에서 열린 제51회 슈퍼볼 직후 유니폼 상의를 잃어버린 뒤 “(사라진 유니폼은) 언젠가 이베이의 판매목록에 등장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실제로 슈퍼스타의 용품은 엄청난 고가에 거래된다.

역대 가장 비싼 스포츠 ‘기념품’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타자 베이브 루스가 1920년 입었던 유니폼으로 2012년 경매에서 441만5658달러(50억6475만 원)에 낙찰됐다. 1909년 미국의 한 담배회사가 홍보를 위해 제작했던 당시 메이저리그의 스타 유격수 호너스 와그너의 야구 카드는 2007년 280만 달러(약 32억1300만 원)에 팔렸다. NBA 무대를 주름잡았던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1997년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신었던 농구화는 10만4765달러(1억2000만 원), 2014 브라질월드컵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독일의 미드필더 마리오 괴체의 축구화는 200만 유로(27억 원)에 팔렸다.

그런데 용품은 특성상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손에 넣기란 하늘의 별 따기. 희귀성이 따라붙기에 가격은 그만큼 높게 형성된다. 반면 사인의 경우 특별한 ‘밑천’이 들지 않고, 손쉽게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종이, 사진, 공, 모자 등에 사인을 받으면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돈을 벌 수 있다. 그래서 이베이에선 용품보다 사인 품목이 더 많이 거래되고 있다. 골프다이제스트 등에 따르면 이베이에 올라온 스피스 관련 품목은 350여 개에 달한다.

스피스의 사인 가격은 이베이에서 무척 다양하게 형성돼 있다. 종이에 받은 사인은 100달러(11만5000원) 전후로 거래되고, 스피스가 우승을 차지했던 2015년 미국프로골프(PGA) 메이저대회 마스터스의 기념 깃발에 새겨진 사인은 4000달러(459만 원)나 된다.

심지어 코카콜라 캔에 받은 사인도 판매되고 있었는데, 가격은 300달러(34만4000원)다. 쓰레기가 30만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다시 태어난 것.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36·스위스)의 사인도 이베이의 인기 품목. 한 판매자가 “페더러가 직접 사용한 라켓으로 그의 사인이 곁들여졌다”고 설명한 제품의 가격은 4900달러(562만3000원)까지 치솟았다. 일반 테니스공은 사인이 실밥에 걸쳐졌느냐, 걸쳐지지 않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실밥 위에 걸쳐진 사인볼은 최소 50달러(5만7000원)에 거래되고, 걸쳐지지 않아 사인이 깔끔한 공은 750달러(86만 원)다.

야구공의 경우 실밥 안쪽에 새겨진 사인이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다. 눈에 잘 띄는 스위트 스폿이기 때문. 또 정규리그에서 사용되는 공이 일반 연습공보다 더 비싸며, 특히 월드시리즈에서 사용된 공에는 무조건 사인을 받아놔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스타의 사인과 특정인, 그러니까 사인을 받는 사람 등의 이름이 함께 표기되면 큰돈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랑하는 데이지에게, 스피스가’ ‘또는 엘리자베스가 건강하길 바라며…, 커리가’ 등이라면 거래되기조차 쉽지 않다. 따라서 스타의 사인만을 받는 게 파는 데는 유리하다. 사인을 받은 뒤 보존 상태 역시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인받은 종이, 사인받은 공, 사인받은 모자가 누렇게 변색 됐거나 사인의 일부가 지워졌다면 가격은 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인 사냥꾼이 활개를 치면서 스타들의 경계수위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스포츠 선수는 팬들에게 사인해주는 게 일종의 의무다. 응원에 대한 보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인 사냥꾼은 기념하기 위해서, 좋아하는 선수와의 추억을 위해서가 아니라 판매를 목적으로 사인을 받는다.

선수와 팬 사이에 형성된 신뢰감을 사인 사냥꾼에게 기대할 순 없다. 그래서 종종 마찰이 빚어진다.

스피스는 지난 10일 PGA투어 AT&T 페블비치 프로암 연습 라운드에서 사인 사냥꾼들과 말다툼을 벌였다. 스피스는 연습 도중 짬을 내 어린이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었는데, 한 무더기의 어른들이 아이들을 밀치고 다짜고짜 사인을 요구했다. 스피스가 사인 사냥꾼들의 사인 요청을 거절하자 이들은 스피스에게 “당신이 타이거 우즈라도 되는 줄 아느냐. 우즈처럼 행동하지 말아라” 등의 폭언을 쏟아내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스피스는 “몇 명이 내게 다가와 여러 가지 용품을 꺼내며 사인을 요구했지만, 순수한 팬이 아닌 선수들의 사인을 전문으로 거래하는 업자라는 사실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스피스는 “각종 골프용품에 사인을 해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물건들이 온라인 경매 사이트에 등장하는 경우를 수없이 봤다”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유명인의 사인을 받아 이익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일자리를 찾기 바란다”고 충고했다.

지난해 6월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지휘봉을 잡은 조제 모리뉴(54·포르투갈) 감독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중국 상하이 투어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자신의 전 직장인 첼시의 유니폼에 사인을 받으려던 팬과 마주한 것. 모리뉴는 사인 요구를 무시하며 “나는 이제 첼시 사람이 아니다”라고 쏘아붙였다. 영국 매체 데일리 메일은 “분명히 그 팬은 사인 사냥꾼이었을 것”이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자격의 모리뉴 사인을 첼시 유니폼에 받아 팔면 적잖이 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1월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시티로 이적한 가브리엘 헤수스(20·브라질)도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사인 사냥꾼들의 공세에 시달렸다. 심지어 한 사인 사냥꾼은 비닐로 포장된 독일산 치즈 위에 사인을 요구해 헤수스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데일리 메일은 “치즈 위에 사인을 받으면 희귀성이 있기에 돈을 더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