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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03월 31일(金)
정부가 원하는 대로만 한다면 노벨상 수상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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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과학 이야기 - (24) 노벨상 <끝>

▲  일러스트 = 김연아 기자 yuna@munhwa.com

매년 노벨상이 발표되면 물어보는 분이 많다. 금년에 상을 받은 연구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우리나라는 언제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지가 단골 질문이다. 앞의 질문이라고 대답하기 쉬운 것은 아니지만, 매번 들어도 늘 곤혹스러운 것은 둘째 질문이다. 노벨상을 많이 배출한 나라가 전 세계 물리학 발전을 앞장서 견인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상자를 아직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우리나라 물리학계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아주 훌륭한 연구를 하는 것”말고 노벨상을 받는 다른 방법은 없다. 하지만 노벨상을 못 받게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내 연구그룹의 이송섭, 조우성 군이 재밌는 자료를 보여주었다. 물리학 논문 하나하나의 제1저자(대개의 경우 논문 작성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를 기준으로 논문들을 나라별로 분류하고는 논문의 페이지 수를 가지고 나라마다 막대그래프를 그려본 거다. 짧은 논문보다 긴 논문을 쓰는 것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 것임을 생각하면, 어느 나라나 페이지 수가 늘어날수록 막대의 높이가 줄어드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4페이지 정도의 논문이 가장 많고, 10페이지, 20페이지로 논문이 길어질수록 논문 수가 줄어드는 꼴이다. 모든 논문에는 반드시 들어가야 할 내용이 있다. 논문에서 보고한 연구가 기존 연구와 어떤 연속성을 가지는지, 그리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해야 하고, 다른 연구자가 결과를 재현할 수 있도록 연구방법도 상세히 적어야 한다. 연구결과를 자세히 설명해 적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다 보니, 물리학 분야에서 4페이지 정도보다 더 짧은 논문은 드물다. 논문 길이는 연구에 따라 다르다. 4페이지면 충분히 내용을 설명할 수 있는 연구도 있지만, 어떤 연구는 적어도 20페이지 이상이 필요할 수도 있다.

여러 나라 논문을 모아 페이지 수를 분석한 막대그래프로부터 흥미로운 관찰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페이지 수가 늘어남에 따라 막대의 높이가 줄어드는 양상이 일본에 비해 더 두드러진다는 거다. 미국과 독일의 경우에는 일본보다도 막대의 높이가 더 천천히 줄어든다. 즉, 우리나라와 중국의 물리학자는 미국과 독일, 그리고 일본의 물리학자보다 긴 논문을 상대적으로 적게 쓰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이유가 뭘까? 중국에서의 이유야 내가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짧은 논문을 연구자가 선호하는 이유는 내 주변 물리학자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연구비 지원, 대학교마다 매년 시행하는 연구업적평가, 교수의 승진 평가, 그리고 평가기관에서 시행하는 대학평가 등, 대부분의 평가에서 논문의 숫자가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굳이 힘들게 논문을 길게 쓸 이유가 없다. 어떤 연구 주제를 고를지 고민할 때, 당연히 아래의 기준을 이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연구비 지원 기간 안(보통 매년 결과를 보고한다)에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결과를 정리해서 논문을 출판할 때까지 짧은 시간과 적은 노력만 필요한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20페이지 논문이나 4페이지 논문이나 둘 다 정확히 같은 ‘논문 한 편’으로 평가받는데, 누가 힘들여 긴 논문을 쓰겠는가.

위의 내용을 쓰다 두려워졌다. 이 글을 본 누군가가 또 새로운 지표를 만들면 어쩌나. 미국과 독일처럼 노벨상을 많이 배출한 나라는 긴 논문이 많고, 논문의 길이가 아닌 숫자를 중요한 지표로 이용하니 우리나라 연구자가 긴 논문을 쓰지 않으려 한다는 내 이야기를 피상적으로 이해하고는, 논문의 페이지 수도 평가지표로 넣을까 두렵다. 한 나라의 초콜릿 소비량이 그 나라의 노벨상 수상자 숫자와 상당히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으니, 전 국민 초콜릿 먹기 운동을 벌여 노벨상을 받겠다는 것과 비슷한 얘기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차이를 이해 못 하는 사고방식이라는 면에서, 논문 많이 쓰기 운동이나, 긴 논문 쓰기 운동이나, 초콜릿 먹기 운동이나 도긴개긴이다. 만약 논문 페이지 수가 평가지표로 이용되면 내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논문 페이지 수를 인위적으로 늘리려 노력하게 될 거다. 4페이지에서 끝낼 수 있는 논문을 10페이지로 늘려 중언부언 적게 될 거다. 오늘 얘기는 미국과 독일처럼 페이지 수가 많은 논문을 쓰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숫자 하나를 대응시켜서 연구자들을 한 줄로 줄 세우는 일을 하지 말자는 거다. 연구자를 한 줄로 늘어놓는 정량적인 지표가 무엇인지가 논의의 중심이 되는 한,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은 결코 나오지 못한다. 노벨상은 논문을 많이 썼거나 긴 논문을 썼다고 받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연구를 해야 가능한 거다. 하지만 논문의 숫자를 주로 평가해 긴 논문을 쓰는 것이 간접적으로라도 지금처럼 불이익을 받는다면, 오랜 시간 충실히 진행해 길게 논문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연구주제는 연구가 시작도 안 될 위험이 있음을 지적하고자 할 따름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대부분 과학자는 좋은 연구를 하고 싶어 한다. 노벨상은 훌륭한 연구의 결과이지 연구의 목표는 아니다. 어쨌든, 노벨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는지는 난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노벨상을 받지 못하게 할 수 있는지는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는 극소수의 과학자에게 몰아주자. 쩨쩨하게 100억 원이 아니라 일 년에 1000억 원씩, 아니 한 명에게 1조 원쯤. 이리하면, 먼 미래에 훌륭한 연구로 이어질 수도 있는 연약한 싹은 처음부터 깡그리 죽일 수 있고, 엄청난 연구비를 받는 사람은 연구자가 아닌 관리자의 역할이 더 중요해져 창의적인 연구를 못 하게 되니, 노벨상 수상을 불가능하게 할 좋은 방법이다. 과학자로 하여금 자부심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민간기업에서도 쉽게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기본적인 작동원리를 고민해 구현하는 과학자의 급여는 줄이고 과학자가 만든 인공지능 장치를 판매하는 사람에게 훨씬 더 높은 월급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다. 정부가 할 일은 더 많다. 정부의 정책 결정을 위한 자문을 하고 토론회를 열고는 정부가 원하는 방향에 반대 의견을 내는 과학자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다음에 다시는 부르지 않으면 된다. 이는 과학자로서의 자부심을 빼앗아 자괴감을 줄 뿐 아니라, 정부가 원하는 대로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꿩 먹고 알 먹고 일거양득의 좋은 방법이다. 대학원생들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을 정부나 대학이 책임지지 않고, 지금처럼 지도교수 개인에게 맡기는 것도 잊지 말기를. 연구비로 인건비를 지급하는 지도교수는 매년 평가 기준을 맞추어야 다음 해 연구비를 받을 수 있으니, 지금까지처럼 1년 안에 마쳐서 여러 편의 짧은 논문으로 쪼개 결과를 출판할 수 있는, 곧 학계에서 잊힐 연구를 계속한다. 또, 인건비를 매개로 한 지도교수에 대한 대학원생의 경제적 종속은, 중세적인 사제간 신분적 종속관계로 쉽게 이어진다. ‘시키면 한다’의 마음가짐으로 무장한, 질문하지 않는 것이 몸에 밴 젊은 대학원생은 창의적인 생각의 씨앗을 싹 틔울 수 없게 된다. 과학 연구를 계속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경제적인 보상이 없더라도 직업의 안정성 말고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순진한 젊은 과학도가 많다. 이들이 일찍 그 꿈을 포기하도록 학위 후의 직업 불안정성을 지금처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학위를 취득한 박사후 연구원이 첨단 과학연구의 최전선에서 매일 매일 중요한 성과를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지 못하게 하고, 현재의 불안정한 취업 상태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계속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정규직 연구자는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려야 하고, 게다가 이들에게는 불안한 비정규직마저도 감지덕지 감사할 일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주지시켜야 한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수 0명, 영원히 계속할 수 있다. 지금처럼만 한다면야.

연재를 마친다. 모든 독자분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 쓴 내가 그랬듯이 읽은 당신도 즐거웠기를. (문화일보 3월 8일자 24면 23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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