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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미숙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7년 04월 24일(月)
문제는 ‘노무현式 대북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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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국제부장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조기 대선을 보름 남겨두고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노무현정부에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과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그가 ‘아군끼리 총질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표결 전후 관련 문건을 공개하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재차 진위 공방을 벌이는 것은 민주당의 대북 접근법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볼 수 있다.

송 전 장관이 새 문건을 공개하면서,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 후보가 북측 입장을 확인해 보고 결정하자고 했다고 거듭 주장한 데 대해 민주당 측은 23일 허위라고 일축하며 당시 회의자료 등을 공개했다. 문 후보는 23일 저녁 TV토론에서 이 논란을 “제2의 NLL(서해북방한계선)사건”이라고 규정하며 반발하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를 둘러싼 양자 간의 논란은 이제 진위 공방전으로 번진 셈인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인이 되어 증언할 수 없는 상태라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등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해 국정조사와 특검 실시 등을 요구하고 있어 경우에 따라 국기 문란 사건으로 비화되어 제2의 탄핵사태로까지 갈 수도 있다.

송 전 장관과 문 후보 간 논란의 이면엔 북한 문제에 대한 거대한 시각차가 깔려 있다. 노무현정부 당시 송 전 장관을 비롯한 외교부 측은 북한 문제를 국제 기조에 맞춰 보편적인 외교원칙에 맞게 접근해야 한다는 관점을 견지했다. 반면 문 후보를 비롯한 청와대와 통일부는 북한을 민족 내부 문제의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입장이 강했다. 특히 노무현정부는 김대중정부를 계승했다고 하지만, 북한 문제를 보는 시각에서는 본질적 차이가 있다. 김대중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은 어디까지나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햇볕’이란 수단을 통해 북한체제를 변화시키겠다는 ‘반공적’ 접근법이다. 반면 노무현정부의 대북정책은 민족공동번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한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보다 우리민족끼리 공생하자는 쪽에 방점이 있다. 북한의 인권이나 체제 문제는 관심 밖이었다.

이 같은 입장은 노무현정부 내내 충돌했다. 2003년 외교부와 청와대에선 자주-동맹파 충돌이 벌어져 동맹파 외교관들에 대한 인사보복이 이뤄졌다. 2004년 국방백서에선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는 표현을 제거하고 대신 ‘직접적 군사위협’으로만 규정해 논란이 뜨거웠다. 2004년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방문 때 노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는 점에서 일리가 있다”고 말해 미국의 반발을 샀다. 임기 말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때엔 외교부 측에 끝까지 비밀을 유지하다 정상회담 합의 발표 직전에 알려줘 논란이 됐다.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은 2007년 12월 대선 전날 남북정상회담 표지석을 전달한다며 비밀리에 방북해 파문을 낳았다.

송 전 장관은 결국 문 후보의 대북 인식에 대해 묻고 있는 셈인데, 논란 발생 후 민주당이 보인 반응은 10년 전과 꼭 같았다.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으로 한반도 위기 수준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시대의 대북 프레임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문 후보는 23일 ‘담대한 비핵화 평화 구상’을 발표하며 햇볕정책과 대북포용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북한의 변화를 견인하겠다고 했지만, 북한 인권 문제나 김정은체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 및 국제사회와의 대북 공조에 대한 언급도 없다. 다만 북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이 포괄적으로 추진되도록 할 것이며 이를 위해 북한과 중국을 설득해 6자회담을, 미국을 설득해 북·미 관계 개선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밝혔을 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 압박을 통한 북핵 해결에 나서고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협상할 때가 아니다”고 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김정일 사후 핵실험을 세 차례나 더했고, 화학무기를 동원해 이복형 김정남을 말레이시아에서 독살까지 한 상황이다. 문 후보가 집권 비전을 보이려면 최소한 노무현시대의 대북 접근법에 대한 반성 속에서 변화한 한반도 상황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북한 인권 문제에는 침묵하면서 이미 시효가 다한 노무현식 접근법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면 한·미 동맹은 파국을 맞고, 유엔 및 국제사회에서도 ‘김정은 아류’쯤으로 인식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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