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지방자치의 해묵은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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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수 전국부 부장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까지 숨 가빴던 여정이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으로 또 하나의 역사적 매듭을 만들었다. 선거 결과를 놓고 볼 때 수많은 성공 요인이 있겠지만 광역과 기초단체장, 광역과 기초의원 상당수를 차지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우세한 조직력이 큰 몫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지난 18대 대선 당시 가동했던 전국적인 ‘밑바닥 조직’이 우군이 돼서 그의 당선을 도운 것으로 보인다. 또 역대 선거에서 영·호남 유권자들이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던 고질적인 몰표 현상이 상대적으로 누그러진 점도 유리한 요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문 대통령이 ‘풀뿌리 민주주의’인 지방자치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문 대통령을 포함해 이번 대선에 나섰던 후보들은 모두 지방분권형 개헌을 약속했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초래하는 국가적 폐해를 뼈저리게 경험한 터라 중앙 권력을 지방 분권형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게 사실이다.

1995년 6월 기초·광역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을 주민 직선으로 선출한 이래 역대 정부는 지방 분권을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해왔다. 하지만 자치권을 평가하는 입법권, 조직권, 행정권, 재정권 등 어느 요인을 보더라도 실질적인 지방자치를 실현하는 데는 아직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지방일괄이양법 제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앙행정 권한과 사무의 지방 이양은 지방분권의 핵심적인 내용이지만 지방일괄이양법 제정은 10년째 깜깜무소식이다. 지방분권이 지체되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현행 헌법의 장벽이다. 헌법의 전체 130개 조항 가운데 지방자치 관련 조항은 117조와 118조 두 개뿐이다.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내에서만 조례를 제정할 수 있을 뿐이다. 지방자치를 회복시킨 헌법이 역설적으로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 자치행정권을 제약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제가 외형만 그럴듯하지 ‘무늬만 자치제’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헌법 조항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명시하겠다는 협약서에 서명했다. 또 광역자치단체장 간의 ‘제2 국무회의’를 신설하고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대로라면 지방자치의 해묵은 과제들이 한꺼번에 해결될 것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지방의회 천국’이란 비난의 소리가 나온다. 온갖 제도와 특혜를 신설해 국민 혈세를 낭비하고, 부정부패의 온상이 된 지방의회를 심판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인력 보충 없이 중앙부처 사무를 자꾸 시·군·구 자치단체로 떠넘기는 통에 죽을 맛이라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행정자치부의 한 공무원은 “현재 8 대 2 수준인 국세·지방세 비율을 공약대로 6 대 4로 조정할 경우 자립 기반이 약한 영·호남의 많은 도시가 파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약은 공약일 뿐,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약속이 100% 실현될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멋진 옷도 균형 잡힌 몸매라야 제값을 하는 것처럼 자치단체 구성원들의 성숙한 인식과 윤리의식이 진정한 지방자치제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ys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