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보다 연결성이 중요한 시대… 폐쇄된 北을 뚫어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커넥토그래피 혁명 / 파라그 카나 지음, 고영태 옮김 / 사회평론

‘지리적 환경이 운명을 결정짓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격언 가운데 하나다. 특히 구한 말 이후 수시로 열강의 각축장이 된 한반도에서 고된 삶을 강요받은 우리 민족에게는 더욱 실감나는 격언이다.

그러나 국제관계 전문가인 파라그 카나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 공공정책대학원 수석연구원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최근 펴낸 이 책 ‘커넥토그래피 혁명’을 통해 불변의 진리처럼 여겨지는 그 격언이 더 이상은 유효하지 않다는 도발적인 선언을 한다.

저자는 아직까지도 지리적 제약에 의한 기존의 민족과 국가 간 정치, 군사적 갈등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미 세계를 움직이는 힘의 축이 변했다고 주장한다. 이 힘은 전쟁, 테러에 비해 덜 자극적이고 조용하지만 미래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이 힘의 정체는 ‘연결성’(Connectivity)이다. 저자에 따르면 과거 제국주의는 영토정복, 식민지 확장이 최우선 관심사였지만 21세기의 최우선 관심사는 시장과 자원에 대한 접근성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래서 21세기 패권의 핵심은 제해권에서 공급망으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본다.

저자는 이 새로운 시대, 즉 인위적으로 구축한 연결혁명이 만들어낸 시대를 ‘공급망 세계’(Supply chain World)라고 부른다. 이에 따라 세계지도 역시 다시 그려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금까지 지도는 육지와 바다를 구분하는 자연적 지도와 국경선으로 구분된 국가를 표시하는 지정학적 지도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제 고속도로와 송유관, 가스관, 철도, 해저인터넷케이블망 같은 사회기반시설과 이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표시하는 기능적(functional) 지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책의 제목을 ‘Connect(연결)’와 ‘Geography(지리)’의 합성인 ‘Connectography(커넥토그래피)’로 정한 것도 ‘연결성’ 관점에서 세계지도를 다시 보자는 저자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저자는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치, 외교적인 분야까지 확장한다. 경제적 제재를 통해 연결성을 끊는 전략 대신 연결성을 확대해야 하며, 이는 세계의 안정성에도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자원을 둘러싼 갈등이나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쉽사리 또 다른 자원을 이용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자원을 두고 갈등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북한 문제의 해법도 그 같은 시각에서 제시한다. 저자는 북한을 직접 방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폐쇄적인 북한 사회 내부에도 연결에 대한 갈망이 존재하며, 북한을 ‘공급망 세계’에 합류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북한의 도발과 전쟁 위협을 방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의견을 피력한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