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골프와 사랑에 빠진 샐러리맨… 골프장 오너까지 오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재섭 대표가 지난 16일 충남 태안군 현대더링크스 골프장에서 A코스 1번 홀 러프에서 어프로치 샷을 하고 있다.

정재섭 현대더링크스골프장 대표

정재섭(54) 현대더링크스골프장 대표는 샐러리맨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다. 현대그룹에 입사했던 정 대표는 30년 만에 36홀 골프장의 오너가 됐다. 정 대표의 성공 열쇠는 골프다.

정 대표를 지난 16일 충남 태안군 서산간척지로 알려진 태안기업도시 내 현대더링크스골프장에서 만났다. 정 대표는 지난 2014년 공사 시작 1년여 만에 A, B 코스 36홀을 오픈시켰다. 정 대표는 대학 졸업(서울대 경영학과) 후 1986년 현대그룹에 입사했다. 이후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종합기획실에 근무할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 1995년 선배가 외국계 회사 책임자로 떠나면서 그를 스카우트했다. 몇 년 뒤 구제금융 시대라는 경제변혁기에 외국계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친구들과 기업 인수·합병(M&A) 전문회사를 창업했다.

그러던 중 부친이 등산하다 목을 크게 다쳤다. 3남 1녀의 장남인 그는 부친 병간호를 맡아야 했고, 때마침 심혈을 기울이던 부산의 한 철강회사 인수에 실패했다. 몇 달을 고민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봤고, 남은 인생의 의미를 찾았다. 그건 바로 골프였다.

정 대표는 2004년 회사 경영을 친구들에게 맡기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공부라면 이골이 났지만, 이번엔 ‘골프 공부’를 선택했다. 캘리포니아주 프로페셔널 골퍼스 칼리지에 입학했다. 샌디에이고 골프아카데미 설립자가 만든 2년제 골프전문대학. 이때부터 골프와 사랑에 빠졌다. 그 전까지 그에게 골프란 완충과 정리의 시간이 필요할 때 바람을 쐬는 도구와 핑계였다. 그는 골프를 체계적으로 배우면서 ‘골프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구나’라고 느꼈다. “이젠 회사로 안 돌아가도 된다”고 생각했고, 한 학기를 마친 뒤 가족마저 미국으로 불러들였다. 인생의 ‘하프타임’이 왔다고 생각했던 것. 이후 본격적인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했다. 골프만 있으면 행복했다. 플레이뿐 아니라 이따금 실습을 위해 골프숍에서 일했고, 주니어와 일반 아마추어 골퍼를 지도했다. 1년 반 만에 골프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골프장 운영까지 관여하겠다고 마음먹고 인근 마운트 세인트 해신토 농과대학에 진학했다. 잔디, 조경, 물 관리, 농약학 등 골프장 운영에 필요한 것들을 닥치는 대로 배웠다. 이 대학의 골프코치를 맡기도 했다. 때마침 부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1년 3학기 과정을 마치고 2006년 말 귀국했다.

정 대표는 32세 때 외국계 회사 임원이 된 뒤 골프를 시작했다. 파트너와 5∼6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정 대표는 스스로 보기 플레이 정도의 실력이라고 믿었지만 프로페셔널 골퍼스 칼리지에서는 ‘100돌이’에 불과했다. 백 티에서 휘둘려야 했고, 라운드 자체가 시험이었기에 한 학기 평균 타수는 103타였다. 충격을 받은 그는 연습시간을 늘렸다. 졸업 무렵에는 핸디캡을 9로 끌어내렸다. 72타 이븐파가 베스트. 2008년 중앙고 출신 고교동창회에 나간 멤버들과 경기 용인의 레이크사이드 서코스 백 티에서 함께 했을 때였다. 언더파를 칠 기회도 있었지만, 마지막 홀 퍼팅에서 뒤땅을 쳤다. 이후 이븐파를 몇 차례 더 기록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홀인원은 유일하게 경기 용인의 남부골프장 6번 홀(파3·145m)에서 2012년 5월에 작성했다. 비거리가 한때는 240∼250m였다. 하지만 요즘엔 20m 이상 줄었다. 한 라운드에서 버디를 6개까지 뽑아낸 적도 있다.

정 대표가 귀국 후 가장 먼저 한 건 골프방송 해설이었다. 특이한 이력 덕에 2007년 SBS 골프 해설위원이 됐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전담 해설위원으로 지금도 활동 중이다. 겨울이나 비시즌에만 월 2회 정도 마이크를 잡는다고. 두 번째는 미국에 있는 샤프트 전문회사 아파치 골프에 투자한 것이다. 교포들이 만든 회사로 개발자 중 한 명이 친구였다. 자본 부족으로 상품화에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펀드를 조성해 참여했다. 세 번째로 2009년 골프장 컨설팅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공사 도중 쓰러지고, 부도난 골프장이 속출했다. 그래서 오너들을 만나면 회원제 대신 퍼블릭으로 조성하라고 권유했지만 투자금 회수가 쉬운 회원제 골프장 건설을 고집하는 통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면서 정 대표를 찾았다. 현대차그룹은 태안기업도시에 골프장 6개를 만들어야 했다.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다가 골프 전문가로 변신한 그에게 SOS를 보냈다. 처음엔 컨설팅으로 출발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36홀 부지를 임차했고, 골프장을 완공시켰다. 골프장 설계, 공사관리,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운영 등 골프장의 A부터 Z까지 그의 손을 모두 거쳤다. 그는 “코스 명칭도 돈이 된다는 신념이 있었지만 ‘네이밍’을 팔지 못했다”면서 “개장 4년째지만 아직 ‘A 코스’와 ‘B 코스’라는 촌스러운 이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연간 12만 명이 내장하지만 아직은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면서 “주변 인프라가 확충되고 숙박시설과 라이트 시설을 보완하면 18홀당 9만 명 시대를 곧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형이 평탄해 시니어를 위한 워킹 코스를 위해 캐디 없는 셀프라운드도 가능하고, 골프뿐 아니라 넓은 잔디밭을 누빌 수 있도록 마지막 티 타임 이후에는 ‘세그웨이’를 잔디밭에서 탈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 골프장을 다용도로 쓸 수 있는 콘셉트를 만들어 갈 계획도 밝혔다.

태안 = 글·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