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문화재>암반계곡 가로지르는 3.8m 통돌다리… 겸재 산수화에 담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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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옥인동 수성동계곡

‘비 오는 날’이면 사람들은 보통 외출을 꺼린다. 그러나 비가 오는 날 찾아가야 오히려 좋은 곳이 있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 인왕산 자락 동쪽에 있는 수성동계곡(水聲洞溪谷)이 바로 그곳이다. 그런 날이면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로 한여름의 폭염을 잠시나마 이겨낼 수 있다.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도 수성동계곡 등 인왕산 자락의 풍광이 비 온 후 바로 찾아가면 좋다고 해서 그 같은 풍광을 ‘비갤 제(霽)’자를 써서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로 표현했다.

최근 내린 장맛비로 요즘 수성동계곡에는 계곡 이름 수성(水聲)처럼 오래간만에 물소리가 요란하다. 계곡변을 따라 물놀이를 즐기는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과 탁족(濯足)하며 세월의 무상함을 잊는 어르신들의 모습도 많이 보인다. 우거진 숲과 암반 사이 계곡 등… 그 자체 풍광만 보면 ‘여기가 서울 맞는가’ 하는 생각까지 잠시 든다.

서울시는 지난 2010년 인왕산 수성동 지역의 상류부터 하류 복개도로 전까지 약 190ｍ 구간의 계곡과 일대 1만97.2㎡, 옥인아파트 터 옆에 길이 3.8ｍ 돌다리(사진) 1개를 서울특별시 기념물 ‘인왕산 수성동계곡’으로 지정했다. 당시 건물이나 수목, 공예품 등이 아니라 자연지형이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처음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수성동계곡은 조선 시대에는 사대문 안에서 백악산 삼청동과 함께 주변 경관이 빼어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조선 후기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 ‘한경지략(漢京識略)’ 등에도 명승지로 소개돼 있다. 또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이자 당대 명필이었던 안평대군(1418~1453)의 집터가 있는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추사 김정희(1786~1856)와 존재 박윤묵(1771~1849) 등 조선 후기 문인들이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시로 남기기도 했다. 추사는 ‘수성동 우중에 폭포를 구경하다(水聲洞雨中觀瀑此心雪韻)’라는 시를 남겼다. 겸재는 자신이 나고 자란 터전인 백악산과 인왕산 아래 장동(壯洞) 일대를 8폭의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으로 남겼는데 그중에는 수성동계곡의 풍경도 있다.

그러나 근현대로 들어서며 ‘서울 도심 개발’의 열풍에 묻혀 수성동계곡도 잊어졌다. 수성동계곡의 역사적 가치는 지난 2010년 옥인시범아파트 철거과정에서 다시 조명됐다.

시는 수성동계곡을 문화재로 지정하고 본격적으로 복원공사를 했다. 옥인아파트터 옆에 있는 돌다리의 경우 겸재의 그림에 등장하는 데다 사대문 내 유일하게 원위치에 원형 보존된 ‘통돌다리’라는 점에서 문화재로 지정됐다.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시는 암반을 최대한 노출시키고 소나무 등 1만8477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2012년 일반에 개방했다.

글·사진 =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