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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럼 게재 일자 : 2017년 09월 25일(月)
김정은 시간벌기 戰術에 속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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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前 외교부 차관

미국과 북한 간의 ‘치킨 게임’은 마주 보고 달리는 자동차다. 먼저 피하는 쪽은 ‘겁쟁이(chicken)’ 소리를 듣게 돼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불명예가 싫어 그대로 돌진하면 정면충돌, 곧 죽음이다. 미·북 간 치킨 게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긴장 수위를 최고조로 올려놓고 전격적으로 협상에 임하는 건 북한이 즐겨 쓰던 전술이다. 1990년대에 전쟁을 불사할 것처럼 하다가 미·북 회담에 나오고, 2000년대에 벼랑 끝 전술을 펴다가 6자회담으로 돌아와 냉정한 협상가로 돌변하던 북한을 보노라면 ‘계산된 비합리성(calculated irrationality)’이 북한 협상 전술(戰術)의 근간임을 알 수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핵·미사일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는 북한에 대해 격한 수사(修辭)를 주저하지 않는다. 8월 8일 ‘화염과 분노’ 발언에 이어 지난 19일 유엔총회 연설에선 북한을 ‘완전 파멸’시키겠다고 하여 대북 군사력 사용 의지를 내비쳤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정은이 직접 나섰다. “그에 상응한 사상 최고의 강경 대응조치 단행을 고려할 것”이라고 자신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벼랑 끝 전술에서 한 번 밀리면 벼랑 아래로 떨어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지난 23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유엔총회 연설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정신이상자, 악통령(惡統領)이라고 막말을 퍼부으면서도 “미국과 그 추종세력이 우리 공화국 지도부에 대한 ‘참수’나 군사공격 기미를 보일 때는 가차 없는 선제행동으로 예방조치를 취할 것이지만, 미국의 반(反)공화국 군사행동에 가담하지 않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위협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북한의 핵이 어디까지나 ‘방어용’임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북핵은 미국과 동맹국만을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해 ‘북한 대 국제사회’ 구도를 흔들려는 초조감을 드러낸 것이다. 동시에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반항한다고 하여 피해자에게 제재를 가하는 만고의 부정의(不正義)가 버젓이 유엔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고 하여 북한을 ‘피해자’로 둔갑시켰다.

그리고 “미국은 조선전쟁(6·25전쟁) 이후에 조선반도에 처음으로 핵무기를 끌어들인 나라”라고 하여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전술핵 재배치 주장을 경계함과 동시에 “합동군사연습을 냉전 후에는 더 큰 규모로, 더 공격적인 성격으로, 더 많은 핵전략자산을 동원하여 한 해에도 몇 차례씩 벌여오고 있는 나라”라고 하여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에 북한이 핵을 개발한다는 명분을 강조했다. 북한 핵 개발의 배경과 방향을 ‘차분히’ 호소해 미·북 간에 극도로 고조된 긴장의 수위를 낮추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를 완성한 후 미국과 담판을 하기까진 시간이 좀 더 필요하므로 향후 도발을 지속하면서 이로 인한 지나친 긴장을 적절히 관리하는 전술을 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을 ‘리틀(애송이) 로켓맨’으로 부르며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해 치킨 게임에 다시 불을 지폈다. 군사적 충돌, 즉 죽음을 피하고 싶으면 북한이 자동차 핸들을 꺾고 협상장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국의 태도가 중요하다.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기까진 타협이 있을 수 없다는 결연한 자세를 지켜야 한다. 언행을 일치시키면서, 대북 억지력과 방위력을 시급히 보완하고, 집요하게 압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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