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배우 김인권이 울산 울주군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 앞에서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고 있다. 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는 “계속 새로운 역할을 연기하며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에서 육아예능 촬영
아이들 직접 먹이고 재워보니
‘아내 고생 많았구나’ 깨달아
방송하며 익힌 요리실력 발휘
스파게티 만들고 고기 구울 것
‘해운대’ 이후 팬클럽 생겼지만
지금 3명뿐… 그 중 1명은 아내
50편 출연했는데 100편 목표
배우 김인권은 지난 1999년 영화 ‘송어’로 데뷔해 20년 가까이 기복 없이 꾸준하게 연기 활동을 이어왔다.
초기에는 주로 작은 악역을 맡았지만 점차 따뜻하고 구수한 이미지로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깊은 배우로 성장했다. 요즘은 그를 찾는 곳이 많아졌다. 연간 서너 편 영화에 출연하며 방송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심심치 않게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두 딸과 함께 뉴질랜드로 가 아이들을 현지 학교에 보내고, 아빠가 집에서 직접 도시락을 싸주는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했다.
21일 뉴질랜드에서 돌아온 그는 바로 울산 울주군으로 내려가 제2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봤다.
세 딸을 둔 가장으로, 한국 영화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조미료 같은 배우로 열심히 삶을 꾸리고 있는 그를 22일 영남알프스가 병풍처럼 펼쳐진 울주산악영화제 현장에서 만났다.
영화 ‘히말라야’에 출연한 인연으로 울주산악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맡은 그는 이 영화에 함께 나온 배우 유선과 호흡을 맞춰 물 흐르듯 유려한 진행 솜씨를 발휘했다. 그의 구수한 입담에 개막식에 참석한 영화인, 산악인, 울주군민들은 큰 박수를 보내며 행사를 만끽했다. 개막식이 끝난 후 김인권과 사진 촬영을 위해 사람들이 몰렸고, 그는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포즈를 취해줬다. 대중에게 편하게 다가가는 게 김인권의 최대 장점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도 까칠했던 때가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데뷔작 ‘송어’를 찍고 나서 ‘연예인 병’에 걸려 가발을 쓰고 다녔어요. 사람들이 알아보는 게 귀찮아서요. 사실 아무도 못 알아보는데 말이죠(웃음). 그때는 어깨에 뽕을 넣은 것처럼 힘을 주고 다녔어요. 지금은 다 내려놓고,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요. 저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고맙게 느껴져요. 저를 찾는 곳은 어디든지 달려가고요.”
그는 중학생 때 교회에서 자신이 직접 대본을 쓴 연극을 무대에 올리며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 ‘너희들은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노래를 부르든, 그림을 그리든, 연극을 하든 하나를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연극이 하고 싶어졌죠. 친구들과 연극팀을 꾸려 대본을 쓰고, 연출을 했어요. 첫 작품이 ‘돌아온 터미네이터’였는데 교회 신도들이 웃느라 난리가 났어요. 고등학생 때까지 10여 작품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꿈을 키운 그는 감독이 되려고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돈을 벌기 위해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대학 다니며 항상 쪼들렸어요. 과외를 하고, 대학로에서 포스터 붙이는 아르바이트와 고등학생들 연극 지도도 하며 생활비를 충당했어요. 당시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5만 원 방에서 살았는데 월세를 제때 못 내 보증금의 반을 날렸죠. 그때 영화에 출연하면 200만 원 정도 출연료를 받을 수 있어서 ‘이왕 하는 거 영화로 돈을 벌자’고 결심했고, 오디션을 봐서 ‘송어’에 캐스팅됐죠. 입대 영장이 나와 있었는데 연기를 시작하며 입대를 계속 미뤘어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 ‘해운대’(2009년)
김인권의 배우 인생은 첫 1000만 관객을 동원한 ‘해운대’ 전후로 나눌 수 있다.
“‘박하사탕’(2000년), ‘조폭 마누라’(2001년), ‘말죽거리 잔혹사’(2004년) 등에 출연하며 꽤 인기를 얻었어요. 그때 ‘김인권 사랑하기’라는 팬클럽도 생겼고요. 팬클럽은 2003년 결혼 후 와해 됐어요. 지금도 포털사이트에 팬카페가 있긴 한데 회원이 딱 3명 남았어요. 그중 한 명이 제 아내고요(웃음). 스물여덟 늦은 나이에 입대했고, 군 생활 중 첫애가 태어났어요. 서른에 제대하고 나니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용의주도 미스 신’ ‘마이파더’(이상 2007년) ‘숙명’(2008년) 등 영화와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2007년)에도 출연하며 열심히 일했죠. 그 때 라면 CF도 찍었고요. 근데 그 후로 1년간 일이 뚝 끊겼어요. 불안했죠. 소속사와 계약도 끝나서 혼자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승용차를 샀는데 쓸 일이 없어서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만 뒀어요(웃음). 하루는 지금 매니저 일을 봐주고 있는 친구와 신세 한탄을 하고 있는데 설경구 선배가 전화해서 ‘빨리 뛰어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해운대’에 출연하게 됐고, 제 필모그래피에 첫 ‘1000만 영화’를 올리게 됐죠.”
그는 ‘해운대’에서 윤제균 감독을 만난 후 연기관이 바뀌었다고 소개했다.
“‘해운대’에서 연기한 동춘 역은 윤제균 감독님이 만들어준 캐릭터예요. 비호감 인물이었는데 윤 감독님이 눈빛과 목소리를 다잡아서 호감형으로 만들어주셨어요. 그전까지는 연기에 멋을 부렸는데 ‘해운대’ 이후 겸손해지며 관객과 소통하는 법을 알게 됐어요.”
50편에 가까운 영화에 출연한 김인권은 “‘센추리클럽’ 가입이 목표”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센추리클럽’은 이경영 선배님이 만들었어요. 이 선배님은 12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셨죠. 다작을 하면 배우로서 소모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경제적 부담 때문에 많이 하게 되네요. 하지만 그런 압박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소모되지 않기 위해 연기에 변화를 주게 되거든요. 처음 주연을 맡은 작품이 미스터리 스릴러 ‘플라스틱 트리’(2003년)예요. 그 영화는 많은 사람이 보지 못해서 ‘방가? 방가!’(2010년)가 제 첫 주연작으로 알려졌죠. ‘플라스틱 트리’를 통해 성인 연기의 맛을 알게 됐고,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찍새 역을 연기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어요. 흥행은 안 됐지만 ‘약장수’(2014년)는 제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라 기억에 남아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 ‘약장수’(2014년)
초등학교 5학년, 3학년, 유치원생인 세 딸이 자라며 가장으로서 중압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그는 뉴질랜드에서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울컥했다고 전했다.
“열심히 벌어서 계속 오르는 전세금 메우고, 아이들 학원도 남부럽지 않게 보내다 보니 통장 잔액이 항상 마이너스예요. 일을 해야 돈이 들어오니까 집에서 쉴 때는 예민해져요. 육아 예능 프로그램은 자주 섭외가 들어왔지만 관객들의 작품 몰입을 깰 것 같아 다 거절했어요. 개똥철학이 있었죠(웃음). 이번에 녹화한 tvN ‘수업을 바꿔라’ 시즌2(10월 9일 첫 방송)는 아이들이 하자고 해서 나간 거예요.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로 가 그곳 학교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수업을 체험했어요.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며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내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하면 항상 소화가 안 된다고 했는데 저도 뉴질랜드에서 온종일 소화가 안 돼 밥을 못 먹었어요. 그러다가 아이들 재운 후에야 밥에 김치 걸쳐서 한 끼 먹게 되더라고요.”
그는 여전히 경제적인 고민이 크다고 했다. 또 앞으로 가야 할 배우의 길에 대한 생각도 깊어진다고 했다.
“더 좋은 캐릭터를 맡아 좋은 성과를 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여러 작품을 하다 보니 소화할 수 있는 연기의 폭이 넓어져 겁은 안 나지만 가족을 생각하며 반복되는 역할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비주류로 고착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어요. 그래도 계속 새로운 역할을 연기하며 앞으로 나아가야죠.”
긴 추석 연휴에 뭘 할 거냐는 질문에 그는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들어갈 것 같다”고 답했다.
“오랜만에 열흘 동안 오롯이 가족들과 보낼 거예요. 뉴질랜드에서 음식 만드는 솜씨를 익혔으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만들고, 고기도 구워주려고 해요. 집에 있기 지루하면 바로 여행을 떠나야죠. 강원도에 자주 가는 곳이 있거든요.”
글·사진=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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