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정보·심리戰도 北에 져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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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정치학

북한 핵·미사일 위기가 한층 더 고조되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북 메시지는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 춘추관 앞 잔디밭에서 대남 전단(삐라)이 발견됐다. 요즘 서울 시내 곳곳에서 북한의 대남 전단이 자주 발견된다. 당국이 경위를 조사 중이라지만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전단 살포는 주로 남남갈등과 체제교란을 목적으로 하는 대남 심리전의 일환이다. 이번에 발견된 대남 전단의 내용 중에는 ‘북한이 무서워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미국에 안보를 구걸하는 정부 참으로 가련하다’는 등의 문구가 담겨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 관계자의 반응은 별문제 아니라는 것이다.

전단 살포도 대남 도발이다. 우리 민간단체의 자발적인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서는 자제를 요구하면서, 청와대에까지 날아온 전단에 대해 정부가 무감각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마오쩌둥은 “국력은 한 상자의 무기를 만들어내지만, 무기의 방아쇠를 당기게 하는 힘은 이데올로기다”라고 했다. 이는 상대방의 신념체계를 지배하는 것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중요하다는 점을 함의한다. 심리전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그 어느 나라보다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행한 대일 심리전의 핵심 전략은 일본 국민에게 전황을 정확히 알리면서 이를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군부 및 각료를 비판함으로써 일반 국민을 전쟁 지도부로부터 이반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미군 삐라의 메시지는 미국의 적(敵)은 군부와 각료이지 이들에 속고 있는 일반 국민과 일왕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심리전 전략은 전쟁 초기엔 별 효과가 없었으나, 말기에는 일본 내 치안 붕괴의 원인이 됐다. 전황 악화에 따른 일본 국민의 전쟁 의지 저하를 가속시킨 미국의 전단 살포에 속수무책이었던 일본 전쟁지도부의 무능이 패전을 가속화한 것이다. 당시 일왕의 항복 결정에 미국의 삐라가 일조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작금의 우리는 어떠한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속에 그 어느 때보다도 대북 정보 수집과 심리전 수행 등 정보기관의 역할이 강조되는 시점에 대북 정보 업무가 표류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구태를 발본색원해 더 나은 정보기관으로 환골탈태하려는 노력은 바람직하다 하더라도 이런 변혁이 의도와 달리 조직 활동을 위축시키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북한의 대남 전략은 군사적 및 비군사적 수단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군사적 수단에 대해서만 촉각을 곤두세우다 보니 비군사적 수단에 대한 대비가 소홀한 것은 아닌지 우리의 대북 안보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 협상과 평화를 표방하는 우리 정부의 북한 도발에 대한 저자세가 북한의 오판을 유발하지 않을지 우려된다. 지금 이 순간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우리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북한 주민을 김정은 정권과 분리하는 심리전 수행일지 모른다. 북한의 전단 살포와 무인기 침투 등 각종 도발에 침묵해선 안 된다. 진정으로 전쟁을 막으려면 북한의 각종 도발에 단호한 의지와 행동을 보여야 한다.

우리 사회의 정치 균열을 대변하는 보수와 진보를 친미·반통일 세력과 반미·통일 세력으로 왜곡하는 이분법적 구도에 ‘전쟁 세력’과 ‘평화 세력’이라는 분열 구조를 더할 것인가. 안보 문제에는 여야(與野), 보혁(保革)의 구분이 없어야 한다. 생존이라는 국익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