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展을 다시보다’…잃어버린 韓 현대미술사 재조명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전통 회화의 높은 품격에 회화적 완성도까지 보여준 국전 초기 작가 김옥진의 ‘폭포’(위)와 한국 추상미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유영국의 ‘산’. 교육부,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제공

내달 12일까지 ‘국전을 통해 본 한국의 현대미술’展

우리나라에서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즉 국전(國展)을 제외하고 현대미술을 논의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1949년에 개최된 제1회 국전은 동양화, 서양화, 조각과 공예, 서예 등 다섯 개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1955년에 건축 부문이, 1964년에 사진 부문이 추가됐으며, 1969년에 국립 현대미술관이 설립되어 국전을 주관하게 됐다.

당시 국전은 미술인들의 최대 축제였다. 입상 경력만으로도 화단의 주목을 받을 수 있어 4만 명이 넘는 미술인이 지원했다. 그리고 당대 미술의 주요 이슈와 담론을 만들어냈다.

특히 국전은 일반인들이 미술 작품을 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 역할도 했다. 해마다 국전이 열리는 가을이면 경복궁 미술관에는 관람객들이 줄을 이었다. 1969년도엔 관람객이 30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카데미즘 미술의 온상이라고 비판받고 정실 심사·부패 등을 지적당하며 ‘국전 무용론(無用論)’이 거세게 일었고, 급기야 1981년 30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소외돼온 국전의 공과를 새롭게 규명하고 국전에서 생산된 미술 작품들의 다양한 역사적 가치를 다시 평가하는 ‘국전을 통해 본 한국의 현대미술’전(사진)이 11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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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주관한 서울현대미술연구소의 오상길 책임 큐레이터는 “흔히 국전을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의 유물이라고 비판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라 그 제도를 통해 생산된 미술의 문화적 가치이고, 아카데미즘 미술의 온상이라는 지적 또한 근거가 없고, 일부 심사위원의 비리 때문에 모든 작가가 소외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며 “이번 전시는 광복 후 서구 미술이 유입되면서 문화 혼성기라는 시대적 고민을 안고 대안을 모색했던 작가들의 예술적 성취를 다루고자 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모두 6파트로 나뉘어 진행된다. 1부 ‘문인화에서 회화로’는 한국화가 진경산수를 거쳐 국전 초기에 활약한 청전 이상범·소정 변관식·옥산 김옥진에 이르기까지가 주제다. 2부 ‘전통회화와 서구 미술의 문화 혼성’은 1960년대 서구 추상미술의 영향 속에서 현대화의 길을 모색했던 박노수·민경갑 등 전통 회화 작가들의 도전을 이야기한다. 3부 ‘제3의 실경산수’는 서구 추상미술에 경도되는 현실을 경계하면서 삶의 현장으로 눈을 돌렸던 이열모·이인실 등 일군의 작가들을 소개한다.

4부 ‘재현의 다양한 변주’에서는 서구 추상미술 추종 분위기 속에 추상이 구상보다 더 현대적인 미술로 인식되던 시절 자신만의 미술 세계를 개척해간 김원·김창락·이종우 등에 대해 말한다. 5부 ‘이야기와 회화’에서는 서구 사조의 영향과 거리가 먼 지극히 내밀한 개별적 경험과 기억을 마티에르를 통해 이야기 구조로 서술해내고 있는 박성환·양달석·황유엽 등이 주인공이다. 6부 ‘문화적 후위로서의 추상’에서는 1960년대 집단적으로 등장했던 유사 앵포르멜과 차별화된 추상의 전개 과정을 보여준 류경채·전혁림·하인두·유영국 등을 다루고 있다.

오 큐레이터는 “서구 미술과 전혀 다른 역사를 거쳐온 한국 미술을 모더니즘이나 포스트 모더니즘 같은 서구 미술의 틀을 빌려 진술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라며 “5000년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20세기 한국미술의 좌표를 구하고 미술문화는 미술단체들의 운동사나 사건사가 아니라 예술가 개인의 시대적 고민과 고독한 작업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는 메시지 전달이 이번 전시의 참된 취지”라고 밝혔다.

서울현대미술연구소는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와 함께 11월 24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미술관 3층 세미나실에서 관련 학술 행사도 연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