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무역협회장 사퇴 종용, 新적폐 아닌가

임기 만료 4개월을 앞둔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이 24일 이사회에 사임서를 제출한 뒤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사임을 희망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사임 요구 주체에 대해 본보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협회 인사에 산업부 수준에서 개입한 적 없다”며 청와대임을 시사했다. 무역협회장의 임기 도중 사퇴가 1999년 당시 구평회 회장 이후 처음이다. 청와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금시초문”이라며 관련설을 부인했다. 사실관계는 더 따져봐야겠지만, 김 회장이 새빨간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무역협회는 정부 수립보다 2년 앞선 1946년 7월 설립된 ‘민간기구’로서 수출 진흥과 무역 인프라 구축에 전념해왔다. 현재 회원사는 7만2000여 개다. 무역 관련 업무는 각국 정부와 직접 관련된 부분이 많다. 이 때문에 무역협회는 전국경제인연합회나 대한상공회의소 등 다른 경제 단체에 비해 정부와의 협력이 긴요한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정권이 회장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회원사들도 대체로 수용했다. 김 회장을 포함한 16명의 협회장 중 기업인은 박용학, 구평회, 김재철 전 회장뿐이었고, 청와대가 낙점한 경제 관료 출신이 많이 맡아온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의 관여 관행이 옳은 것은 아니다. 한국경제의 규모와 수준도 이제 그럴 단계를 지났다. 적폐 청산을 앞세우는 문재인 정부라면 더더욱 잘못된 관행의 고리를 끊는 데 앞장서야 한다. 김 회장 임기가 얼마 남지도 않았다. 그 동안 김 회장이 시장경제를 강조하고,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한 것이 마뜩잖아 급히 몰아내려는 것은 아닌가. 신(新)적폐가 구(舊)적폐 뺨친다는 말이 나오게 되면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