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의사들이 길거리로 나선 진정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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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

에크모(ECMO)라는 장치가 있다. 응급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하는 것으로 메르스가 창궐했을 때 많은 환자를 살려내 널리 알려졌다. 필자가 대학병원에서 전임의를 하던 때 일이다. 젊은 대학생이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쓰러졌고 병원에 도착한 지 수일 만에 폐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어 에크모를 장착하게 됐다. 에크모 부품 중에는 폐기능을 대신하는 ‘막형 산화기’라는 소모품이 있는데 며칠이 지나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병원 원무과에서 이 장비를 내주지 않는다고 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1개만 인정해 주고 추가로 사용하는 것은 보험적용이 안 되니 줄 수가 없고 보호자가 사오는 것도 불법이라는 것이다. 결국 안타깝게도 환자는 며칠 후 사망했다. 이 사건은 필자에게 매우 큰 충격을 주었다. ‘경제적 치료’를 강요하는 제도가 일선 의사에게 ‘치료 중단’과 ‘환자 포기’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4년 더욱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병원에서 에크모 사용 횟수가 늘어나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에크모 비용을 ‘환자가 살아난 경우에 한해서’ 비용을 지급하겠다는 원칙을 만들어 적용했기 때문이다. 에크모 하루 사용 비용은 약 70만 원으로 환자 평균 약 350만 원이 소요된다. 환자는 이 중 10%를 부담하고 나머지 90%는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한다. 그런데 에크모를 사용했다가 환자를 살려내지 못하면 그 90%를 받지 못하게 되니 병원은 큰 손실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경제적 논리에 따라 병원은 에크모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러나 환자가 눈앞에서 죽어 가는데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의사가 어찌 외면하겠는가. 그래서 에크모를 사용하는 의사들은 병원 경영자의 눈치를 봐야 한다. 자칫 손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사들에게 상처가 아닐 수 없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거의 모든 의료서비스가 에크모와 같은 처지다. 이국종 아주대 교수가 한 해 10억 가까운 적자를 기록하는 이유도, 신생아중환자실이 병상 1개당 연평균 5800만 원의 적자를 기록해서 신생아중환자실이 계속 줄어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것이 정부가 강요하는 ‘싼값 의료’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중증외상센터, 중환자실, 응급실 등은 왜 대부분 적자행진을 하는 것일까. 모두 생명을 다루는 분야로 비급여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거의 모든 병의원은 비급여 흑자로 급여 적자를 메꾸고 있는 실정이다.

환자에게는 두 가지 권리가 있다. 경제적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권리와 최선의 치료를 받을 권리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중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나라가 국가가 관리하는 의무보장으로 이뤄진 1단계 의료서비스와 가입자 선택사항으로 이뤄지는 2단계 의료서비스로 구분하고 있다. 그것이 환자의 두 가지 권리를 다 보장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런데 문재인케어는 2단계 의료서비스를 없애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이제 국민과 의사들은 정부의 ‘경제적 치료’ 선언에 밀려 ‘최선의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아직 국민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건강보험의 경제적 치료 강요에 상처를 받아온 의사들은 문재인케어로 인해 진료현장에서 무수히 일어나게 될 비극을 이미 알고 있다. 추운 겨울, 수만 명의 의사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이유다. 이제 최선의 치료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국민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