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한국 외교 ‘큰 그림’ 보며 움직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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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연세대 교수 국제정치학

‘해 뜨는 동해에서 해 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 벌판….’ 청장년층 사이에서 두루 사랑받는 노래다. 특히, 이 구절을 부를 땐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그 무엇이 솟아오른다 해서 대학생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그런데 가끔 중국 학생들이 찾아와 묻는다, 왜 한국 사람들은 만주를 자기네 땅인 것처럼 노래하느냐고. 또, 10여 년 전 서울의 중국어 표기를 한청(漢城)에서 서우얼(首爾)로 바꾸자 대다수 중국인은 물론 관영 언론까지 나서 한(漢) 왕조에 대한 거부 반응이라며 비난했었다.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을 놓고 평가가 엇갈린다. 서민 행보로 사드(THAAD) 배치의 앙금을 씻은 계기가 됐다는 호평과 ‘혼밥’과 홀대, 외교 참사라는 혹평이 팽팽히 맞선다. 청와대는 ‘홀대론’에 동의 못 한다고 선을 그었지만, 일정 조정과 의제 설정 등 사전 조율 과정에 대한 논란은 그치지 않는다.

한·중 정상회담이라고 한국과 중국만 놓고 보거나 흑백론으로만 보면 더 큰 그림을 놓치게 된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유류 공급의 30%를 차단하고 섬유 수출을 전면 중단한 유엔 안보리 결의 제2375호에 참여함으로써 북한에 대해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임을 입증했다. 그러자 김정은은 시진핑 주석의 특사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나주지도 않았다.

제2375호 대북 제재 결의안이 통과되던 9월과 그다음 달, 북한 외무성 최선희 북아메리카국장이 연거푸 러시아를 방문했고, 최근엔 러시아 하원 대표단과 국방부 대표단이 잇달아 평양을 다녀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주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도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원한다며 이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이 러시아에 접근할 때는 중국과 소원해졌거나 불만이 생긴 때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집권 초기이던 1980년대 중반에 소련은 북한에 당시 최첨단 전폭기 MIG-23 수십 기를 제공하며 북한으로부터 군항 사용과 영공 통과를 약속받아 중국을 해상과 공중에서 압박했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 속에 북한과 러시아가 모스크바 선언을 발표하며 급속히 가까워지자 중국은 양빈 신의주특구 행정장관을 체포하면서까지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협력을 위해 대북 제재에 동참하긴 했지만, 그 이상의 압박은 거부한 중국이다. 국빈방문한 한국 대통령을 홀대한 건 북한과 ‘균형’을 맞춰 공평하게 대하겠다는 중국 특유의 자세다. 우리가 평창이면 평창, 북핵이면 북핵만 생각하고 있을 때 중국은 스페인의 카탈루냐를 보며 중국 내 자치구들의 독립 움직임에 촉각을 세워야 하고, 동아시아뿐 아니라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미국과 러시아를 견제해야 한다.

미국과의 정상외교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쌓고 동맹관계를 재확인하는 데 목적을 뒀다면, 이번 중국 국빈방문의 목적은 사드 배치로 인한 앙금을 털어내는 것이었다. 눈앞에 닥친 불을 끄는 데 주력한 외교였다. 이젠 한숨 돌리고 큰 그림을 봐야 할 때다. 정상회담이나 외교는 감성의 국내정치와 다르다. 상대 정부 지도자의 공감과 국민의 마음을 모두 얻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간의 치열한 경쟁 한가운데 놓인 우리 전략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야 하고 그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