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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12월 19일(火)
저항을 넘어선 실존적 성찰… 不滅이 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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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가운데)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윤동주를 추모하는 행사가 국내외에서 잇달아 열렸다. 10월 일본 교토 시민단체의 시비 제막식(왼쪽 위), 지난해 일본 도쿄 릿쿄대의 추모 행사(왼쪽 아래), 이달 초 중국 옌지 시낭송 행사의 태권도 시범(오른쪽 위), 11월 한국조폐공사의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메달’ 출시 등이 이어졌다. 연합뉴스

유성호의 윤동주 100주년, 문학과 역사
(10) 윤동주를 위하여 -끝-


단정하고 치열하고 아름다운
삶과 시가 일치했던 시인
韓 현대문학사 독특한 성취

자기고백과 성찰 기록한 시
먼 식민지배에 대한 기억 아닌
지금 우리의 망각에 대한 각성

윤동주 탄생 100주년 맞아
‘영원한 청춘’의 시인 재평가
세월 가로지른 감동으로 부활


◇현대문학사에서의 윤동주 = 그동안 우리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를 따라, 윤동주를 찾아, 많은 길을 가로지르고 또 돌아왔다. 이제 우리는 윤동주를, 길지 않은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남다른 가치와 개성으로 숨 쉬고 있는 시인으로 기억하게 됐다. 그가 남긴 오롯한 시편들은 원초적으로 시와 삶의 분리 불가능성 속에서 발원하여 우리의 가장 깊은 실존의 심부에 와 닿는다. 어쩌면 그의 삶 못지않게 그의 죽음 역시 그 극적 성격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를 불멸로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언어는 상황과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 감동으로 살아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른 나이에 운명한 사람의 불가피한 미완의 성격을 염두에 두고라도, 윤동주의 단정하고 치열하고 아름다운 시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탈환시키는 항구적 보고(寶庫)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윤동주의 시는 자전적 성격이 강하고, 그의 시에 나타나는 화자는 윤동주 개인과 거의 일치한다. 그의 시가 비록 연륜을 쌓은 원숙함과는 다른 청년기의 속성을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형성 중에 있는 청년의 이상과 그 아픔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빛나는 장면으로 어느새 몸을 바꾼다. 그래서 그가 노래한 ‘부끄럼’과 ‘성찰’은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실존적 차원의 것이 되고, 그 실존적 치열함은 부끄럼 자체가 부끄럼의 대상이 되는 끝없는 극화의 성격을 파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때 그의 연희전문학교 입학은 일종의 성년식으로서의 의미를 띤다. 그는 연희전문학교에서는 ‘늙은 의사의 진단’(‘병원’)을 받았고, 일본의 릿쿄대학에서는 ‘늙은 교수의 강의’(‘쉽게 씌어진 시’)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근대 학문이나 합리성의 체계에 자신의 실존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 ‘피로’와 ‘침전(沈澱)’을 택하였다. 이 또한 ‘자기 인식의 위기’(Identity crisis)를 스스로를 발견하는 계기로 삼은 그의 투명한 눈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윤동주의 삶과 시의 궤적은 자기 성찰보다는 자기 도취나 현시로 종종 기울어가는 현대인의 영혼을 깨우고 세상에 맞설 항체를 제공하는 자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윤동주만이 누리는 매우 중요한 권역이 아닐 수 없다.

◇고백과 성찰의 기록 = 상식적으로 말해 시의 표면에 등장하는 화자는 실제 자연인인 ‘시인’과 같지 않다. 소월 시의 여성 화자라든가 정지용 초기 시에 나타나는 유년 화자 등이 그 시인과 같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시에는 시가 구현하려고 하는 주제 또는 내용에 따라 그에 걸맞은 일종의 ‘퍼스나(Persona)’가 방법적으로 설정된 것뿐이다. 그런데 윤동주 시에 나타나는 시적 화자의 목소리는 아무래도 시인 자체가 직접 화자가 돼버리는 속성이 매우 강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만큼 그의 시의 특성은 강한 ‘자기 고백성’에 있다. 그것은 이 시인이 시를 하나의 발표 양식으로 생각하거나 전문적인 독자를 의식하고 창작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자기의 제일의적 독자가 돼 시를 썼기 때문에 나타난 형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시들은 그러한 고백과 성찰의 기록이다. 윤동주의 이러한 자기 성찰의 힘은, 종교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원죄 의식, 낙원 상실, 그리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계시),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럼, 고통스럽지만 땀 흘리며 살아가야 함(‘또 태초의 아침’)에 대한 지속적인 윤리적 준거로 작용한다. 그 윤리적 준거가 윤동주에게 ‘자기 희생’의 이미지라는 ‘자기 성찰’의 변용된 에너지를 선사한 것이다. 이 점은 그의 시가 그동안 ‘저항시’라는 문맥으로 통용돼온 것에 대한 강력한 조정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만큼 그의 시는 투명하고도 진정성 있는 자기 탐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는 윤동주를 민족 바깥으로 밀어내려는 기획과는 전혀 다른, 말하자면 ‘기원의 기억 상실’을 극복하는 자료로 기억해야 함을 다시 한 번 의미한다.

‘기원의 기억 상실’이란, 기억과 망각의 장(場)을 통해 바로 그 기원이 은폐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자연화한 기억은 성과 계급과 인종의 차별적 위계화를 지워감으로써 개인을 동질화한 집단으로 호명하는 기제를 말한다. 그것은 그래서 우리 민족의 식민 경험을 그야말로 ‘원경(遠景)’으로 처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때 윤동주는 ‘식민’과 ‘언어’에 대한 망각에 대해 저항하는, 기억의 정치학을 아름답게 보여줄 것이다. 그때 비로소 내면의 저항이라는 실존적 언어 행위가 극명하게 윤동주 시의 본래적 성격으로 조명돼갈 것이다.

물론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저항(抵抗)’은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을 해치는 모든 폭력에 대항하여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모든 행동과 사유를 포괄한다. 거기에는 어떤 부정한 폭력에 대한 반작용이 그 본질적 속성으로 담겨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는 오도된 권력에 대해 반대하는 힘으로서 일종의 정당방위적 속성을 띠게 된다. 물론 이는 협의의 저항이 정치적 해방을 목표로 삼는 실천적 움직임을 말하는 데 대한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광의의 저항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준 윤동주의 생애와 시는, 가장 협의의 저항으로 그동안 유통되고 재생산된 측면이 있는 셈이 된다. 그 결과가 바로 집단적 기억으로 소통돼온 것은, 윤동주를 그런 표상으로 기억함으로써 그와는 전혀 다른 욕망으로 움직여온 어떤 이들의 행태들에 대한 망각을 동반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윤동주를 제자리의 기억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윤동주라는 창(窓)을 통해, 식민지 시대 제국에 동화하려 했던 욕망들을 모두 은폐하려는 또 다른 욕망들과 힘겹게 싸워가야 한다.

◇윤동주는 누구인가 = 내게는 귀중본이 얼마 있다. 오래전 출간된 초판본 시집이나 잡지 창간호 같은 것들, 귀중한 분들로부터 친필 사인을 직접 얹어 받은 책들, 그리고 각별하고도 유일한 기억이 얹혀 있는 책들이 그 목록을 차지한다. 서서히 낡아가는 종이의 속성 때문에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읽어내기조차 어렵게 된 이 책들은, 한사코 교환가치에 의해 값이 매겨지지 않는 자신만의 유일한 자리를 구축하고 있다. 그 가운데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있다. 물론 정음사 판 초간본은 아니다. 1955년 2월 16일 그러니까 그의 10주기를 기념하여 정음사에서 펴낸 중간본이다. 초간본에 선명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정지용 서문과 강처중 발문이 빠졌고, 그 대신 동생 윤일주의 글 ‘선백(先伯)의 생애’와 정병욱이 쓴 후기가 말미에 붙어 있다. 오랜 세월을 훌쩍 넘어 종이들이 나풀대기까지 하는, 고서(古書)에 가까운 이 책을 나는 무슨 불멸의 기억처럼, 내 문학의 깊은 수원(水源)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렇게 윤동주는 나의 문학적 욕망 안에 거의 첫사랑의 흔적처럼 숨 쉬고 있는 시인이다. 대학 1학년 수업 한 장면에 나는 윤동주에 관한 발표를 했다. 그때 나는 무슨 고해성사처럼, 문청(文靑)으로서의 과장된 자기 다짐 같은 것을 윤동주와 관련하여 어색하게 엮어나갔던 것 같다. 그때 교수님은 발표자가 윤동주와 비슷한 성정을 가진 것 같다고 무슨 ‘화인(火印)’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부끄러웠고 용기 충천했었다. 그런데 졸업식 때, 한 동기가 “이제는 윤동주에서 벗어나야지?”라는 충격적인 말을 건넸다. 그렇게 내가 그에게 함몰됐던가? 그의 말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대학원 과정 내내 윤동주를 찾지 않았다. 내 시선은 정지용으로, 백석으로, 임화로, 김수영으로 분주하게 옮겨 다녔다. 윤동주 시가 가지고 있는 순결하고도 선명한 메시지를 피해, 이념적으로나 방법적으로나 훨씬 복합성을 띠었던 근대시의 전범들을 읽고 외우고 공부하고 그들에 관한 글을 부지런히 썼다. 그러다가 이제는 그의 나이를 훌쩍 넘어, 나는 윤동주라는 불멸의 젊음이 가지는 기억으로 귀환했다. 여기 연재한 글은 모두 그러한 귀환의 흔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

◇탄생 100주년을 넘어 = 또한 우리는 그동안 윤동주를 이렇게 아름다운 표상으로 남게 해준 이들의 공력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윤동주의 시집을 보관하여 세상에 알린 정병욱 선생, 오빠의 친필 시작 노트를 소중하게 옆에 끼고 월남하여 일반에게 알려준 누이동생 윤혜원 여사, 형님을 증언하고 시집을 묶어낸 남동생 윤일주 선생, 불행하게 죽어간 조카를 마지막에 만나고 또 여러 기억의 문맥에서 윤동주를 섬세하게 살려낸 오촌당숙 윤영춘 선생, 그리고 아무런 증언도 없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지만 윤동주의 유고를 간직했다가 해방 후에 단아한 시집으로 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연희전문 동기 강처중 선생을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 이분들은 모두 윤동주에게 우호적인 기억을 남겼다. 특별히 자기 정보를 산문을 통해 노출한 적이 거의 없는 윤동주를, 우리는 이분들의 공력을 통해 알게 되었다. 모두 소중하게 기억해야 할 분들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이 불멸의 청년 시인에게서 그가 느꼈던 ‘부끄럼’과는 또 다른 ‘부끄럼’을 느끼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윤동주는 언제나 우리에게 ‘부끄럼’을 끊임없이 복습시키는 항구적 원인이 될 것이다. 진정으로 부끄러워하는 자만이 남을 부끄럽게 하니까 말이다. 그는 우리에게 그러한 불멸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것의 결정(結晶)인 아름다운 시편들을 남기고 그렇게 세월을 가로질러 ‘또 다른 고향’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의 언어는 시대와 상황을 넘어 크나큰 감동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이제 그의 탄생 100주년이라는 시기적 분기점을 지나 그에 대한 실증적, 역사적, 미학적 해명과 담론적 축적을 더욱 정밀하고 세련되게 해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모두의 실존적 책무이기도 할 것이다. 그동안 소중한 지면을 주신 문화일보와, 이 글들을 따라와 주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를 올린다.


(문화일보 11월 21일자 25면 9회 참조)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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