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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18년 01월 05일(金)
“‘따로’와 ‘서로’가 부딪치던 부부… 아이 낳아야 ‘삼각 일체’ 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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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60주년을 맞은 이어령(왼쪽)-강인숙 부부가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 뜰에서 “2018년 새해를 맞는 분들에게 밝은 느낌을 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음 짓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올해 回婚 맞은 이어령·강인숙 부부

80대 들어서며 공적활동 은퇴
세차례 수술·투병…강연 사양

病,누구에게나 마지막 동행자
치료안받고 글쓰는 일 서둘러

장관때 박물관법 제정했는데
姜교수, 영인박물관설립‘운명’
부부 전재산 박물관 쏟아부어


‘나만을 보면서 살고 싶어 했던 그 사람, 지금 그는 너무 바빠서 나와 놀 시간이 많지 않지만, 자기만의 방법으로 전력을 다해 내게 충실하려 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 오랜 세월을 말이다. 그 사랑이 서서히 가슴을 채운다. 검은 머리가 정말로 파뿌리가 다 되었는데, 내 옆에 그가 있음이 축복으로 여겨진다.’ 강인숙(85) 건국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펴낸 책 ‘어느 인문학자의 6.25’의 한 대목이다. 여기서 ‘그’는 이어령(85)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이다. 이어령-강인숙 부부는 올해 회혼(回婚), 그러니까 결혼 60주년을 맞았다. 1952년 서울대 국문학과 입학 동기생인 두 사람은 대학 3학년 때부터 사귀기 시작해 1958년에 결혼을 했다.

새해 첫 파워인터뷰 인물로 부부를 초대했을 때, 이 이사장은 “신년 기획이라니 응한다”고 했다. 이사장이라는 직함보다는 아직도 ‘교수’ ‘선생’이라고 불리는 게 훨씬 더 편하다는 그는 80대 들어서면서 공적 활동에서의 은퇴를 선언했다. 일찍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통합을 주창한 디지로그 시대의 예언자로서 알파고 파문 때는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언론 인터뷰는 절제해왔다. 더욱이 근년에 세 차례나 수술을 받았을 정도로 중한 병을 겪고 있어서 외부 강연 등도 사양해왔다.

“병이 깊지만, 병원 치료를 받지 않고 있어요. 어차피 누구나 마지막 동행자는 병이니까 싸움이 아니라 친구로 지내려고 합니다. 부동산이나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세상을 떠나도 그것이 그대로 남아 있지만 머리와 가슴속에 들어 있는 생각과 느낌은 글로 남기지 않으면 흙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어 글 쓰는 일을 서두르며 마지막 시간을 바치고 있지요. 몸은 아프지만 지적 호기심이 사라지지 않으니, 오히려 눈빛이 빛난다고 주변 사람들이 놀라더군요. 고령화 시대에 인문학자는 삶의 마지막을 저렇게 맞이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새해 희망의 의미로 전해지길 바랍니다.”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만난 이 이사장은 새해를 맞아 희망의 언어를 전하고 싶다는 뜻을 거듭 피력했다. 특유의 박람(博覽)과 강기(强記)로 얼음에 박 밀듯이 술술 쏟아내는 이야기들 속에 한결같이 흐르는 것은 온기였다. 동시대를 사는 이웃을 위로하고, 뒷세대를 격려하는 마음이 바탕을 이뤘다. 이날 특별히 한복을 갖춰 입은 강 교수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남편 이야기를 들었다. 질문을 하면 성실히 답했으나 길게 말하지 않았다. 이 이사장이 부연 설명을 하곤 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 이사장은 다방면에서 활동해 왔다. 기성의 권위에 저항하는 문학평론가로 등장해 일약 주목을 받은 이후 소설가, 시인, 희곡·시나리오 작가, 언론인, 교수, 기호학자, 장관, 국가 행사 기획자 등의 이름으로 살아왔다. 세계 문명을 독창적인 시각으로 전망하고, 한국과 한국인의 미래 비전을 통찰력 있는 언어로 제시해왔다. 강 교수도 대학교수로, 문학평론가로 자신의 영역을 가꿔 온 학인이다. 다수의 평론집과 에세이집을 펴낸 저술가이기도 하다. 2001년부터 영인문학관을 만들어 관장 역할을 해 왔다.

영인문학관의 이름은 이어령의 영(寧)자와 강인숙의 인(仁)자를 따서 지었다. 북한산 자락에 있는 영인문학관은 한국의 근현대 문인들을 조명하는 기획전을 꾸준히 펼쳐왔다.

“이게 운명이라는 거예요. 내가 (문화부) 장관 때 박물관법(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을 만들어 시행했어요. 까다로운 규제를 풀어 뜻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박물관을 세울 수 있도록 했지요. 그런데 집사람이 20, 30년 뒤 문학 박물관을 설립하게 됐으니 말입니다. 이 법을 만들면 개인 수집가들의 장롱 속에서 잠자고 있던 귀한 문화재들이 햇빛을 보게 될 것이고 앞으로 사설박물관이 1000개가량 생길 수 있다고 전망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엔 반대도 많았지요. 재벌을 위한 특혜법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1000개란 숫자에 허풍이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 그것이 현실이 된 겁니다. 재벌이 아니라 재력이 넉넉하지 못한 개인 수집가들도 보자기니 솟대니 등잔이니 다양한 수집품들을 박물관으로 공개하여 놀라운 문화의 텃밭을 일구어낸 겁니다.”

영인문학관은 매년 두 번씩 꼭 기획전을 한다. 2017년에도 고 김영태 시인의 편지들을 모은 문인교신전에 이어 1960, 70년대 문인들의 육필을 보여주는 전시를 했다. 지금까지 기획전을 총 40차례 진행했다. 강 교수에게 물었다.


―보람 있지만 힘들지 않습니까.

“예, 많이 힘들죠. 사립박물관들은 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이어령 선생이 운영비로 한 달에 300만 원씩 대줬습니다. 요즘은 (이 선생) 수입이 없으니 그게 어렵죠.”

옆에서 듣고 있던 이 이사장이 “그런 이야기는 분명히 해야 한다”며 나섰다. “내게 돈이 있다면 그것은 내 글을 읽어준 분들 덕분입니다. 그래서 둘이 상의해서 문학관을 한 것입니다. 이걸 지어서 국가에 법인으로 등록하면 우리 재산이 아닙니다. 이어령 기념관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박물관이지요. 우리 둘이 대학교수 하면서 받은 전 재산을 여기에 넣었습니다. 운영비는 기금에서 이자 나오는 것에 다달이 300만 원씩 더해 왔습니다. 내가 은퇴하고 인세도 예전 같지 않지만 처음부터 각오한 일이니 궁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감당하고 싶습니다.”

문학관 운영을 맡고 있는 강 교수는 더 명확히 설명했다. “문학관 기금은 5억 원 밖에 안됩니다. 그 기금은 내가 냈습니다. 건물은 10년 전에 새로 지었는데, 이 선생 원고료를 쓰지 않고 모은 게 다 들어간 것입니다. 이 선생 인세와 원고료로 운영해왔는데, 지금은 어려워진 거지요.”

이 이사장은 강 교수가 기획전을 할 때마다 손수 모든 일을 해낸다고 전했다. 그 역시 전시회 개막식 때마다 문학 강연을 해 왔다.

“기획전뿐만 아니라 매주 문학 강연행사가 있습니다. 강연을 들으러 이 언덕 높은 곳까지 찾아오는 분들이 참으로 소중합니다. 어떨 땐 부산에서 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럴 때 보람을 느끼지요.”

인터뷰 중간에 문학관 전시실을 둘러봤다. 여기 들를 때마다 감탄한다. 한국 현대문학 대가들의 육필 원고, 편지, 서화, 초상화 등 희귀 자료들이 즐비한 덕분이다.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주민등록증처럼 어떻게 이런 물품들을 모았을까 싶은 것들도 있다. 강 교수는 전시실 한편에 있는 상(床)을 가리키며 “이 선생이 일본에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썼던 바로 그 책상”이라고 소개했다. 1980년대 도쿄(東京)대에서 연구 생활을 하던 중에 일본어로 쓴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지금도 일본에서 꾸준히 팔리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이 이사장은 일제강점기에 배운 일본어의 기억을 되살려 집필했던 과정을 회고하며 “내게 가장 극적인 책”이라고 했다. 강 교수는 “지금도 일본 대학의 입시 문제에 이 선생의 책 내용이 나온다. 그걸 모은 파일이 2개나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부군을 ‘이 선생’이라고 부르십니까.

“네, 저는 이 선생이라고 불러요.” 강 교수가 남편을 존중하고 싶어서 이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꽤 알려져 있다. 스스로의 설명을 듣고 싶어서 물었던 것인데, 이 이사장이 웃음 띤 얼굴로 답했다.

“원래 그렇게 부르면 안 되는 건데, 젊었을 때의 말투가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이지요. 지금은 부부끼리도 친구처럼 얘, 쟤 하는데, 우리 때는 학생들끼리도 서로 이 선생, 강 선생 이랬습니다. 더 친해지면 프랑스 말로 무슈 리라고 불렀지요. 미스터 리도 어려우니. 그래서 내 별명이 무슈 리인 적도 있어요. 하하.”


姜교수, 문학 한 우물만 팠지만
李선생,크리에이터라 여러 우물

생물적 DNA·문화유전자 전승
저출산으로 모두 사라질 위기

‘혼밥 유행=가족의 붕괴’ 의미
1주일에 한 번은 함께 밥 먹는
食공동체 부활이 ‘대안’ 될 것



―두 분은 문학을 함께 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글쎄, 같은 문학이 아니에요. 나는 리얼리즘을 공부했어요. 김동인 연구를 했고 이 선생은 기호학과 포스트 모던 쪽이라 이상 연구를 했지요. 나는 문학 한 우물만 파고 이 선생은 여러 우물을 파고 다닌 크리에이터니까요.” 이 이사장은 두 사람이 같은 문학전공이면서도 속내는 정반대 성향을 지녔다고 했다. 책을 읽을 때도 강 교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줄을 치며 읽는 편인데 이 이사장은 이책 저책 넘나들면서 필요한 부분을 따 읽은 후 자기 것으로 소화해버린다.

“나는 얼리 어댑터여서 7대의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집사람은 컴퓨터는 물론 새 거에는 눈 주지 않고 고가구 같은 것들을 컬렉션합니다. 우리나라에 좋은 말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일어서려고 하면 따로 서라는 뜻에서 ‘따로 따로’라고 합니다. 조금 크면 서로 잘 지내라고 ‘서로 서로’라고 합니다. ‘따로 따로’와 ‘서로 서로’를 함께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부부도 그렇습니다. 나는 주례사를 할 때 부부 일심동체라는 말에 속지 말라고 합니다. 인간은 절대로 타자와 하나가 될 수 없다는 뜻이지요.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자식을 낳고 살아가는 동안에 따로와 서로가 마주치며 부부가 됩니다. 어린애를 낳으면 부-모-자의 가족 삼각형의 구조가 마치 가위바위보처럼. 그래서 삼위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천지인이 하나가 되는 삼재사상 그게 별거가 아닙니다. 바로 그 가족이란 게 그래요.”

여기서 그는 부부가 60년을 함께 산 비결을 전했다. ‘따로 서로’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도 자기 글을 쓰고, 나는 나대로 쓰고. 이러면서 살아온 과정이 따로 서로의 표본입니다. 부부 일심동체라고 생각하기에 관계가 어긋납니다. ‘따로 서로’를 잘해야 회혼까지 갈 수 있어요. 부부가 각자 개성을 찾으면서도 함께하는 것이 미래 가족의 삶입니다.”

실제로 강 교수는 대학에 재직하며 논문, 에세이집을 꾸준히 펴냈다. 그에게 물었다.

―은퇴 후 책을 더 많이 내신 듯한 느낌인데, 맞나요?

“네. 정년 퇴임하고 22년 동안에 10권 가까운 책을 냈습니다. 나는 노년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돌볼 사람이 없어 내 시간을 많이 가질 수가 있으니. (가족 돌보는 데 애쓰는) 젊은 엄마들에게 그 기간 이 길지 않다고 말해줍니다. 가족 관계를 해치지 않고도 내 일을 할 시간이 남는다는 것이지요. 오래 사는 시대가 됐으니까요. 아이를 기르고 난 후에 얼마든지 자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며느리도 아이 돌보는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고 하더군요. 그 기간이 끝나고 난 후에 자기가 하고 싶었던 민화 그리기를 시작했어요.”

한국의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을 다각적으로 조명하는 ‘biograpy’라는 책 시리즈가 있다. 그 첫 번째 책의 주인공이 이 이사장인데, 강 교수는 그 책 속에 한 챕터로 들어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이웃집 손님처럼 살았어요. 아이, 어른 모두요. 사는 번거로움은 제가 다 맡았죠. 도우려고 한 건데 요즘 생각하니까 내가 오지랖이 넓어서 저들을 생활에서 소외시킨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  이어령(왼쪽) 이사장이 가족 공동체 부활에 대해 역설하는 모습을 강인숙 교수가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고 있다. 영인문학관 위층 서재에서. 김선규 기자 ufokim@

―생활의 번거로움을 다 맡으셨다면, 보람과 함께 후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는 방법인데요. 나는 구석에 조용히 있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그렇지, 내 베이스대로 살았습니다.”

이 이사장이 “해명해야 한다”며 나섰다. “(아내가) 결혼하고 나서 석사, 박사 학위를 다 했습니다. 많은 걸 희생했으며, 애들 키우면서 어려움 속에서 공부한 것입니다. 주부로서 일을 포기하지도 않았으나, 그것만 하면서 내 밑에서 묻혀 지낸 것도 아닙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지요.”

강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묻혀 지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성격이 사교적이 아니니 집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이들 키우면서 공부도 하며) 그렇게 살려면 미치죠. 다시 살라고 하면 못삽니다. 저는 아이들을 살갑게 다 챙겼어요. 맡은 일을 소홀히 하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엄마 노릇, 며느리 노릇, 선생 노릇 풀로 다했어요. 그러니 힘들었지요.”

―그렇게 사셨다면 며느리들이 하는 것을 보면 못마땅하시겠군요.

“아니에요. 젊은 여성들에게 나처럼 살라고 하고 싶지 않아요. 아들에게 그런 요구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나까지 욕먹는다고.”

부부는 1녀 2남을 뒀다. 미국에서 변호사, 검사로 활동하다가 목회자로 나섰던 큰딸 민아 씨는 2012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강 교수가 2016년에 펴낸 책 ‘민아 이야기’는 딸을 추모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애끊는 모정과 함께 이민아 씨가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삶을 살다 갔는지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강 교수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민아는 정말 훌륭한 삶을 살았다”는 말을 통해 애틋한 정을 표현했다. 큰아들 승무 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교수로, 장동건이 주연한 영화 ‘워리어스 웨이’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막내아들 강무 씨는 백석대 디자인영상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여기서 “신년에 잡담만 할 수 없어서 이야기한다”며 가족 붕괴와 저출산 문제를 언급하고 그 대안으로 ‘식(食)공동체 부활’을 제안했다.

“인간에겐 두 개의 유전자가 있습니다. 생물학적 DNA와 언어 등으로 전승되는 문화유전자. 가족은 DNA와 문화유전자 두 개를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제는 저출산이니 DNA도 없고, 문화유전자도 사라지게 되는 위기에 봉착한 것입니다. 가족이 붕괴하면 그때는 인류가 붕괴합니다. 진화 과정으로 보면, 침팬지가 인간과 여러모로 비슷한데 그들은 밥을 혼자 먹습니다. 인간만이 사냥을 하거나 채집한 것을 자기 혼자만 먹지 않고 들고 와서 식구와 함께 먹습니다. 거기에서 한솥의 밥을 먹는 식공동체의 가족이 생겨난 거지요. 그래서 가족을 먹는 입 식구(食口)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혼밥’이라는 이상한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핵보다 더 인류를 위협하는 말이라는 것이지요. 식공동체의 가족이 무너졌다는 게 바로 인류멸망의 위기입니다. 가족이야말로 인간이 만든 제도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짐승과 구별되는 발명이었던 것이지요. 우리 한민족이 수많은 재난 속에 살면서도 가까운 예로 일제강점과 전쟁과 기아의 적빈 속에서도 오늘 이렇게 번영을 누리게 된 것은 한마디로 ‘가족’의 힘이었지요. 그런데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혼밥’이라니. 슈퍼에 가도 일인용 식품이 많아졌지요. 십자가를 홀로 지고 가신 예수님도 최후 만찬은 ‘혼밥’이 아니었지요. 집사람과 60년을 함께 살아와 회혼을 맞게 된 것도 가족이 서로 떨어져 살아도 일주일에 한 번은 모두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습관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이사장은 최근에 ‘TV, 인터넷, 정보 멀미’를 소재로 한 시를 썼다. 그 한 대목. ‘…옛날 사람들은 ‘사람’ 멀미가 나면/산림 속으로 숨었지만/정보시대에는 숨을 곳이 없으니/황진이의 시조 한 수라도 읊어보시게. ‘나도 몰라 하노라’’

그는 이에 대해 “모든 직장 다 그만두고 은퇴했는데 왜 또 언론에 나오느냐에 대한 변명의 시”라며 “정보 사회에 은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담고 있다”고 했다. “AI가 (알파고 파문으로 우리 사회에) 오니 내게 사방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 전화 받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우리가 AI를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 그걸 하면 죽는다고들 하니 내가 나서서 얘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남들이 산업혁명을 할 때 뒤떨어져 나라 잃고 남의 지배를 받았던 것처럼 AI도 똑같습니다. 지금 AI로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상 가장 큰 변화가 생겨나고 있는데 그것도 바로 우리 땅에서 알파고와 이세돌로 시작된 것인데 우리만이 그 변화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보 홍수시대에는 숨을 곳이 없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필요합니다.”

그는 정보화 시대에 은퇴가 없다는 걸 절감한 한 사례로 자신의 시 ‘벼랑 끝입니다, 날게 하소서’가 인터넷에 마구 유포되고 있는 것을 들었다. “10년 전에 쓴 것인데, 마치 내가 지금 새로 쓴 것처럼 돌아다닙니다. 그것도 문구를 고쳐서 유포됩니다. 오늘만 해도 신년시 잘 봤다는 문자를 여러 개 받았어요. 이런 세상이니 어떻게 옛 선비들과 같은 은퇴가 가능하겠습니까.”

이 이사장은 우리 시대 창조의 아이콘으로 불려왔다. 그는 스스로를 ‘우물터의 두레박’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나는 우물을 파는 사람이지, 그 물을 마시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물에 들어가는 두레박을 만들어왔습니다. 두레박은 여럿이 쓰는 도구입니다.”

이 두레박의 하나가 생명 자본주의다. 그는 디지로그 이후로 생명 자본을 말했다. 돈의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생명을 위한, 생명에 의한, 생명의 자본주의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AI가 암 진단을 하고 자율주행차를 만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은 AI가 못하는 사색과 봉사 등의 가치를 중히 여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디지털 기술을 전쟁 무기로 쓰거나 금융 무기로 쓰면 엄청난 재앙이 옵니다. 생명과 결합시켜서 산업화 시대에 뒤로 밀렸던 교육, 의료, 복지, 엔터테인먼트, 인문학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는 2008년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를 발족했다. 한국이 중국의 대륙문화와 일본의 해양문화를 아우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지금 한·중·일 관계에 위기가 찾아왔는데, 어떤 해법이 있을까요.

“일본과 중국의 이항대립을 한국을 피벗(pivot·중심점)으로 한 삼항순환으로 해야 아시아가 삽니다. 어느 한 나라가 패권을 쥐면 아시아는 죽습니다. 한·중·일이 가위바위보처럼 돼서 순환되면 한국은 두 강국 사이에 가위 역할을 하는 중요한 포지션에 있습니다. 동양과 서양이 정치적, 문화적 교류를 하려면 반도인 한국이 피벗이 돼서 강대국 간의 싸움을 화해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이 관계가 나빠지는 일이 또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 책 ‘가위바위보 문명론’을 보면, 한·중·일이 어떻게 하면 다 함께 사는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중국이 나쁘면 한국과 일본이 하나가 되고, 일본이 나쁘면 한국과 중국이 하나가 돼서 고정된 편이 아니라 가위바위보처럼 순환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물리고 물리는 관계여야 아시아에 평화가 옵니다. 그것을 한국민 전체가 알아야 합니다. 정치, 경제를 넘어서 문화적으로 순환해야 합니다. 이건 세계 문명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끝으로, 사소하지만 궁금한 것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어령은 세상이 아끼는 문필가였지만 인간관계만큼은 늘 서툴렀다”는 평가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은.

“인간관계가 나빴지요. 한 직장에 오래 있지 못하고 수틀리면 못 참고 나왔어요. 비사회적, 비사교적 성격이기 때문에 문단에서도 어디에 소속되지 않았습니다. 그게 나를 글 쓰게 했지요. 남이 뭐라 하든 자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다만 나이를 먹어보니까 내가 젊었을 때 세상 물정 모르고 기성 권위에 도전할 때 고맙게 도와줬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내가 이해관계 때문에 싸웠다면 사회에서 매장됐겠지만 젊은이로서 타협 안 하고 바른 소리를 앞에다 대놓고 하니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화여대에서 30년 가까이 재직하며 다른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김옥길 전 총장처럼 서포팅하는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좀 절제를 하라고 제 옆구리를 찌른 집사람 덕도 많았지요(이때 옆에 있던 강 교수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사회가 각박한 듯 보이지만, 그 속에 우리가 모르는 따뜻한 면, 즉 톨러런스(tolerance)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게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일은 없어도 모레는 있다.”

이 이사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책 2권을 줬다.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와 에세이집 ‘지성에서 영성으로’ 개정 신판이었다. 그가 기독교 세례를 받고 신앙의 세계로 들어서서 겪은 영혼의 체험담을 절실히 담고 있는 책이다. 차가운 지성으로 무장해 성경을 조목조목 비판했던 과거를 무화(無化)시키지 않고 영성 쪽으로 가깝게 끌어온다는 데서 비기독교인들도 공감할 수 있을 듯싶다. 이미 이전에 읽었던 책이었으나, 개정판으로 다시 새기며 절감했다. 인간과 신의 문제를 이토록 풍성한 사색과 다채로운 한국어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행운이라는 것을. 그가 병환 중에도 온 힘을 다해 쓰고 있다는 책들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터뷰 = 장재선 문화부장 jeijei@munhwa.com
정리=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mail 장재선 기자 / 문화부 / 부장 장재선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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