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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명작의 공간 게재 일자 : 2018년 01월 26일(金)
이름도 모습도 달라진 달동네… 내 글은 여전히 ‘봉천동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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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란 작가의 문학적 공간인 ‘봉천동’은 그의 설명에 따르면 서울대입구역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그는 글이 안 써지고 내일도 오늘처럼 막막하다고 느껴지는 날이면 이 역에서 시작되는 세 코스의 길 중 하나를 걸었다. 그가 걷고, 썼던 봉천동의 시작인 서울대입구역 사거리의 긴 도로 위에 자동차가 바쁘게 오간다. 김선규 기자 ufokim@

소설가 조경란이 쓴 ‘나의 문학산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주민증 본적에 봉천동 산1번지
내 고향이자 아버지의 제2고향
2호선 전철이 들어선다 말하던
어린 시절 아버지 목소리 생생

하늘을 떠받든다는 뜻의 ‘奉天’
달동네 이미지 탓 區 개명 추진
엄마는 “그런다고 사라지나…”
중앙동 됐지만 옛추억은 그대로

쓸모없는 나무 아래 뜻 ‘樗樹下’
無用하기 때문에 맘놓고 자는곳
아버지와 지인이 떠나라 했지만
못 떠난 봉천동이 나의 ‘樗樹下’

샤로수길 뜨고 원룸 난립 등에
언젠가 떠나야할 것 같은 불안
다른 곳에 대해 써야지 해봐도
새 소설속 주배경은 계속 이곳


# 지금도 나는 봉천동에 산다

지난해 9월 마지막 주에는 버클리에 있었다. 한국문학 행사 전날, 강연 원고와 낭독할 책을 갖고 다운타운의 카페로 갔다. UC버클리 한국학센터에서 요청한 것은 영어로 번역된 책을 선택해 그 작품을 중심으로 한 ‘나의 문학 나의 소설’이라는 강연이었다. ‘걷다, 보다, 듣다, 쓰다’라는 내용으로 원고 준비를 하면서 내가 고른 책에 대해서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책이 없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나는 봉천동에 산다’, 이 책은 벌써 15년 전에 쓴 데다가 주최 측이 선호하는 장편도 아니었다. 조용히 강연 내용을 정리하러 간 다운타운의 카페에서도 생각에 잠겼다. 나는 여태도 이 책, 아니 봉천동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벗어나려는 마음을 이제 아주 버린 걸까.

관악구 지도를 보면 중심은 2호선 서울대입구역처럼 보인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지 몰라도,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누가 어디에 사느냐고 물어보면 봉천동이라고 말하지 않고 서울대입구역 쪽이라고 에둘러 대답해 왔다. 역시 ‘봉천’이 주는 촌스러운 어감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면 상대방이 판자촌 이미지부터 떠올리게 될까 봐?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도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우리 동네를 서울대입구역에서부터 시작하는 데 익숙해져 있기도 하다. 역을 중심으로 남부순환로 쪽으로는 낙성대, 구청 쪽으로 올라가면 서울대 방면, 봉천고개 쪽인 관악로 방향으로는 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 활기를 되찾은 전통시장이 있는 우리 집 가는 길이 시작된다. 대부분 세 코스 중 선택해 걷곤 한다. 글도 안 써지고 내일도 오늘처럼 막막하다고 느꼈던 대부분의 날들.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 때는 걷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런 날들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집 쪽으로 가려고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갈 때였다. 이 지하철이 우리 동네에 생긴 게 언제였지? 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아버지께서 동네에 2호선이 들어설 거라며 무척 기대에 부푼 목소리로 알려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개통일에 같이 가자고.

▲  서울대입구역 모습.

서울대입구 지하철역을 통과해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 봉천 10동, 우리 집 쪽으로 접어들었다. 그 며칠 후 ‘시핑 뉴스’라는 책을 읽었는데 집을 끌고 다니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집을 로프로 묶어서 바다와 얼음의 땅을 건너 새 정착지까지, 있는 힘을 다해 끌고 가는 사람들. ‘나는 봉천동에 산다’에 이렇게 썼다. 게나 고둥 같은 생물들 외에 집을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도 경이로웠다고, 그러나 나는 또한 고통을 느꼈다고 말이다. 아버지에게 우리 가족이 어떻게 이곳에서 살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아버지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내 주민등록증 본적란의 기록대로 ‘봉천동 산 1번지’부터 봉천동은 아버지에겐 제2의 고향,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그야말로 고향이 돼버렸고 그 역사는 아버지가 고향인 여수를 떠나오면서부터 시작된 것일 텐데.

구청에 가서 ‘관악20년사(冠岳20年史)’라는 두꺼운 책을 빌려왔다. 이촌향도나 수해, 철거 등 봉천을 이루게 된 사회현상들,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픽션보다 흥미진진했다. 그야말로 집 한 채, 방 한 칸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던 이웃들. 그리고 그와 유사한 이유로 참으로 먼 데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오게 된 나의 아버지, 나의 시작. 여기까지 생각하자 더는 망설이기가 어려워졌다. 어떤 이야기들, 상황과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이 가슴에서 작은 파동을 일으키다가 밖으로 울컥 터져 나오려는 때. 그 순간이 소설을 써야 할 때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고 그해 여름 태풍 루사가 지나간 후 ‘나는 봉천동에 산다’라는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저수하에서 산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엽서가 한 장 왔다. 생애 전환기 건강진단 대상자이므로 올해 무료로 건강검진을 해주고 있으니 놓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분명히 내 앞으로 온 엽서인데 주소가 봉천동이 아니라 ‘중앙동’으로 돼 있었다. 봉천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촌스러운 느낌과 달동네 이미지를 이유로 관악구에서 동명을 개명하겠다는 기사를 읽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실현되다니. 투표를 하겠다고 했는데 지역주민들이 그럼 찬성표를 던진 걸까. 중앙동(中央洞), 센터? 이러면 집값이 올라가나? 연신 화를 내고 툴툴거리는 나를 지켜보던 어머니가 한마디 했다. 사라질 수 있겠냐, 봉천동이.

혹시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건 지명이 아니라 봉천이 가진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늘을 떠받든다는 뜻의 봉천(奉天). ‘봉천’에 익숙해진 지역주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2008년 9월 1일부터 관악구는 21개 동(洞) 통폐합 및 행정동 명칭 변경을 시작하게 된다. 동의 명칭만 바뀌었을 뿐인데, 내가 택시기사나 집이 어디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관악구 중앙동이라고 말해도 얼른 아 봉천동요? 먼저 그랬다. 그건 십여 년 가까이 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지은 집으로 입주할 때 들였던 식탁을 새것으로 바꾸는 날이었다. 거의 이십 년 넘게 쓴 하이그로시 식탁을 골목에 내다 놓았다.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식탁 유리 위로 빗방울이 튀어 오르는 것을 나는 창가에서 묵묵히 내다보았다. 그 식탁은 내가 옥탑방에서 그때껏 책상으로 쓰던 것과 똑같은 사인용 식탁이었다. 내 삶의 일부가 저렇게 버려지거나 혹은 바뀌거나 변화를 맞고 있다는, 이제 그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살아가기가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순간 들었다. 우리 집 우편함 주소는 아직도 중앙동이 아니라 관악구 봉천 10동으로 적혀 있는데. 이 동네, 이 집에서 보낸 수많은 시간이 빗물처럼 내 기억과 현재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 며칠 후 ‘봉천동의 유령’이라는 단편소설을 썼다. 봉천동에 관해서 쓰는 소설은 그게 마지막일 거라고 알았다.

한 삼사 년 전 일인데, 서촌(西村) 한옥으로 집을 옮긴 지인이 자꾸만 그 동네로 놀러 오라고 했다. 통인시장 골목에서 내가 좋아하는 병어회와 맥주를 사주더니 넌지시 말했다. 그만 봉천동을 떠날 때도 되지 않았나? 그래야 작품도 좀 새로운 걸 쓰게 되지. 여긴 봉천동처럼 시장도 있고 오래된 데도 많고, 딱 조 작가가 좋아할 동네라니까. 그러면서도 새로운 데고. ……정말 그럴까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나는 소나무가 있는 집, 커다란 방이 세 개나 있어서 책장과 책상을 들여놓는 데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2층을 점찍었다. 월세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러면 더 책임감을 갖고 글 쓰게 될 거라고 부추기는 지인들의 말이 어쩌면 사실이 될지도 모른다고 우기고. 그동안 봉천동을 떠날 계획을 여러 번 세웠다. 혼자 한 번 살아보지도 못하고 지금처럼 매일매일 늙어가는 부모와 같이 살아야 하는 걸까. 이번에는 우물쭈물하지 말고 일을 저질러버리자고 결심했다.

서촌으로 집을 보러 다니던 그해 여름에 성균관대에서 열리는 ‘염상섭 작은 포럼’에 참석하게 되었다. ‘표본실의 청개구리’ ‘삼대’ 등의 작품을 남긴 횡보(橫步)를 기리는 시간에 후배작가로서 한마디 하는 역할을 맡았다. 내가 앉은 자리에 연구자들이 쓰고 엮은 ‘저수하의 시간, 염상섭을 읽다’라는 책이 놓여 있었다. 저수하(樗樹下)가 무슨 뜻인가? 책의 앞장을 펼쳐보니 저수(樗樹)란 ‘쓸모없는 물건’이나 ‘쓸모없는 나무’를 뜻한다고 했다. 장자의 ‘소유요’에서 시작된 말인가 싶었다. 그러니까 장자는 그 무용함을 탓한 게 아니라 무용하기 때문에 되레 그 나무 밑에서 마음 놓고 누워 잘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였고, 거기에 젊은 횡보는 재치 있게 아래 하(下)자를 붙여 놓았다.

쓸모없는 나무, 저수하, 마음 놓고 잘 수 있는……. 그날 나는 세미나에 집중하지 못했다. ‘나는 봉천동에 산다’의 마지막 장면을 쓰던 때가 떠올랐다. 루사가 지나간 후, 아버지는 뭔가를 기도하는 사람처럼 옥상에서 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 달을 들어내면 하늘에 무엇이 남겠냐?” “글쎄요.” “너는 작가가 아니냐, 모든 사람의 생애는 구멍으로 남아 있는 부분이 있으니 그 구멍을 오래 들여다보너라.” 마음이 이상해져 버려서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저 그냥 여기서 오래오래 살까 봐요.” 그때는 진심이었다. “아니다, 넌 여길 떠나라. 먼 데로 가라.” 무뚝뚝하게, 조금은 단호한 목소리로 아버지는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내가 어쩌면 봉천동을 떠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아버지의 대화를 바탕으로 마지막 장면을 위와 같이 그렸다. 어딜 가서 물난리 같은 걸 만나게 된다면 봉천동은 가장 먼저 돌아오고 싶어질 장소라고.

저수하라는 단어는 나에게 그 순간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평생 내가 마음 놓고 누워 잘 수 있는 나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공간에 관해서.

그러나 최근 동네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관악구청 맞은편, 처음에는 봉로수길이라고 알음알음 불리던 샤로수길은 성시를 이루고 있지만 오래된 상점 주인들은 벌써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고 있는 터라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르는 상태다. 역세권이라는 이유로 우리집 골목 또한 이웃들이 떠나고 일 년 내내 원룸 공사가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다. 마당의 등나무, 대추나무가 보기 좋았던 집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지하 깊이 구덩이가 파여 있는 걸 자주 보게 된다. 언젠가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집을 팔고 이 동네를 떠나야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불안이 가족 모두에게 생겨버렸다.

횡보의 그 책을 읽은 여름, ‘저수하에서’라는 제목을 빌려 단편을 썼다. 봉천동을 떠나려고 고군분투하다 그대로 눌러앉는 자전소설. 나는 매우 지역적인 작가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장소에도 쉽게 매혹당하곤 하니 이제 다른 공간에 관해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봉천동이 주 공간인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11월 30일’ 등 여러 편의 단편을 발표했고 이번 봄에 새 소설집에 묶을 예정이다. 관악구를 걸어 다닐 적마다 새삼 놀라곤 한다. 모르는 장소가 많은 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있으니. 내가 작가로서의 의무라고 여기는, 걷고 보고 듣고 쓰는 일이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걸까. 도로명 주소가 시행되면서 우리 집은 중앙동에서 은천로(路)로 다시 바뀌었지만.

소설가 조경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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