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민족’보다 큰 대한민국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도운 논설위원

지난 9일 개막한 평창동계올림픽이 반환점을 돌았다. 대회 직전까지 북한 변수, 혹한 우려 등으로 어수선했지만, 막상 개회되자 세계 각국에서 ‘잘 준비된 올림픽’이란 찬사가 잇따르고 있다. 과거 올림픽 때마다 불거졌던 시설, 경기 운영, 치안, 음식 등에 대한 불만이 전혀 제기되지 않고 있다. 공동의 목표가 주어지면 어떻게든 달성해내는 한국인의 ‘성공 유전자’가 이번에도 작동된 것 같아 뿌듯하다.

이번 올림픽은 우리나라가 ‘더 큰 대한민국’으로 가는 두 가지 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협력과 연대를 통한 ‘저력(底力)’ 강화. 올림픽 전반부의 가장 큰 화제는 한국과 북한의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이었다. 우리 대표팀 엔트리 22명에 북 선수단 15명이 합류해 경기당 북한 선수 3~4명씩이 출전했다. 그런데, 팀 구성을 들여다보면 남북 단일팀이 아니라 ‘한국-북한-미국-캐나다 연합팀’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일본과의 대결에서 우리 팀에 첫 골을 안겨준 랜디 희수 그리핀과 박윤정이 미국 국적자였고, 박은정·임진경은 캐나다 교포 출신이다. 세라 머리 감독도 캐나다·미국 이중국적을 갖고 있다.

남자 아이스하키팀에는 수문장 맷 달튼을 포함해 체코전에서 조민호의 골을 도운 브락 라던스키, 공격형 수비수 에릭 리건 등 무려 7명의 북미 출신 선수가 뛰고 있다. 이 밖에도 여자 루지의 아일렌 프리슈(독일), 남자 바이애슬론의 티모페이 랍신(러시아) 등 한국 대표팀에는 모두 19명의 귀화 선수가 태극 마크를 달고 있다. 아직 귀화 선수들의 활약이 메달을 딸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를 품는 다양성과 포용력의 징표다.

더 큰 대한민국으로 가는, 더 중요한 길은 주변 여건에 흔들리지 않는 압도적 실력이다. 남자 스켈레톤과 여자 쇼트트랙 1500m 경기에서 윤성빈·최민정은 탁월한 기량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특히 쇼트트랙은 우리 고유의 창조적 전략과 강한 훈련으로 오랜 기간 세계 최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최민정이 우승한 지난 17일 쇼트트랙 경기장에는 ‘일사불란’을 자랑하는 북한 응원단이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경기장을 가득 채운 국내외 관객 모두가 태극기 등 모국의 국기를 흔들고, 파도타기 응원에 참여하며 자유롭게 경기를 만끽했다. 대한민국은 ‘민족’보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