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사회’가 만든 획일적 공채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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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대기업 공채 시험을 마치고 고사장을 나서는 응시생들. 장강명 작가는 “공채 시스템은 공정성과 신뢰성이 높지만 합격한 구성원들이 서열화하고 관료화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한국 사회는 그런 식으로 유능한 인재를 많이 놓쳤을 것”이라고 말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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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계급 장강명 지음／민음사

4개 문학상 수상자가 쓴 르포
“문학공모전, 창의력과 모순”

수십만명 준비하는 국가고시
합격여부로 사회계급이 갈려

“문학공모전의 최대 수혜자인 저로서, 최근의 공모전이나 기업 공채 방식이 모두 헛짓거리라고 비판하는 건 아닙니다. 순기능을 유지하되, 선발 후 구성원들이 서열이나 계급화하는 단점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명확한 대안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안의 방향을 고민해보고 싶었어요.”

저자 장강명(43·사진)은 요즘 문단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11년의 언론사 기자 생활을 거쳐 3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한 후 연이어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우리의 소원은 전쟁’ 등 소위 문제작들을 내놓으며 평단과 독자의 이목을 끌었기 때문이다.

등단 이후 7년간 쏟아낸 작품만 15권. 한겨레문학상을 비롯해 수림문학상, 제주4·3평화문학상, 문학동네작가상 등 주요 문학상 4개를 휩쓸었다. 오늘의 작가상과 문학동네작가상 등 장편소설공모전이 본격화한 1995년 이후 14개 문학상의 역대 수상자 중 ‘최다관왕’이다.

책은 그런 화려한 ‘전력’을 가진 장 작가가 작정하고 쓴 문학공모전 르포(탐사보도)다. 인간과 사회를 픽션의 틀로 바라봤던 소설가가 왜 굳이 르포를 쓰게 됐을까. 그리고 왜 하필이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문학상에 메스를 댄 것일까.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시스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입시 공채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고민… 내가 취재를 통해 확인하려던 것은 공채라는 특이한 제도를 가진 한국 사회였다. ‘간판’에 대한 집착, 서열문화, 그리고 기회를 주기 위해 기획된 시스템이 어떻게 새로운 좌절을 낳게 됐는지에 대해 쓰고 싶었다. 최소한 기록으로서의 가치는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장 작가는 2015년부터 3년간 이번 르포에 매달렸다. 자신이 잘 아는 분야지만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팩트가 필요했다. 다시 작가가 아닌, 기자로 돌아가 수많은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고 데이터를 모았다. 123쪽의 ‘주요 고액 상금 장편소설공모전과 당선자’ 표, 고(故) 박맹호 민음사 대표와 강태형 문학동네 전 대표와의 인터뷰, 삼성 직무적성검사 고사장 풍경, 한겨레문학상 심사위원 활동기 등은 기자 출신 작가로서 그의 역량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소설가는 한두 가지의 팩트에도 상상력을 입혀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르포는 다르다. 마땅한 현장을 찾기가 어려웠다. 글을 쓰는 동안 현장 기자이면서 동시에 데스크라는 생각을 가지고 했다.”

장 작가가 바라보는 문학공모전은 대단히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획일적이고 지독히 한국적인 시스템이다. 가장 창의력이 요구되는 작가를 찾는 데 있어 입시(入試)와 다름없는 시스템이 적용되는 것부터가 모순이다. 또 발원지인 일본에서도 사장되다시피 한 신춘문예가 국내에서는 여전히 대대적으로 치러지며 또한 등단의 중요한 관문이 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대기업 공채 시험이나 공무원이 되기 위한 국가고시, 언론고시 등도 마찬가지다. 2011∼2015년 5년간 국가 공무원 시험 응시자는 127만 명이었다. 이 중 합격자는 2만 명도 되지 않는다. ‘고시 장수생’이 주변에 흔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아 생기는 사회적 손실이 2016년 기준으로 한 해 17조 원이 넘는다고 분석했다.

장 작가는 “나는 어떤 젊은이가 기자로서 성공할지 안 할지 시험이나 면접으로 예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기자 일을 시켜 봐야 알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틀에 박힌 언론 시험이 저널리스트를 뽑는 최적의 방법이 될 수 없듯이, 공모전 문화가 한국 소설의 창조적 역동성을 막고 있는 건 아닌지” 반문한다.

하지만 그 자신이 시스템의 안쪽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에 대한 비판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조금만 나가면 출판사와 언론사, 강연장과 심사장에서 만날 수 있는 작가, 편집인, 평론가, 지망생 등을 상대로 단점을 지적하는 일은 곤혹스러운 과정이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는 “서울대를 나왔다고 해서 학벌 우선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말하면 안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공모전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의 사다리까지 지우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내부자로서 시스템을 더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지, 간판 사회를 넘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 작가가 르포의 맨 마지막에 제시한 해결책은 간판의 본질적인 힘을 허무는 것. 이를 위해서는 “믿을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해야 하고, 충분한 보상이 있어야 하며, 실패했을 경우에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 작가는 끝으로 문학공모전 당선을 꿈꾸는 준비생들에게 실질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첫째 지레 좌절하지 말 것, 둘째 원고를 여러 곳에 다 낼 것, 셋째 본질에 집중할 것, 넷째 자신의 장점으로 승부할 것. 448쪽, 1만6000원.

김인구 기자 cl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