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합의·조정… 창조하는 자본주의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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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와 꿀벌 제프 멀건 지음, 김승진 옮김 / 세종서적

약탈-창조 두 얼굴의 자본주의
분배 문제 드러나 변혁의 기로
진화 위해 인간다운 통찰 필요
체제·시스템 몫이며 우리의 몫

제목만 보면 만만한 우화집처럼 보이는 ‘메뚜기와 꿀벌’은 실상 오늘날 자본주의의 현실을, 특히 약탈과 창조라는 자본주의의 두 얼굴을 적나라하게 조명한 책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메뚜기떼는 스쳐 간 모든 자리를 초토화한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는 메뚜기떼처럼 자본주의도 점거했던 모든 자리를, 미래의 자원까지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자본주의는 “다른 이들이 가진 자원, 돈, 시간을 그들이 좋아하건 말건 간에 갈취”하는, 즉 타인이 창출한 가치를 뽑아먹는 약탈자인 셈이다. 반면 꿀벌은 예의 부지런함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간다. 영국의 사회 혁신 분야 싱크탱크 ‘네스타’의 대표인 저자 제프 멀건은 꿀벌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으로, 자원을 조달해서 사람들의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킬 만한 것을 만드는” 자본주의의 긍정적 속성을 만든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자본주의는 창조적 생산자의 얼굴을 할 때가 많다. “더 정교한 조직 운영 방식”을 통해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계속해서 창조”하는 주체는 자본주의다. 이를 통해 “물질적 부를 증대하는 데 더없이 위대한 엔진 역할”을 담당했고, 인간의 꿈을 극대화하는 “훌륭한 기제 노릇”에도 제법 충실했다. 저자는 이를 “희망의 자본주의”라고 정의한다. 문제는 긍정과 부정의 얼굴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자본주의의 한계와 대안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자본주의에는 “자본주의를 촉진하는 요소만큼이나 그것을 갉아먹는 요소가 많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 첫 장을 연 것이 화폐와 금융이다. 현물이나 현장은 없고 수치 혹은 지수만으로 토대를 쌓은 자본주의라는 신기루는 미국발 금융위기 등을 통해 완전체가 아님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맹아(萌芽)이자 주체라고 할 수 있는 화폐 시스템과 금융의 명백한 실패를 오랫동안 국가가 뒷감당하면서 약탈자로서의 면모는 더더욱 커져만 갔다. 애초부터 그랬음에도 간과하고 있던 분배의 문제가 최근 도드라진 것도 자본주의의 부정적 평가에 일조하고 있다.

애초부터 모든 사람을 잘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며 시작됐으니, 어쩌면 자본주의의 본분은 생산이 아니라 분배에 있는지도 모른다. 성장했지만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한 것은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 아니 자본주의 역사에서 일상다반사였다. 상대적이라고 말할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자본주의는 “물질적 주림”이든 “의미에 대한 주림”이든 분배 문제에서 취약점을 드러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기원과 발달 과정, 그리고 메뚜기의 양상과 꿀벌의 양상 등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대안을 찾는 데 주력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다 할 대안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약탈자보다는 창조자에게 더 적합할 세계의 모양을 잡는 데 도움이 될 생성적 개념”은 이제까지 있었던 유토피아주의, 마르크스주의, 자유주의 등의 한 요소들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경험한 수많은 체제나 시스템의 긍정적 요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시금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자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절대적 필요 요소로 저자는 “자본주의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해갈 수 있게 하는 합의와 조정”을 제시한다.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영구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약탈자 메뚜기는 언제 어느 때고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서두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묻는다. “꿀벌에게 힘을 실어주고 메뚜기를 제약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대답은 국가, 시스템, 체제의 몫일 뿐 아니라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500쪽, 2만 원.

장동석 출판평론가·‘뉴 필로소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