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1%로 경영권 흔드는 행동주의 펀드… “방어수단 필요”

엘리엇,삼성전자 액면분할 이어
현대차 분할·합병안 무산시켜
韓 기업 경영권 지킬 수단 필요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삼성전자 액면분할 요구를 관철한 데 이어 단 1%대 지분만으로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안까지 무산시키는 등 국내 기업 경영을 좌지우지하면서 경영권 방어 수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거세게 일고 있다. ‘삼성합병 트라우마’ 이후 국민연금이 국내 기업들의 방어막이 되는 국부펀드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데다, 경영권 방어 수단도 전무한 상황이어서 기업들이 속수무책으로 휘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3일 재계에서는 엘리엇 등 행동주의 펀드의 국내 대기업 경영 간섭이 도를 넘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JP모건이 발간한 ‘아시아의 주주행동주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지역의 행동주의 펀드 경영 간섭 사례는 2011년 10건에서 2017년 106건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경영 간섭은 24건이나 됐다. 행동주의 펀드는 경영 간섭 과정에서 주가가 단기 상승하면 보유 지분을 매각해 차익을 챙겨 빠져나가는 만큼,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한 기업 입장에선 큰 리스크(위험)가 될 수밖에 없다.

국내 기업들은 이 같은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우선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찬성표를 던졌다가 곤욕을 치른 뒤부터 민감한 기업 이슈에 대해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는 대신, 민간으로 구성된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 위임하는 등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론을 의식함에 따라 행동주의 펀드에 대항해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게 된 것이다.

기업이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경영권 방어 수단은 거의 없다. 창업자나 최대주주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 기업이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에 처했을 때 기존 주주들이 저가에 지분을 매입하는 포이즌필 등 선진국에서 보편적으로 도입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 국내에는 도입돼있지 않다.

최재규 기자 jqnote9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