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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25일(金)
더 많은 문제 남긴 ‘풍계리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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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3, 2, 1, 0”. 북한이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 갱도를 예고했던 대로 폭파했다. 6차례에 걸친 핵폭발로 피로산(疲勞山) 증후군에 시달리던 2200m 만탑산이 다시 세 번 흔들리며 핵실험의 현장이 무너지고 핵 범죄의 흔적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 폭파 굉음이 사라지기도 전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12일로 예정됐던 미·북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는 파행을 면할 수 없게 됐다. 우리 모두가 연목구어(緣木求魚) 하려 한 건 아닌가.

우선, 전문가 없이 ‘행사’를 진행해 핵 기술 수준을 가늠하고 핵실험장을 살펴보는 데 한계가 있었다. 더욱이 북한은 이미 6차례 핵실험으로 핵 무력을 완성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핵실험장 폐기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국제 전문가 집단의 강제 사찰과 무한검증을 비켜 가기 위해 사전에 봉쇄해 버린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가 배제된 것 또한 우려스럽다. 이 행사가 실제로 북한의 핵 폐기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미국과 한국의 기술자들을 초대해 핵실험장에 어떤 장비들이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했어야 했다. 갱도에 들어가 계측장비, 조립장치 등을 보여준 다음에 무너뜨렸어야 했다.

게다가, 동쪽 1번과 북쪽 2번 갱도는 과거 북핵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기에 이번 폭음은 축포 아니라 애포(哀砲)였다. 2006∼2017년 사이 만탑산의 사계(四季)가 아로새겨진 구중심처는 폭발로 잔해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2번 갱도는 북핵의 보고(寶庫)와도 같았다. 한반도에선 유일하게 1억 도라는 고온을 다섯 차례나 겪은 화강암이 빚어낸 석영이 존재하는 동굴. 천장과 바닥엔 우라늄 235, 우라늄 238, 플루토늄 239, 플루토늄 240, 헬륨 4, 리튬 6가 널브러져 있다. 효율이 낮았던 북핵 기술로 핵실험 때마다 99% 넘는 핵물질이 반응하기도 전에 공중 분해한 것이다. 암벽을 자세히 살펴보면 6차 핵실험의 위력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핵실험의 추억, 그동안 방사성물질이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을 막고 있었던 수십 개의 차폐문, 거기엔 아직도 절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30년 가까이 걸리는 세슘과 스트론튬이 스며든 빗물과 함께 수맥을 따라 지하수로 빠져들고 있다. 그 지하수를 빨아들인 나무와 풀이 자라나고, 방사성 풀을 뜯어 먹은 젖소는 어느 날부턴가 방사성 우유를 만들고, 길주와 김책의 주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우유를 마셨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오늘 북핵은 한국이나 미국을 위협하기 전에 이미 스스로를 상해하고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20년 후 발병할지도 모를 그 누구의 백혈병이나 위암, 골수암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2번 갱도만은 폭파하지 말고 보존한 다음 적어도 1∼2년 국제 전문가 집단의 도움을 받아 광범위한 지질조사와 환경평가를 동시에 하고, 지하수 지도를 만들어 바닥을 콘크리트로 막고, 남은 핵물질은 긁어내고, 방사성물질은 씻어내고 자갈, 모래로 갱도를 100m 넘게 메운 다음 입구를 강화 콘크리트로 막는 방식을 택했어야 했다. 북한은 체르노빌의 교훈도 새겨보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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