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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8년 06월 05일(火)
自我 담긴 ‘朝鮮의 사실주의’… 렘브란트·뒤러作 못지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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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세황 자화상, 비단에 채색, 88.7×51㎝, 1782년. 진주 강씨 백각공파 종친회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기탁.
■ 전준엽이 만난 한국의 美感 - ⑦ ‘인물화의 정점’ 자화상

미켈란젤로 등 최고 화가들
자기 삶 압축한 자화상 남겨

‘民本’ 건국이념 삼았던 朝鮮
인물화도 당연히 많았을 것

산수화에 비해 공개작품 적어
왕실·사당·서원에 봉안된 탓


윤두서, 수염 한터럭도 세밀
탕건은 간략히… 귀·몸 생략

강세황, 서양式 명암법 구사
70세에 예술혼 담은 자화상

‘서예·문인화의 大家’ 김정희
아마추어적 유머러스 자화상


예술가에게 작품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은 것이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삶을 압축해 보여주는 자화상은 작가의 본질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열쇠 같은 그림이다.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고 자기와 끊임없이 맞서는 인생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서양 미술사에 이름이 오른 많은 작가는 자화상을 남겼다.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 포즈로 그린 것이 대부분이지만, 다른 인물에 빗대어 그리기도 했다. 위대한 자화상을 남긴 작가로는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을 이끈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를 꼽는다. 예수의 모습으로 그린 자화상으로 유명한데, 미술가의 창조력은 신의 능력에 비견될 만큼 아주 특별하다는 생각을 담았다. 이례적으로 화제까지 집어넣었다. ‘여기 나, 뉘른베르크 출신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스물여덟 살에 지울 수 없는 색채로 나 자신을 그렸다.’ 화가를 제빵사와 같은 수준으로 여겼던 당시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67×49㎝, 1659년.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소장.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을 연 천재 화가 카라바조(1573~1610)는 성서의 에피소드 속 인물로 변장한 자신의 모습을 남겼다. 100여 점에 이르는 자화상을 남긴 렘브란트(1606~1669)나 평생 그린 55여 점 그림 모두가 자화상이었던 프리다 칼로(1907~1954)는 자서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가장 특이한 자화상을 남긴 이는 르네상스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1475~1564)다. 시스티나 성당 벽화 ‘최후의 심판’ 속에다 자신의 모습을 그렸는데,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지는 형벌로 순교했다는 성인이 들고 있는 옷처럼 늘어진 살가죽의 얼굴이 미켈란젤로다. 예술가로 대접받으면서 살았지만, 신의 영광을 증명하는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자기 반성적인 의미다. 자신의 삶은 성자의 껍질같이 하찮다고 말하고 있다.

자화상은 인물화의 정점에서 나타나는 그림이다. 인물화가 회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양 미술에서 이처럼 다양한 자화상이 나오는 현상은 인본주의가 발달해온 서양에서는 당연해 보인다.

우리 회화 유산은 조선 시대에 집중돼 있다. 그것도 풍경화인 산수화 위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의 건국이념은 민본이다. 백성, 즉 인간이 근본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미술에서도 사람을 중심에 두어야 하지 않았을까. 잘 보면 그렇다. 아직까지도 제대로 연구하지 않아서 그렇지 조선 회화에서도 인물화가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  김정희 자화상, 종이에 담채, 32×23.5㎝, 19세기. 선문대박물관 소장.
우리 미술사를 꾸리고 있는 회화는 산수화가 가장 많고, 문인화, 꽃이나 식물 곤충을 그린 화훼, 동물 소재의 영모화 등이다. 그런데 500년 역사에 비해 양적인 면에서 빈약하기 그지없다. 크기에 있어 본격적인 작품으로 평가하는 데 무리가 따르는 것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적지 않은 작품이 화첩(스케치북 크기의 책 같은 성격)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문적인 화가가 아닌 문인 사대부들이 심심풀이로 그린 것도 많다. 지금으로 치면 정치가들이 취미 삼아 그린 그림인 셈이다.

이에 비해 인물화는 화공으로 천시받던 전문화가의 작품이다. 작품의 완성도나 크기로 보면 미술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출중하다. 그런데 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일까. 인물화 대부분이 초상화이기 때문이다. 초상화는 감상보다는 특별한 기능을 위해 제작된 그림이었다. 유교의 핵심 중 하나인 제사와 관련해 왕실이나 사당, 서원 등에 모시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예술 작품과는 별개로 봤던 탓이다.

우리 회화의 기법이나 변천을 살피는 데 인물화 연구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런데 아직도 접근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특정한 장소(왕실이나 문중의 사당)에 봉안돼 공개를 꺼리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우리 회화사를 빛나게 하는 자화상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뒤러나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는 윤두서(1668~1715)의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호랑이 얼굴처럼 보이는 이 인물은 300여 년 전의 선비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이다. 우리 미술사 최초 자화상으로 꼽히는 걸작이다.

반듯하고 선이 굵은 얼굴은 성격파 배우를 해도 괜찮을 용모다. 그런데 무얼 보고 있을까.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겠지. 눈썹 한 올, 수염 한 터럭까지 세밀하게 관찰해 그려낸 것이 놀랍다. 얼굴 피부의 느낌까지 꼼꼼하게 잡아냈다. 마치 진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는 듯한 현실성이 느껴진다. 서양의 사실주의 미술에 버금가는 조선 회화의 사실주의라고 불러도 괜찮을 성싶다.

▲  윤두서 자화상, 종이에 담채, 38.5×20.5㎝, 1710년. 해남 고산 윤선도 종가 소장.
이 그림에 사실성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머리에 쓴 탕건은 과감히 짙은 먹으로 쓱쓱 칠해 단순하게 처리했다. 추상적인 표현법이다. 눈은 마치 화장이라도 한 듯 강조해 놓았다. 눈동자 또한 도드라져 있다. 정신을 담기 위한 작가의 의도적 표현으로 보인다. 이를 ‘전신사조(傳神寫照·인물의 형상 재현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담아낸다는 의미)’라 부르는데, 조선 시대 초상화의 표현 기법이다. 48세에 삶을 마감한 작가가 죽기 몇 년 전에 그린 것이다.

윤두서는 정말 거울에 비친 자신의 겉모습만 보고 있을까. 아닐 게다. 얼굴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말년 삶에 대한 반성을 통해 내면의 성숙함을 이루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러분도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다 보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윤두서가 자화상을 통해 그리려던 세계다.

이 그림은 얼굴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몸을 그리지 않았다. 귀도 없다. 이를 두고 미술계에서는 ‘혁신적 현대 감각’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밝혀진 바로는 몸과 귀를 그렸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지워졌을 것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내놓았다.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윤선도의 증손자이자, 실학의 대가 정약용의 외증조였던 윤두서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명문가 인물이다. 시, 서, 화에 능한 문인사대부로 현실적인 포부도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기꺼이 선비의 삶을 택했고, 화가로서 조선 회화사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서양 회화의 자화상적인 성격에 가깝게 다가가 작품을 남긴 이는 표암 강세황(1713~1791)이다. 조선의 문예부흥기로 칭하는 영·정조 시대에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해 조선 후기 회화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통한다. 그림뿐만 아니라 서예가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홍도, 심사정, 정선과도 교류하며 작품 평을 남겨 평론가로서의 면모도 두드러지는 예술지식인의 표본으로 평가된다.

특히 회화에서의 혁신적인 활동으로 조선 회화의 변혁을 주도했다. 그래서 한국 미술의 근대정신이 나타났던 시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꼽힌다. 한국 미술사에서는 처음으로 서양화적인 명암법을 수용한 입체적 그림을 개척해 조선 후기 회화의 지평을 넓혔다. 그런 진취적인 생각은 자아의식이 명쾌하게 드러나는 자화상을 남기게 되는 요인으로 보인다.

일흔 나이에 이르기까지 대여섯 점의 자화상을 남길 정도로 초상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기록에 의하면 평소 강세황은 자신의 외모가 볼품없다고 토로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자화상을 남긴 것을 보면 예술가로서 내면을 탐구하려는 자의식이 강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자화상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70세에 그린 것이다. 세상을 뜨기 9년 전 모습으로 지나온 생애를 관조하듯 청초한 분위기로 단장한 좌상이다. 의관을 바르게 갖추고 바닥에 앉은 사대부의 일상적인 모습인데 조금은 어색해 보인다. 사대부의 일상복인 옥색 도포에 입궐할 때 쓰는 오사모를 그렸다. 일상복에 정장용 중절모를 쓴 특이한 차림의 자화상인 셈이다.

비록 관직에 몸담았지만, 마음에는 예술을 품었다는 생각, 출사한 사대부이면서도 가슴 언저리에 은일지사와 같은 기품 있고 자유로운 생각을 늘 가지고 살아왔다는 신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심중이 그림 속 찬문에 드러나 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수염과 눈썹이 하얗구나. 오사모를 쓰고 야복을 걸쳤으니 마음은 산림에 있으면서 조정에 이름이 올랐음을 알겠다. 가슴에는 만 권의 책을 간직했고, 필력은 오악을 흔드니 세상 사람이야 어찌 알리. 나 혼자 즐기리라. 노인의 나이 일흔이요, 호는 노죽이라. 초상을 손수 그리고, 화찬도 손수 쓰네.’

이런 생각은 61세에 처음 관직으로 나아간 그의 행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출중한 문인사대부로서 왕으로부터 수없이 부름을 받았을 터인데, 생애 만년 20년 가까이 강세황은 호조참판, 병조참판, 한성부판윤 등의 관직을 훌륭히 수행했다.

▲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조선 말기 독창적인 글씨와 문인화를 창조해낸 추사 김정희(1786~1856)도 자화상을 남겼다. 당대 지식층의 존경을 한몸에 받던 대표적인 문인사대부로 그의 글씨는 중국 대륙까지 호령할 정도로 유명했다. 관직에 나아갔지만 신념과 부딪혀 오랜 귀양 생활을 했고, 고전 해석에도 능통한 학자였다. 그러나 전문적인 화가는 아니었다. 따라서 그의 자화상에는 아마추어적인 분위기가 보인다.

명성만큼 그의 초상은 허련 등 당대 유명 화가들에 의해 제작된 것이 서너 점 있다. 추사의 자화상은 정통 초상화와는 달리 평상시 모습이다. 세련된 묘사력보다는 서예로 단련된 필치가 도드라져 오히려 요즘 감각에 가깝다는 점이 특이하다. 구성에서도 조선 인물화와는 다른 파격을 보여준다. 여백이 풍부하고 인물을 아래로 배치해 현대적인 분위기를 띤다. 표정도 엄격하고 날카로운 성격이 잘 드러나 있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유머러스하다. 추사의 예술적인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생을 마감한 과천시대 모습이다.

그런 마음을 화제에서 읽을 수 있다.

‘나라고 해도 좋고 내가 아니라고 해도 좋네. 옳다 해도 나이고 그르다 해도 나이니. 나이고 나 아닌 사이에는 나라고 할 만한 게 없구나. 제석천의 구슬이 주렁주렁한데, 누가 큰 여의주에 비친 모습에 집착하는가. 허허 과천 늙은이가 스스로 짓다.’(문화일보 5월 8일자 24면 6 회 참조)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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