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fty+ >5060 과학자들의 ‘外道’… 지역사회와 ‘바람’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7일 대전 유성구 덕진동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실에서 정용환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한장’ 회장이 평생을 바쳐 국산화에 성공한 지르코늄 핵연료 피복관 제품을 보여주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한장’ 회장 정용환 원자력硏 연구원

기계硏 박사의 AI로봇 이야기
지질자원硏 박사의 지진 토크
국방과학硏 박사의 미사일 등
월 1회 재능기부 ‘과학콘서트’

인근 학교 찾아가는 과학여행
수준 높은 ‘STEM 교육’전파

벽돌 한장 한장씩 쌓아 올리듯
세계적 ‘과학문화공동체’ 소망

지역 현안 귀기울여 화합·소통
회원들, 대전 문화유산 투어도

회비 의존하는 재정문제 고민
기업·지역공공기관 도움 절실

“밖에서 계란을 깨면 계란 프라이밖에 만들 수 없지만, 안에서 깨면 생명체가 탄생합니다. 대덕의 구성원들도 그동안 국가적 수혜 대상이라는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스스로 힘으로 창조적인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정용환(62·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원) 사단법인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 한 장’(이하 벽돌한장) 회장을 만난 것은 지난 7일 그가 34년간 연구에 몰두해온 대전 유성구 원자력연구원 내 재료연구동 연구실에서였다. 삼엄한 보안을 요구하는 시설인지라 신분증을 입구 경비실에 맡기고 테이프로 휴대폰 카메라를 가린 뒤에야 연구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연구동 입구에는 그가 1985년부터 연구 인생을 다 바쳐 국산화에 성공한 성과인 ‘지르코늄 핵 연료봉 피복’ 모형이 자랑스럽게 전시돼 있었다. “이 연구 개발로 2015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았습니다. 국책연구소 연구원으로는 제가 처음으로 받은 상입니다. 상금도 3억 원이나 받았고, 연구원도 100억 원의 기술이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원자력기업인 아레바사와 7년간의 특허소송에서 싸워 이겨 이룬 성과인데, 연구자로서 저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덕연구개발특구가 배출한 ‘스타 과학자’인 그는 자신의 연구 인생을 마무리하는 요즘 ‘외도 아닌 외도’를 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도 연구 성과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그가 리더로 있는 사단법인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한장’ 활동 때문에 이뤄진 것이었다.

우선 특이한 이름의 사단법인을 만든 동기가 궁금했다. “대덕연구개발특구가 1970년 초반 대덕연구단지라는 이름으로 조성된 지 45년이 지났고 수십 개의 국책 연구기관이 집적돼 있지만, 아직 과학동네 내부나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융합과 소통의 네트워크는 거의 없습니다. 과학 문화와 공동체 형성도 아직 초보 단계에 머물고 있어요. 벽돌한장 모임은 대덕의 과학자들과 대전 시민이 함께하는 지역 커뮤니티로, 스스로 힘으로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 올리듯, 화합의 공동체를 만들어 결국 세계적인 과학문화공동체를 이뤄나가자는 뜻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지난 2013년 출범한 벽돌한장 모임은 현재 회원이 100여 명에 이른다. 대덕에 사는 과학자와 기업인, 교수, 뜻있는 시민들 등이 구성원이다. 모임을 주도하는 이사진 상당수는 50대 이상의 중견 과학자다. 삭막했던 과학동네 박사마을에 온기를 불어넣는 일, 갑천을 사이에 두고 격리된 ‘섬’처럼 지역사회와 따로 놀았던 대덕특구와 지역 주민들의 거리를 좁히는 일 등이 이들의 ‘미션’이다. 다행히 열정과 활동력을 갖춘 이사진이 자발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하고 있다. 정 회장은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고, 시간도 많이 뺏기는 일인데 다들 열심히 해준다”며 “우리 연구자들은 국가로부터 받은 혜택과 전문 지식을 국민과 사회에 돌려주고 싶어 했는데 벽돌한장 모임이 그런 기회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용환 회장이 지난 7일 34년간 원자력발전 관련 핵심소재 연구에 몰두해온 한국원자력연구원 내 재료연구동 자신의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매달 한 번씩 대덕테크비즈센터에서 과학자 회원들의 재능기부 형태로 ‘따뜻한 과학 마을 이야기’라는 이름의 과학 콘서트를 여는데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각 연구원의 전문가들이 나와 분야별 강의를 일반 시민과 학생,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3시간 동안 진행하는데 입소문이 나서 그런지 점점 참여자가 늘고 있어요. 지질자원연구원 박사님의 지진 이야기, 국방과학연구소 박사님의 미사일 이야기, 기계연구원 박사님의 AI 로봇 이야기 등 흥미를 끌 수 있는 주제의 강의와 자유토론이 벌어집니다. 토론 열기가 뜨거워서 정상적인 진행을 위해 1인 1질문, 첫 참가자 우선 질문 등의 토론 원칙도 세워놓을 정도입니다.”

정 회장은 “과학 대중화 활동으로 대전·세종권의 일선 학교를 상대로 한 ‘찾아가는 과학여행’도 인기가 높은 프로그램”이라며 “수준 높은 과학 강의를 학생들이 분야별로 선택해 들을 수 있어 학교 선생님들의 문의가 많지만 여러 강사의 스케줄을 잡기가 어려워 아쉽다”고 자랑했다. 모임 참가자들은 미국의 혁신교육 전략인 STEM 교육도 대전 사이언스페스티벌 등을 통해 지역 주민에게 소개하고 있다. 과학(Science)과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의 약자를 모은 이 교육 시스템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과학자와 기술자, 엔지니어, 수학자가 함께 융합해 설명하는 새로운 학습 방법이다.

과학자들이 직접 대전 원도심을 찾아 근대문화 유산 투어 등을 하는 원도심 방문 프로젝트, 회원 야유회도 진행되고 있다. 과학기술 정책 토의 및 정부 건의 활동, 과학 도시 조성 정책 등 과학정책 활동 분야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정 회장은 “대덕이 세계적인 연구·개발 클러스터로 자리를 굳히기 위한 바람직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매봉공원 아파트 개발, 옛 대덕롯데호텔 건물 고밀도 개발 반대 등 청원·서명운동 등에도 동참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모임 활성화를 위해 정 회장에게 놓인 과제도 만만치 않다. 부족한 재정문제는 늘 그를 괴롭히는 골칫거리다. “연회비 3만 원에만 의존하는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원들이 학교 현장 강의 시 받는 소정의 수당도 기부받는 고육책까지 쓰고 있지만 부족한 재정을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업 후원자들을 찾고 있는데 대덕특구와 지역사회를 아끼는 뜻있는 기업인들의 참여가 절실합니다.” 지역 공공기관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찾아가는 과학 대중화 사업을 더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교육청, 일선 구청 등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일부 공공기관의 인식 부족으로 부서 간 업무 떠넘기기 등이 벌어질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주민들을 위해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죠.”

대전 = 김창희 기자 ch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