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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후여담 게재 일자 : 2018년 06월 25일(月)
JP의 言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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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정치는 국민 마음을 얻기 위한 ‘언어의 예술’이기도 하다. 윈스턴 처칠처럼 수많은 명언을 남기고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말 한마디 잘못해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이부망천’ 논란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사자는 사과하고 당을 떠나야 했다. 홍준표 전 대표도 당 소속 의원들을 향해 ‘바퀴벌레’ ‘연탄가스’ 등 거친 막말을 일삼다가 비토당했다.

3김 시대의 어두운 면도 많지만, 자질로 볼 때 아직 이들을 뛰어넘는 정치인은 없다. 특히 23일 92세를 일기로 별세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언격(言格)’은 최고봉이다. 한학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고사성어를 많이 배웠던 그는 공주공립중학교 시절 하룻밤에 한 권의 책을 읽지 못하면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일야일권(一夜一卷)’을 실천했다. 위인전기와 역사책을 좋아해 웬만한 책은 다 독파했다고 한다. 책벌레로 유명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소장한 책이 3만 권에 달하는데 JP는 이보다 더 많은 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JP는 생전에 자신의 책 읽는 습관을 아무 책이나 잡히는 대로 읽는 난독(亂讀)이라고 했다. 좋은 문구는 메모해 적절할 때 사용했다.

1961년 5·16쿠데타를 일으킨 날 방송된 혁명공약 첫 구절에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오늘 아침 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해…”라는 다소 시적인 문구도 JP가 직접 썼다. ‘자의 반 타의 반’ ‘몽니’ ‘줄탁동시’ ‘무항산 무항심’ 등 요즘 정치권의 일반 명사가 되어버린 말 대부분은 JP가 사용한 것이다. 1995년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에서 JP 퇴진을 거론한 민주계 의원들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덕담하자 JP는 “있는 복이나 빼앗아가지 마시라”며 촌철살인으로 응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역사 바로 세우기’에는 “역사는 끄집어낼 수도, 자빠트릴 수도, 다시 세울 수도 없는 것이다. 역사는 그냥 거기서 배우는 것이다”며 멋지게 한 방 먹였다.

JP의 말은 거친 정치권에 여백을 만들어 주었다. 협치와 타협의 정신을 남겼다. 지금 정치인들은 책을 읽는 사람도 드물뿐더러 어록이라고 할 만한 말을 남기는 사람은 더 보기 힘들다. ‘악성종양’ ‘똥을 싸놓고’ ‘목을 쳐야’ 등 저급한 말만 난무하는 정치권을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JP의 말이 더 돋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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