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탈북 청년 작가 이성주 씨가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의 마당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하던 중 두 팔을 벌리며 미소를 짓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탈북자 출신 작가 겸 北인권운동가 이성주 씨
軍출신 부친 北체제비판 적발
평양 살다 함경북도로 쫓겨나
가정 풍비박산 후 꽃제비생활
전기 없는 곳서 별똥별 보며
‘먹게 해주세요’ 빈 소원 이뤄
9월엔 박사과정 위해 미국行
北장사꾼, 공권력에 대들 만큼
내부 불만 크고 분위기 변해
장마당 권력 ↑… 중앙 권력 ↓
김정은 ‘인권 거론’ 가장 민감
이번에 안 다루면 향후도 못해
탈북 돕는 게 현실적 통일준비
처음 만난 탈북 작가 이성주(31) 씨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차도남(차가운 도시남자)’이었다. 외모나 말투, 억양 등 겉으로 이 꽃제비 출신 탈북 청년에게서 어두운 이미지는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인터뷰 도중 행방불명된 어머니를 찾기 위해 탈북민 구출 사업에 나서게 된 과정과 꽃제비 경험을 담아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자전적 에세이 ‘Every Falling Star’(한국어 번역본 ‘거리 소년의 신발’) 집필에 얽힌 사연을 얘기하는 대목에서 그의 아픔을 읽을 수 있었다. ‘천둥 같은 울음’을 속으로 삼키며 치열하게 살아온 탈북 청년은 통일을 온몸으로 준비하는 ‘희망’의 메신저로 다가왔다.
평양에서 태어난 이 씨의 아버지는 호위국 군관이었으나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술자리에서 북한 체제를 비판한 사실이 적발돼 온 가족이 함경북도로 쫓겨났다. 이후 식량을 구하기 위해 탈북한 아버지는 중국을 거쳐 한국에 자리 잡았다. 이 씨는 식량을 찾으러 떠난 뒤 연락이 끊긴 부모를 찾아 꽃제비 생활을 4년쯤 했을 때 다행히 아버지가 보낸 브로커를 만나 2002년 한국에 왔다. 이 씨는 한국에 도착해 17세에 중학교를 뒤늦게 입학했고, 2009년에는 서강대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갔다. 그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와중에 자신이 겪었던 북한의 처참한 상황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책을 썼다. 그는 “꽃제비 생활을 4년 하면서 겨울이 되면 많은 사람이 역에서 얼어 죽는데, 시체를 옮기면 강냉이빵을 준다고 해서 빵을 먹기 위해 시체를 엄청 옮겼다”고 말했다.
2014년 캐나다 하원 부의장 보좌관 인턴보좌관으로 일하던 시절 토론토대학에서 이 씨의 강의를 들은 한 작가의 도움으로 책을 내게 될 당시 미국 출판사 에이브럼스북스와 책 제목(Every Falling Star)을 놓고 갈등하다 끝내 자기 고집을 관철시킨 일화를 소개했다. 이 씨는 “10세 때 평양에서 함경북도 경성 단모리라는 곳으로 추방됐는데 방문을 열고 누워 있으면 별이 30분에 하나씩 떨어질 정도로 엄청 많았다”며 “어머니가 저를 무릎에 앉혀 놓고 별이 떨어질 때마다 별에게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뤄진다고 했다. 그때 소원은 ‘맛있는 빵을 먹게 해주세요’였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길거리에 전기가 없어 강둑에 누워 하늘을 보면 별이 많이 떨어진다. 꽃제비 시절 소원은 ‘꼭 살아남아서 아버지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세요’였다”며 “저한테 별똥별은 희망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별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제 이야기지만 죽은 그들에게 책을 바치고 싶어 그 제목을 고집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한국어 제목을 ‘거리 소년의 신발’로 한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거리 소년의 신발’이란 제목은 꽃길을 가든 흙길을 가든 함께하겠다는 것으로, 도둑 기차를 타고 여러 지역으로 옮겨 다닌 꽃제비 친구들에게 헌정하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의 책은 출간 전인 2016년 5월 올랜도 책 박람회에서 청소년 도서상으로 추천됐다. 선정작가들은 7분 정도 스피치를 하는데, 그는 ‘희망·용기·사랑’ 세 단어로 스피치를 했고 호응이 좋아 그해 9월 13일 책 출간과 동시에 여러 곳에서 상을 받았으며, BBC 방송과 가디언지 등에 소개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지난해 11월 청와대 주최 국빈 만찬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면서 유명해졌다. 이 씨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영어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을 만나면 중국에 억류된 탈북민이 꼭 석방되도록 말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트럼프 대통령은 “알겠네, 젊은이”라고 답했다. 그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자신을 작가라고 부르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밥벌이하는 프리랜서’라며 겸손함을 보였다.
이 씨는 오는 9월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한반도 분쟁 분석 및 해결학을 전공하러 워싱턴DC 인근 조지메이슨대학으로 또다시 유학을 간다. 이 대학이 남북한 분쟁 갈등 관련 박사과정 장학생을 받아들인 것은 개교 이래 처음이다. 그는 “통일은 제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며 “집에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남한과 북한이 잘살 수 있는 길이다. 국제사회에서 통일을 바란다고 하더라도, 남과 북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통일은 이뤄지기 어렵다. 남과 북의 통일을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통일이 될 때도 중요하지만 통일 후 사회통합 과정에서 엄청난 갈등이 생길 것”이라며 “남북이 70년간 따로 떨어져 살면서 생긴 정체성의 갈등을 어떻게 협력의 시너지로 만들지, 정체성이 부딪치면 싸우게 되는데, 잘하면 이 다른 정체성을 다양성으로 폭발하게 해 좋은 사회로 발전시키는 동력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글과 연구만이 아니라 북한인권시민연합에 몸담고 탈북민 구출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그가 이 일에 뛰어든 것은 아직 행방을 모르는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 씨는 “브로커를 통해 어머니와 이름·고향이 같은 여성을 중국 옌지(延吉)에서 만났는데 모르는 분이었다”며 “아버지와 저는 탈북해서 중국인에게 팔려간 그 여성을 400만 원을 주고 구해줬다. 그분이 17세 된 딸도 다른 동네로 팔려갔다며 구해달라고 해 아버지가 함께 사업하는 분에게 200만 원을 빌려 구해줬는데 지금은 제 동생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 탈북민을 구출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구나, 이렇게 한 명 두 명 구출하다 보면 언젠가 제 어머니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먹고 탈북민 구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 “탈북민을 통해 남한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알게 되는 만큼 탈북민을 구출하는 것은 현실적인 통일 준비”라며 “탈북민이 한국에서 잘 정착하면 자기만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북한 친척들에게 돈을 보내 장마당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게 된다. 북한의 권력은 중앙과 장마당 권력으로 나뉘는데, 장마당 권력이 커지면 중앙 권력은 약해진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최근에 탈북한 친구들 얘기로는, 제가 북한에 있을 때보다 주민들의 불만이 훨씬 커졌다”며 “제가 북한에 있을 때는 안전요원들한테 대드는 것은 상상도 못 했는데 요즘은 안전요원들이 자릿세를 너무 많이 뜯어가 이제는 좀 그만하라고 대들 정도로 장사꾼들이 공권력에 대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김정은 비판 낙서도 많이 늘었다고 소개했다.
이 씨는 북한 인권문제가 문재인 정부 들어 소홀히 다뤄지는 것에 서운함을 표시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임차료가 없어서 북한인권사무소 방을 뺐다는 것은 핑계고, 북한을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권문제가 북한 심기를 건드리니 인권문제는 접어두고 핵 문제 해결에 치중하자는 게 정부의 기조인 것 같다”며 “하지만 인권문제를 같이 다루지 않으면 핵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북한 인권문제는 영영 다룰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 관료들은 북한 핵 문제부터 해결하고, 경제 봉쇄가 풀려 경제가 활성화되면 북한 인민 생활이 향상돼 인권문제가 나아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며 “경제가 좋아지면 인권이 나아진다는 논리는 정치 어젠다를 관철시키기 위한 알리바이일 뿐 어느 나라도 경제가 좋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인권이 향상된 사례는 없고, 경제가 좋아지면서 사람들이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했기 때문에 나아진 사례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 정부가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인권문제를 뒤로 미루고 있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씨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논리는 외부 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북한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한 정부가 핵을 포기하겠다고 내부에 천명하지 않고 있다”며 “지난 4월 20일 노동당 제7기 3차 전원회의 때도 조선노동당의 병진노선이 승리했으니 경제에 총력을 기울이자고 했는데, 그 말은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핵 추가 개발이 필요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난의 행군 때 북한 정부는 주민들에게 미국이 우리를 봉쇄 침략하려고 하니 배고프지만 참고 군사부문에 투자해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들자고 했다”며 “친척들이 굶어 죽은 걸 본 제 세대의 친구들은 지금 핵을 포기한다고 하면 당시 죽은 사람들을 떠올릴 것이다. 핵을 포기했을 때 내부 발화의 위험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 내부의 변화 움직임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도 내놓았다. 이 씨는 “2030년쯤 되면 북한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바뀔 것으로 생각한다”며 “제 또래가 사회를 움직이는 주류가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씨는 이러한 변화에 대비한 탈북자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현재 한국에 머무는 3만2000명의 탈북자에게 그냥 지갑만이 아니라 마음의 지갑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탈북민을 대할 때 중요한 것은 이들을 무조건 불쌍하게 생각하고 돕겠다는 시혜적 마음보다는 편견이나 선입관을 버리고 진정한 친구가 되고자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 정충신 부장 (정치부)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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