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장이 ‘사람으로 쓰는 편지’>유쾌했던 ‘문학계 공블리’… 분노 끊을 날을 꿈꿔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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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소설가 공지영

그때 소설가 김훈 선생은 시종 유머를 구사했습니다. 그중에 하나. “88올림픽 무렵이었는데, 내가 다니던 신문사에서 직원들에게 금연 표어를 지어 오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지어 갔지. ‘담배 끊어서 오래 살아／88올림픽 꼭 보고 죽자.’”

지금으로부터 10년도 훨씬 전에 있었던 지리산 문학캠프에서의 일입니다. 저는 당시 취재 기자로 갔는데, 캠프가 끝난 후에 김훈, 공지영 두 분 작가와 함께 담양 등을 돌아봤습니다. 공 작가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으나, 김 작가는 여정 중에 우스개들을 연달아 내놨습니다. 약간 느린 어조에 웃음기 하나 없는 음색으로. 공 작가는 그때마다 허리를 꺾고 웃었지요. 선배 농담에 대해 예의를 차린다기보다는 즐거움에 취해 심신을 맡기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수십 명의 작가, 독자들이 참여했던 캠프에서도 공 작가는 활달했지요. 누구와도 어울려 술잔을 유쾌히 꺾으며 웃고 떠들었습니다. 산행 때 누군가 몸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앞장서서 도와주려 했습니다. 다른 이에 대한 배려가 깊었습니다.

그 반면에 지나치게 솔직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명문대를 나온 미모의 여성 작가라서 동료들의 질투를 받는다는 말. 농담 기색 없이 그런 이야기를 하니 당혹스럽더군요. ‘공블리 작가’의 자뻑으로 여겨졌습니다.

이후에 공 작가를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굳이 만나지 않아도 늘 소식을 들었습니다. 공 작가가 작품뿐만 아니라 SNS 발언을 통해 늘 화제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회적 논란의 한가운데에 자주 서 있는 모양이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문학인들도 대부분 공 작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토로하더군요. 정치인이나 운동가가 아닌 작가는 작품을 위해 침잠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라는. 공 작가의 발언 내용과 상관없이 그렇게 자주 나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습니다.

이번에 이재명-김부선 논란 와중에 공 작가가 발언할 때도 어휴, 또 나섰군, 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논란의 내용을 자세히 살피면서 생각이 달라졌고, 공 작가의 발언에 대한 비난이 과도하다고 여기게 됐습니다. 공 작가는 당초 자신이 들은 것을 들었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당사자들이 해명하라고, 지극히 원칙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지요. 그 이후의 공방은, 억지 반격에 대한 응답입니다.

공 작가의 이번 발언은 패거리 논리, 친분 관계 등을 넘어선 것이어서 특별히 뜻이 있습니다. 내 편이라면 온갖 불법, 편법에도 눈감고 오로지 정의로 포장하는 당대의 지성 풍토에선 참 귀한 것이지요.

이번 논란 당사자인 김부선 씨 증언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공 작가의 증언이, 유력 정치인의 파워에 맞서야 하는 한 중년 여배우의 상황에 대해 아는 대로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나왔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아프고 연약한 것들의 그늘을 들여다봐 온 문학 행위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공 작가의 초기 작품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산다는 건 언제나 말해야 할 곳에서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말하지 말아야 할 곳에서 말을 꺼내는 실수의 반복이었다.” 일각에선 공 작가의 이번 증언을 실수라고 몰아붙이지만, 저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공 작가! 이달 말에 새 작품 ‘해리’를 해냄출판사를 통해 발간한다고 들었습니다. 전주 여목사 봉침 사건과 대구 희망원 사건 등을 모티브로 해서 악(惡)을 탐구한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꼭 사서 보겠습니다. 공 작가의 문학 성취를 헤아릴 능력은 없지만, 1990년대 이후 왜소해진 한국 소설의 서사를 굳건히 지켜 온 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 작가는 최근 어느 인터뷰에서 “이제 생계 아닌 즐기는 글쓰기가 시작됐다”는 말을 했더군요. 막내 아이가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세 아이 부양비를 벌기 위해 악착같이 글을 썼던 부담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부담이 글의 동력이긴 했으나, 거기로부터 해방됐다는 것이 참 기뻤다고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잘 웃는 분이니 앞으로 웃을 일을 더 많이 만나기를 바랍니다. 정의를 가장한 부도덕, 그것을 비호하거나 외면하는 세상, 그에 대한 분노가 가장 큰 장애물일 것입니다. 그 분노를 끊을 날은 오지 않겠으나, 그래도 꿈을 꾸자는 의미에서 이런 표어를 들려드립니다. ‘분노 끊어서 오래 살아／좋은 세상 꼭 보고 죽자.’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