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미군 유해 송환’에 밀리는 北核 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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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연세대 교수 국제정치학

미국과의 비핵화 회담이 진행 중인 국면에서도 북한은 영변의 핵시설과 평양 외곽의 강선 단지에서 대규모 우라늄 농축시설을 가동 중이라고 한다. 지난 2003년부터 가동된 강선 단지의 핵무기급 우라늄 생산량은 영변의 2배 규모라고 한다. 또, 영변과 강선 외 제3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미 정보 당국이 탐지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상황이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비핵화보다 미군 유해 송환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는 게 아닌가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우려의 배경은 트럼프 대통령의 다자외교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달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싱가포르로 날아가 6·12 미·북 정상회담에 임한 그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 경제적 번영을 약속했다. 지난주엔 후보 시절부터 많은 예산을 들인다며 비난했던 새 나토(NATO)본부 건물을 방문한 자리에서 회원국들의 방위비 증액을 노골적으로 압박하더니,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브렉시트 정책을 비판했다.

돌출외교, 무원칙외교, 트위터외교란 비난을 받지만, 그에겐 한 가지 원칙이 있다. 다자외교보다 양자외교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다자외교에선 공동의 정체성에서 파생된 공공의 선을 위해 개별 회원국이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특히, 리더 국가는 더 큰 부담을 안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게 싫다는 것이다.

양자외교는 다자외교와 우선순위부터 크게 다르다. 상대국과의 역사적 또는 경제 관계에서 파생하는 상징성은 국내 정치에도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미국의 최우선 대북 과제는 북핵으로부터 본토를 보호하는 것이다. 비핵화에 긴 시간이 필요하다면 핵무기 운반체인 미사일부터 무력화하면 우선 급한 불은 끄게 된다. 이는 싱가포르에서 어느 정도 김 위원장의 약속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했지만, 북한 외무성이 트럼프의 비핵화 요구를 “강도 같은” 요구라고 비난한 것은 양보에 대한 보상을 받기도 전에 또 다른 요구를 한 데 대한 반발이다.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CVID)에 집착하는 만큼 북한도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6·25전쟁 때 숨진 채 북한에 묻혀 있던 미군 전사자들의 유해 송환도 우선순위에선 결코 뒤지지 않는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숨진 영웅들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국가와 국민의 가장 소중한 약속이 담긴 정치적 상징성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에도 부합한다.

물론 다음으로는 경제적 이득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16일 정상회담을 위해 핀란드 헬싱키로 떠나기에 앞서 자신 소유의 스코틀랜드 남부 턴베리 리조트에서 골프를 즐기며 적자 상태인 골프장 홍보에 나설 정도로 트럼프 대통령은 뼛속까지 사업가다.

미국과 가장 가까운 우방인 영국과 캐나다, 나토 회원국들에까지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그의 외교 방정식을 우리도 풀어나가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가 미국에 충분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란 식으로 설득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자외교의 틀을 과감히 깨고 발품을 팔며 부지런히 북핵 양자회담에 나서야 한다. 가장 원하는 것과 가장 실현 가능성이 큰 대안 사이의 우선순위 조정이 필요하다. 지금은 원칙보다 실용으로 더 큰 실리를 얻어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