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 Story >“신사동 오징어먹물 김밥 대박… 우리 가게가 가로수길 만들었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상윤 SF이노베이션 대표가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본사 사무실에서 SF이노베이션의 모태인 외식 브랜드 ‘스쿨푸드’의 영문 알파벳이 적힌 종이상자를 앞에 두고 지금까지 걸어온 삶을 이야기하며 활짝 웃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이태원 춤꾼서 외식업 CEO로 이상윤 SF이노베이션 대표

어머니 사기당해 집 풍비박산
중학교 중퇴후 이태원 식당일

춤에 매료돼 4인조 그룹 결성
박남정·양현석과 같은 춤세대

결핵으로 춤 포기후 김밥배달
단골손님 늘며 신사동에 개업

독특한 분위기 연예인도 단골
10개 브랜드 매출 500억까지

무조건 튀는 것으론 성공못해
늘 접하는 것에서 차별화해야

분식·치킨 등 한국적 메뉴로
해외 프랜차이즈 진출 목표

돈이 없어 수돗물로 허기를 달래던 중학생에서 무명의 춤꾼 생활을 거쳐 현재 연 매출 500억 원에 달하는 종합 외식기업 CEO로 우뚝 섰다. 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해 인기 프랜차이즈 스쿨푸드를 포함해 김작가의 이중생활, 판다 익스프레스, 분짜라붐, 내몸에쌀국수, 스쿨푸드 딜리버리 등 외식 브랜드만 10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인생역전의 주인공인 이상윤(50) SF이노베이션 대표를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본사에서 만났다.

어릴 적부터 고생해 이미지가 강할 거라는 생각은 선입견일 뿐이었다. 여느 CEO와 달리 캐주얼한 옷차림에 감각적인 둥그런 안경, 챙이 짧은 모자를 눌러 쓴 이 대표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기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CEO인 이 대표의 ‘과거’가 먼저 궁금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한때 춤꾼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자 이런 말이 돌아왔다.

“어머니가 아는 분한테 사기를 당해서 쫄딱 망했어요. 집으로 압류가 들어오고 무척 힘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빚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로 일 나가고, 고 1이었던 형도 집을 나가버렸지요. 전 고아나 다름없이 살았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이때부터 방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수돗물로 공복을 달래기도 했지요. 그러다 중2 때 일을 해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에 학업을 그만뒀어요. 쪽잠을 자면서 신문 배달을 하고, 형이 일하던 서울 이태원 레스토랑에서 주방일을 했죠. 그러던 중 나이트클럽에 몰래 들어갔다 ‘철이와 미애’ 춤에 매료돼 춤을 추게 됐습니다. 그 당시를 주름잡았던 댄스가수 박남정, 양현석, 이주노, 현진영 등과 같은 세대라고도 할 수 있죠(웃음). ‘C4’라는 4인조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지만 쟁쟁한 인물이 넘쳐나는 연예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게다가 데뷔를 하고 나서 바로 늑막에 결핵이 왔어요. 과격한 운동을 하면 안 된다는 최종 선고를 받고, 결국 첫 꿈을 내려놓게 됐습니다.”

이렇게 춤꾼 생활을 접은 그는 좀 더 안정적인 밥벌이를 찾던 중 논현동에서 형과 함께 김밥 장사에 나섰다. 오늘날 큰 성공을 거둔 스쿨푸드의 출발이었다. “2002년 논현동 15평짜리 반지하 단칸방에서 계란말이 김밥 하나로 배달을 시작하게 됐어요. 홍보나 마케팅의 개념도 없어 당시에는 열심히 정성스럽게 만들어서 주변 상가, 미용실 등에 발품을 팔아 찾아다니며 홍보했었죠. 그런데 1주일도 안 돼 전화가 마비될 정도로 주문이 폭주했어요. 단골 고객들이 김밥 말고 다른 메뉴들도 만들어 달라고 얘기를 하셔서 수백 번씩 재료를 바꿔가면서 냉면을 개발했는데, 이 역시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하나씩 메뉴를 계속 추가하면서 강남에서 분식, 한식 배달전문점으로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 대표는 첫 성공을 기반으로 로드숍 진출에 나섰다. 지금과 달리 무척 한적했던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매장을 차렸다.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중국에서 사온 도자기와 가구로 매장을 꾸몄다. 독특한 분위기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입소문을 타고 방송에도 소개되면서 상권이 커졌다. 이 대표는 “오늘날 가로수길은 바로 이때 저희 가게로 인해 형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가로수길, 경리단길, 삼청동길 등 서울 시내의 테마 거리로는 가로수길이 처음이었어요. 가로수길이란 테마 거리는 바로 우리 가게가 큰 인기를 끌면서 만들어졌던 거죠.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늘 큰 자부심을 느낀답니다.(웃음)”

기자들은 성공한 CEO를 인터뷰할 때 어김없이 하는 질문이 있다. “성공비결이 뭐죠.” 이 대표는 ‘운칠기삼’이 아니라 ‘운구기일’인 것 같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물론 저도 어떤 맛을 어떻게 내고 만들까 미친 듯이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그러다 오징어먹물김밥, 멸치김밥 등을 내놓았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당시에는 ‘김가네 김밥’ 같은 김밥집만 있었는데 갑자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오징어먹물김밥이 나오니까 사람들이 열광했어요. 게다가 김밥 크기도 기존 김밥보다 작아 특히 여성들이 먹기에 편했습니다. 평범한 김밥만 있었던 시절에 독특한 맛과 모양으로 승부를 건 게 먹혀들었던 것 같습니다. 색다른 풍미를 원했던 시대적 니즈와 맞아떨어진 거죠.”

이 대표는 “가로수길 매장을 처음 운영할 때는 탤런트 김태희, 조인성 등 스타들이 찾아왔었다”며 “김태희 씨는 저희 매장 음식을 맛보기 위해 차 안에서 포장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결국 ‘고객이 마케팅’이라는 점도 깨달았다고 했다.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메뉴 개발과 맛에 집중한 것인데,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성공을 거두게 된 것 같아요.”

현재 외식시장 트렌드는 할랄푸드, 밸런싱 푸드 등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캐주얼 한식에서 아시안푸드, 맥주와 중식까지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브랜드의 대표로서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외식 분야는 어떤 걸까. 이 대표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 돈을 벌기보다는 고객들이 겪어 보지 못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는 것 같다”며 “현재 2~3개의 브랜드를 기획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중 하나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개발 중인 ‘숙성육’이다. 내년 봄쯤 나올 수 있게 준비 중이다.

이 대표의 인생 역정과 성공 스토리는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적잖은 도움이 될 듯했다. “가끔 창업 강의를 다녀요. 그런데 창업하려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나 싶더라고요. 창업한 지 1년 반에서 2년 만에 80%는 무너집니다. 무엇보다 자기 것은 다 좋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내가 하는 건 다 특이하고 괜찮다는 생각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제가 과거 앨범을 준비할 당시 1년에 음반시장에서 앨범이 800장 나왔어요. 그런데 뜨는 곡은 10~15곡에 불과했어요. 대부분 무너집니다. 그런데 작곡가들은 자기가 쓴 곡이 다 1등이라고 생각합니다. 10명 중 8명은 좋아해야 뜨는데 말입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창업하는 분들은 너무 독특하고 차별화된 것만 생각하려고 하는데, 사람들은 튀는 것은 오히려 선뜻 접하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늘 접하는 것에서 좀 더 특이하든가, 맛있든가 하는 부분을 찾아내야 합니다.”

SF이노베이션 사내 게시판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최고수는 고객의 입맛을 바꾸고 고수는 고객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주고 하수는 고객이 하자는 대로 맞춰준다.’ 이 대표는 “어떤 스님이 한 이야기인데 감명 깊게 들어 이제 저의 음식 철학이 됐다”며 “이 말의 뜻을 곰곰이 생각하고 실천하면 창업실패가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식재료는 이 대표가 가장 중시하는 부분이다. “프랑스로 음식 유학을 다녀온 한 일본 셰프에게서 ‘한국 셰프는 레시피를 공부하고 일본 셰프는 식재료를 공부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순간 원재료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절실히 갖게 됐습니다. ” 이 대표는 이후 해외에 나가면 최대한 많은 음식을 맛본다. 하루 일곱 끼까지 먹으면서 식재료를 탐구한 적도 있다.

역경을 딛고 외식기업 대표로 성장했기에, 사람들은 주저 없이 그를 자수성가형 CEO로 부른다. 정작 본인의 생각은 달랐다. “자수성가라는 게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을 이뤄냈다는 건데 저에게 적합한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시작은 했지만 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주위의 도움이 많았고 운도 많이 따랐어요. 사람들에게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대표는 가장 한국적인 것을 들고 미국 등 해외시장으로 영역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한식의 세계화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이 스시를 갖고 세계로 뻗어 나갔듯이 우리의 치킨, 한식, 분식 같은 한국적인 것을 기본 베이스로 해외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해외시장에서 프랜차이즈 매장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목표”라며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메뉴로 한국적인 모습을 알리면 보다 의미 있는 사업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와 인터뷰를 마치면서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이자 사상가로 널리 알려진 루쉰(魯迅)이 남긴 말이 떠올랐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독특한 스타일과 감각적인 맛으로 차별화에 성공하며 외식시장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온 이 대표가 다시 어떤 ‘길’을 열어 나갈지 벌써 기대를 모은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